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곳곳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AL 작가님의 작품을 리뷰하는 건 ‘I에게’ 이후 오랜만이다. 개인적으로 ‘I에게’를 재밌게 봤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다.
작품 소개에도 적혀있듯이 이 작품은 여성 중심 로맨스 판타지 작품이다. 기존의 다른 소설들이 중요한 역할이나 중심인물들을 남성으로 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그 성비가 반대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사건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여성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남성 중심 서사 특유의 어색한 여성 캐릭터들의 수동적인 행동과 사람 같지 않은 반응들은 전혀 없고, 작품 안에는 오로지 현실적인 여성들만이 존재한다. 늘 소설, 만화, 영화, 드라마 등을 보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저런 여자가 현실에 어디 있어’ 라는 것이었다. 늘 휘둘리는 대로 살고, 자기 주도적이지 않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흘러가는 영혼 없는 여성 캐릭터들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여성 캐릭터들을 어색하게 표현하는 작품들을 보면 작가의 게으름과 미숙함이 드러나 짜증이 난다. 우리는 흔히들 좋은 작품의 캐릭터들을 보면 ‘정말 살아있는 것만 같다’ 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들이 여전히 여성 캐릭터들을 인간성이 죽은 캐릭터로 만든다. 그리고 그 빈도는 남성 작가일 때 압도적으로 나타난다. 여성 작가들이 남성 캐릭터를 표현할 때와 남성 작가들이 여성 캐릭터를 표현할 때의 차이를 보면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잿빛 하늘의 검’은 여태 다른 작품들에서 느꼈던 불쾌함을 시원하게 날려주는 좋은 작품이다.
작중 주인공인 ‘바레타’는 전 자작의 어린 아들 ‘에르도안’을 대신해 탈콘 자작이 된다. 죽기 전부터 병이 깊었던 전 자작은 어린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자작위를 지켜 줄 사람을 구한다. 그리고 그 인물이 바로 바레타였다. 바레타는 전 자작이 죽기까지 7년간을 피가 터지도록 수련하고 공부해왔다. 그리고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온다. 전 자작이 죽고 탈콘 자작이 된 바레타는 언젠가 어린 에르도안을 죽이고 탈콘을 차지하고자 한다. 물론 그 속내는 숨긴다.
바레타는 죽어가던 탈콘령을 되살리고, 영지민들의 민심을 얻어간다. 물론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나온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죄인들을 구하고자 한 울프 카탄과 이사벨라.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해 결과를 쟁취하는 한나와 아렌.
눈이 안 보여 불안해했지만, 바레트를 통해 앞으로 내딛고자 한 첼시.
탈콘 기사단의 아처볼드, 맥카, 클라크, 그레이스, 앤.
백작인 아버지와 오빠에게 평생 가정폭력으로 시달려왔지만, 바레타의 도움으로 위협에서 벗어나고 일어서는 실비아.
여성들의 진출을 억압하는 나라, 바트리올 그 자체를 바꾸고자 하는 오필리아와 울리아.
여성들의 진출을 억압한다면, 그 안에서라도 제일 위에 서겠다는 안셀르.
가진 능력이 뛰어난 여성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여성, 박해받은 여성, 야망이 있는 여성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각자의 이야기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결코 강한 여성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여성 중심 서사란 결국 기존 남성 중심 서사와 반대되는 것이다. 성별만 바꾼 것뿐이다. 여성을 특별하게 또는 하찮게만 만드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물들을 표현해낸 것이다.
작중 바레타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인물이다. 뛰어난 용병이었던 죽은 어머니가 말했던 대로, 살기 위해 남을 죽여 왔다. 그리고 대리 자작이라는 기회가 왔을 때 그는 붙잡는다. 5년이라는 짧은 재위 기간이지만, 결코 그 자리를 놓을 생각은 없다. 아무리 의붓 남동생인 에르도안이 자신을 사랑해도, 필요하다면 죽일 수 있다. 바레타는 여자라는 성별적 위치, 평민이었다는 신분적 위치로 귀족들과는 시작 위치부터가 다르다. 하지만 그는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온전히 활용한다. 영지를 되살려 가신과 영지민들로부터 민심을 얻고, 에르도안으로부터 맹목적인 신임을 얻어낸다.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처절하지만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에르도안이 처음 바레타를 봤을 때는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도둑놈으로 밖에 안 보였을 것이다. 늘 바레타에게 짜증내고, 분풀이했다. 하지만 철없던 에르도안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바레타를 보며 조금씩 바뀌어 간다. 영지를 되살리고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에르도안은 점점 바레타에 대한 호감을 키워간다. 19살이 된 에르도안은 자신이 성인이 돼 자작이 된 뒤 바레타가 나가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다. 바레타가 계속 자작을 해야 한다던가, 자신이 부군이 되어 함께 한다던가가 아닌, 늘 자신이 자작이 되야 한다는 타성에 젖은 모습을 보인다. 그런 에르도안의 모습을 보면 답답함과 함께 필요 없는 권위적인 모습을 느끼게 된다.
서장에서 얼핏 나오지만, 바레타와 에르도안은 피로 점철된 숙청을 겪지 않고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듯싶다. 당연히 작품 장르 중에 로맨스가 있으니 그러는 게 맞다. 작품 소개에도 나왔던 문구를 인용하자면,
“전부 너의 것이다.”
“나의 것은 곧 누님의 것이라.”
이 문장을 봐서는 결국 둘은 함께 하리라 본다.
이 작품은 보기 좋게 기존 남성 중심 서사 작품들의 틀을 부순다. 작중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은 자신의 길과 목표를 주도적으로 끌어간다. 물론 갖고 있는 힘이 부족해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서 주저앉거나 물러서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면서 울컥한 장면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여성들의 억압받는 현실과 그걸 해결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감정이 고조된다. 독자로서 작중에 나오는 캐릭터들에게 감정 이입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연재 공지에도 나왔듯이 이 작품은 작가님의 건강 악화로 당분간 장기 휴재에 들어간다. 돌아오는 내년 1월 복귀한다고 하시니 그때가 기다려진다. 두 달 뒤에 연재될 이 작품의 뒷내용은 또 어떤 것이 나올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