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피아니스트이자 영화배우였던 오스카 레반트가 남긴 말이다. 삶, 인간의 일생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일생을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한사람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살아온 매 순간순간의 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일생은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지난한 시간과 역사를 거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세계관의 형성과정에서 개인은 집단, 조직, 국가라는 사회적 관계 (Social Relation) 안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며, 이 같은 경험들은 개인의 잠재의식 속에 어떠한 형태로 저장되었다가 추후에 재생, 재구성, 재해석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기억 (記憶, Memory)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 (Retrospective Memory)은 마치 동식물이퇴적, 암석화의 과정을 거쳐 화석이 되듯이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살아남아 개인의 의식속에 퇴적되고 암석화된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간에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재생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이 될 수도 뼈아픈 추억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경험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이 재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저장된 원형을 재생하기 위한 하나의 동기가 필요하다. 소설 속 ‘이매眞’의 유화빈에게는 ‘본트리플’의 노래 <하수구 도시>가 그 강력한 동기였다. 끔찍한 사고를 겪은 후 살아남은 자로서 아픔을 견디로 살아온 유화빈에게 ‘본트리플’의 노래는 삶의 버팀목으로서도 작용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불멸을 꿈꿀수 있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행복한 기억들을 화석화하여 영원과 불멸의 세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본트리플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노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아직도 남아있다.
‘화석’을 테마로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좋은 시도로 보여진다. 또 불길 속으로 사라져간 음악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복잡한 트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나간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이매眞’의 리더 유화빈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불멸의 곡 <하수구 도시>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압도적인 기타, 빠른 리듬, 강렬한 사운드가 살아 있는… 삼인조 체제의 카리스마 있는 여성 보컬 앤 기타가 만들어내는 그 곡… 어디서 들어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