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가님. 작품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번에 작가님의 작품에 감상문을 쓸 때 거슬리는 소리만 잔뜩 늘어놓은 듯해서 또 그러기가 민망하기는 하지만 리뷰 공모를 여시며 당부하신 말씀도 있으니 되도록 글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에 집중해 감상문을 작성하도록 해볼게요.
일단 저번에 감상문을 썼던 ‘꽃’ 시리즈보다는 이 작품이 훨씬 좋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모든 설정이 아다리가 맞기 때문이었죠. 전체적으로 설명이 좀 부족하다는 점이 흠인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꽃’처럼 자체적으로 모순되는 부분은 일단 없어 보였기 때문에 이야기에 몰입하는 데 큰 힘이 들지 않았어요.
그처럼 거슬리는 부분이 해소되니 작가님의 장점이 부각된 것 같아요. 바로 분위기를 잡는 실력이죠! 고전적이지만 여전히 기괴한 분위기를 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머리 없는 시체’라는 기호를 전면에 들이밀면서 시작된 이 작품은 특히 전반부에는 특유의 스산한 느낌을 잘 유지하는 듯했어요.
여기서 전반부는 주인공과 형의 관계를 세밀히 묘사하는 중반 직전까지의 부분을 의미해요. 제가 보기에 이 작품은 주인공이 천재클럽의 존재를 알게 된 시점을 중심으로 전후가 나뉘는 구성 같았어요. 물리적인 길이로 봐도 작중에서 천재클럽이라는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 거의 중간이죠. 그래서 전반부라는 용어를 쓴 거에요.
그런데 글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천재클럽이라는 소재가 대두된 순간 그 이전까지 쌓아온 긴장감들이 상당 부분 무너졌다는 것이었어요. 이것은 제가 글을 절반까지 따라가면서 기대했던 것과 다소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기 때문인데, 이 부분은 사실 개인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일단 말씀은 드릴게요.
기괴한 연쇄살인을 배경에 깔아둔 채, 이야기의 전반부는 주인공의 집안에 흐르고 있는 갈등과 충돌의 가능성을 공들여 구축하고 있었어요. 천재이지만 다소 난폭하고 잔인하고 뒤틀린 면이 있는 것 같은 형, 그런 형을 질투하며 끊임없이 인정욕구에 시달리고 있는 주인공, 천재인 형만을 노골적으로 편애하는 부모 등의 요소가 생생하고 세밀하게 구체화되죠. 독서 경험이 일천하기는 하지만 저는 이런 흐름을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뭔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집단을 들여다보니 내부에서 가지각색으로 곪아 있었다는 게 드러나는 식이요.
그랬기 때문에 형과 천재클럽이 그런 식으로 연관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조금 맥이 빠졌던 것 같아요. 그 순간 전반부에서 쌓아 올린, 긴장감을 주는 요소 중 형의 인격과 관련된 부분은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셈이었으니까요. 누가 우리 옆집에서 폭탄이 터진다고 해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막상 터지고 보니 강 건너 아무개의 집에서 터진 느낌이었어요(스포일러를 되도록 비켜가기 위해서 직접적인 표현은 피할게요).
그리고 거기서부터 작품은 새롭게 긴장감을 쌓아가기 시작하죠. 전반부에서 승계한 요소는 자식을 편애하는 부모님과 그런 부모님의 영향으로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주인공뿐이고, 형은 안타깝게도 이야기의 중심에서 휘발되어 버린 채로요. 사실 부모님과 주인공에 대한 배경 이야기는 전반부에서 다 완성된 셈인 것 같았기 때문에 후반부는 천재클럽을 요모조모 다루는데 투자되죠. 이때도 결말 직전까지는 분위기가 괜찮았던 것 같아요. 직전에 형이 갈등구조에서 퇴장하면서 조금 싱거워지기는 대목이 있었기는 했지만 새로 던져진 소재인 천재클럽이라는 게 대왕고래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고 해서 다시 기대감이 생겼었어요.
그렇지만 결국 결말까지 가도 천재클럽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죠. 천재클럽이 ‘그런 일’을 하는 건 알겠는데, ‘왜’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으니, 기승전결이 갖춰진 한 편의 작품을 읽었을 때의 충실한 느낌을 주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 대신 예고편만 보고 끝난 것 같다는 인상에 허탈하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작가님의 코멘트를 보면 속편이 나올 것 같은데, 차라리 제목에 (전편)하는 식으로 후속작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언급해주셨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그럼 ‘이 글에서 결정적인 부분이 안 밝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미리 대비할 수 있으니까요.
뭐, 여기까지입니다. 안 좋은 소리만 모아놔서 좀 그렇게 보이지만 계속해서 뒤를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라 나름 재미있게 읽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읽으면서 커트 보네거트의 타임 퀘이크에서 나온 짤막한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천재들이 머릿속에 일종의 수신기를 달고 있다고 믿은 과학자가 멘사 회원들의 무덤을 파내 시체의 뇌를 조사한다는 내용인데, 작가님의 소설에서 사라진 천재들의 머리는 무슨 목적을 위해 어디로 간 건지 정말 알고 싶네요. 일단 저는 뇌를 이용한 그리드 컴퓨팅에 한 표 던져봅니다. 아직 다음편이 나온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