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읽히는 글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냥 취향에 안 맞거나 묘하게 이상해가지고 텍스트는 정상적인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들어오는 건 하나도 없는 거죠. 이 글이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는데 머릿속에 내용이 정리가 안 됩니다. 묘사가 엄청나게 길다거나, 내용이 너무 복잡하다던가, 문장이 난잡하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닌데 글 내용은 다 읽은 다음 어렴풋이 ‘이런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할 뿐이지. 잘 모르겠네요.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면 정리가 될 것 같긴 합니다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첫째 문제는, 너무 많은 이름입니다. 이 글 원고지 292매니까 6만자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근데 이름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고유명사도 그렇고 등장인물도 그렇고 너무 많아요. 단편이면 좀 줄여야죠. 읽으면서 앞쪽으로 계속 글을 돌려가며 읽어야 하는데 이름이 너무나도 많은 탓에 이 설정이 뭐였고 이 등장인물들이 어느 편이었는지조차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보이는대로 적어볼게요.
세네카 디스카디드 오카야마 데지레 발할라 리틀 보이 키록스 루쉰 에이든 연수 까마귀 사냥개 키 드로이드 병욱 화이트 레이븐 광산조합 빅 크러시 대니 카를로스 로베스피에르 델타 캐시 다크 존 카무라 박 조슈아 미야베 경수 조슈아 웡 유나 한 칼 료마 뿌리복고파 복희 아마테라스 환웅 제임스 쿡 지연 에이미 뻐꾸기 해리 이터 디우티누스…….
글 절반밖에 안 됐는데 도대체 특정 사물만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몇 개입니까? 45개? 3만자에 45개면 2000자당 새로운 이름이 3개씩 튀어나오네요. 참고로 이 뒤에도 이것보다 조금 모자란 빈도로 이름은 계속 나옵니다. 계속. 끝이 없죠. 적당히 대명사로 줄이거나 직책명으로 하던가 대충 설명하고 넘어갈 수 없었을까요? 이름을 일단 붙이면 두 세번 정도를 더 설명하니까 글이 이름 설명의 연장이 되잖습니까. 지루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둘째 문제는, 그냥 설정이 지루하고 진부합니다. 이야기도 그렇죠. 저렇게 많은 이름들은 이야기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죠. 매 인물과 설정을 설명하느라 짜증나게만 하는 요소일 뿐. 스페이스 오페라 라는 장르가 좀 뻔한 구석이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이름만 바꿨을 뿐인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셋째 문제는, 글이 분위기를 잡는 장면을 쓰기 위해 쓰여졌다는 게 눈에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죄다 할리우드 클리셰로 범벅된, 그저 등장인물 이름만 지어줬을 뿐인 장면들이죠. 그런 장면의 나열은 어떤 감동도 없고 어떤 자극도 주지 않습니다. 실제로 글 처음부터 끝까지 장면들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뿐더러 자연스럽게 연결도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넷째 문제는, 그냥 사소하게 설정이 이상합니다. 요컨대 한국 중국 일본 미국의 개척선단이 한 행성계에 찾아왔다는 배경인데, 애들 이름 나열 순서가 성-이름이 아니라 이름-성 이라던가 하는 점이요. 네 나라중 세 나라가 성-이름 순으로 이름을 쓰는데 그러면 미국 쪽에서 양보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도 장면을 위해서 글의 설정을 짜다보니까 이런 상황이 어떻게 존재해서 이 장면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느껴지지를 않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