쌀강정이 있는 곳 감상

대상작품: . (작가: 이필원, 작품정보)
리뷰어: 캣닙, 18년 11월, 조회 63

쌀강정을 먹어본지가 얼마나 되었더라.

해외 과자까지 쏟아지는 요즘 유밀과는 명절에 조차 거의 찾지 않게 되어 버렸다.

여전히 즐기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개인적인 호불호가 오래전 정해진 것이다.

 

오래전 암자를 만들고 머리를 깎은 정명은 깊은 상처의 번뇌를 잊기 위해 산중에 침잠한다.

사람들은 사람 사이에서 얻은 생체기의 통증만을 잊기 위해 자기 안으로 숨어버리는 요즘이다.

그 둘의 성질과 무게가 같을 수야 없겠지만 극락을 찾는 마음은 비슷하지 않을까.

 

상처가 아파서 사람을 가리게 되었음에도 그리움은 끝내 벗어던지지 못 할 얄팍한 이기심인가 보다.

그래서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형체에 마음이 가는지도 모른다.

 

고양이와 까마귀에 안드로이드와 어린아이라니, 기묘한 조합이긴 하다.

로봇이 말하길 고양이는 아이처럼 보살핌이 필요하고 까마귀는 어른처럼 혼자 살 수 있댄다.

어울리지 않는 둘이 로봇에게 붙어있다는 것은 그 둘도 로봇이 구해줬기 때문일까?

 

작중에서 아이는 같이 등장한 두 동물처럼 말을 하지 않는다.

반면 보호자 격인 로봇은 자아를 가지고 말하며 행동하지만 너무 아이처럼 순수하고, 또 위태롭다.

 

그 아이같은 물건이 극락정토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준다면 이기심 많은 인간은 무슨 말을 해야할까.

구해달라는 말은 자신이 아닌 두 사람의 몫이었음을.

 

지장보살은 인도 바라문의 딸로 불교에 귀의해 지옥을 여행하며 부처를 비방했던 어머니를 구한 뒤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전엔 성불하지 않겠다 맹세한 보살이다. 일본에선 작은 동자상으로 표현되며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들을 구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정명에게 그 로봇은 인간들의 지옥에 잠시 들른 보살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하고 청명한 산속 암자의 공기가 배경음 처럼 전달되는 맑은 작품을 읽으며 문득,

맛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 쌀강정이 먹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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