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방주 평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그림자의 방주 (작가: 이태윤, 작품정보)
리뷰어: 뚜근남, 18년 9월, 조회 103

1. 서문

이 얘기부터 할게요.  이 소설은 제가 읽었을 시점에 46화 분량이 연재되어 있습니다만 전 12화까지 읽었습니다. 더 읽어도 할 얘기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았고, 글을 끝까지 읽는 성실함이 아닌 평을 성실하게 작성하는 성실함을 발휘하고 싶었어요. 당연하지만 10화 언저리에서 접은 만큼 별로 평가는 좋지 못합니다.

 

2. 웹소설의 기술

웹소설, 웹연재 포맷은 통상 한 권 단위로 나오는 소설들과는 다른 영역의 기술을 요구합니다. 그리 길지도 않은 5000자 가량의 한 화의 끝을 극적으로 만들어 독자가 다음 화를 기대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다음 화를 펼치도록 하게 하는 기술이죠. 사실 이건 작가님도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매 화의 끝은 떡밥이 뿌려지거나, 중요한 사건 국면을 제시해서 작품에 계속해서 몰입할 수 있게끔 만들려는 노력이 보여요.

그런데 왜 이야기에 몰입이 안 될까요? 왜 다음 화가 궁금해지지 않는 걸까요? 둘 중 하나겠죠. 작가님이 제대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또는 필자로써 단순히 미숙하다. 둘 다 어느 정도 영향은 있는 것 같습니다.

 

3. 해소되지 않는 이야기

이야기가 흥미로워지는데 의문점은 필수지만, 그렇다고 의문만 품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독자가 흥미로워하는 게 아니라 작품의 재미에 대해서 의문을 품게 되거든요. 이 작품이 그렇습니다. 12화 정도면 적은 분량도 아닌데 뭔가 제대로 풀리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의문을 해소할 것 같은 대목에서도 이 시점에서 독자가 가장 궁금해 할 의문을 해결하지 않고 새로운 의문 하나가 더 던져져요. 직접적, 간접적으로요. 답답합니다. 12화까지 읽었는데 ‘그래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건데’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게 뭔데’ 에 대한 답이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냥 수수께끼가 나열될 뿐이죠. 이렇게 되면 한 편의 끝에 던지는 의문점. 극적인 장면은 그냥 그러려니 할 뿐입니다. 어차피 이것도 바로 설명 안 해주겠지. 하고 생각해버리고 만단 말이죠.

이야기와 세계관은 계속 확장되는데 앞으로는 찔끔 나아갑니다. 얕고 넓죠. 대략적인 방향성은 제시되지만, 그 대략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다음 이제 힘차게 그곳을 향해 이야기가 나아가는 게 아니라 또 다시 간 보면서 머뭇거리고 있어요. 굉장히 답답합니다.

 

4. 너무 많은 인물들

전 고작 10화 언저리까지 읽었습니다만 이름도 붙어 있는 주요 인물들이 주인공, 주인공 상사, 주인공 친구, 회장, 대위, 자살한 개발자, 그 동료들 하나 둘 셋……. 왜 이렇게 많습니까? 한 화에 한 명에 가까운 꼴로 나오잖아요. 이 사람들이 나름대로 비중도 있고 언급도 계속 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전부 한 마디씩 하면서 붙어있다보니까 작품의 흐름이 굉장히 난잡합니다. 한 인물에 대한 이해도 되지 않았는데 다른 인물이 튀어나오고, 그 인물이 또 다른 인물을 불러들이죠.

인물들의 중요도 분배를 크게 실패한 것 같아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언급해야 이야기가 깔끔해지는데 모두에게 그 중요도와는 관계없이 장면 하나씩은 분배하고 비중을 주다 보니까 결국 모든 인물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버렸어요. 해결이 지지부진한 스토리와 의문점까지 더해져서 이야기 전개가 체감상 몇 배는 느립니다. 흔한 아마추어 작품들처럼 이야기가 적은데 그걸 질질 끌어서 느린 게 아니라, 이야기가 무지막지하게 많은데 분량이 적어서 느린 특이한 케이스네요.

사실 인물들도 수수께끼나 다름없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후후후 나에겐 비밀이 있다’ ‘후후후 우리는 정말 엄청난 음모를 꾸미고 있지’ ‘난 엄청난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설명해주진 않을 거야 후후후.’ ‘음지에서 활동하는 내 정체가 누굴까 후후후’ 등등…… 주인공과 주인공 상사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 등장도 하지 않았지만 존재는 하는 것 같은 것 같은 인물까지 합쳐서 대충 이렇습니다. 즉, 스토리와 인물이라는 두 요소가 같은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어요.

 

5. 납득이 잘 안 가는 세계관

불법적인 일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초거대기업 같은 건 흔한 설정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기업이 정말로 그런 능력을 지닐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전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일단 회장부터가 굉장히 젊은 인물이잖아요. 작중의 핵심 기술이 제대로 보급되기도 힘들 뿐더러 그 유용성을 증명, 및 보증할 수 있는 기간이 아니죠. 실제로도 기술에 결함이 있다는 것 자체가 주요 떡밥이기도 하잖아요. 거기에다 그 엄청난 신기술이라는 게 실생활에 아주 밀접한 기술도 아니고, 오히려 실생활하고 상당히 떨어져 있는, 저승에 가까운 가상현실이란 말이죠? 물론 굉장한 기술이라고 생각하지만 흔히 이런 소재를 쓸 때 따라오는 ‘무한정 솟아나오는 에너지’ ‘궁극의 활용도를 가진 신소재’ ‘초강력 무기’ ‘독점적인 생존 필수품’ 같은 것에 비하면 파괴력이 약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가. 이 기업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부터, 막 사병 부대를 부리고 사람 하나를 묻어버리고 뒷조사를 하고 그런 것들이 죄다 어이가 없습니다.

가장 어처구니가 없는게 사병 집단입니다만, 간간히 보이는 다른 설정들도 그래요. 도심을 활보하는 폭탄 테러리스트……. 직업 하나 얻겠다고 즐거움 이외의 모든 감정이 거세된 사람들……. 잘 모르겠습니다. 이해가 안 가요. 작품이 보여주는 현실하고 상식하고 상당히 괴리되어 있는데 그걸 납득시키려는 노력이 안 보이네요.

 

6. 그러면 아무 장점도 없는 작품인가?

사실 그렇진 않아요. 일단 소재가 상당히 괜찮은 것 같아요. 지금은 좀 과다하긴 해도 세력간의 역학구도라던가, 의문점이라던가 하는 부분도 괜찮고요. 그러니까 작품이 재미없거나 지루하다기보단 지쳐서 읽지 않게 되는 그런 작품이었네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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