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신, 혹은 당신이 만나는 사람 모양의 길고양이 감상

대상작품: 나와 밍들의 세계 – 上 (작가: 김유정, 작품정보)
리뷰어: 은이은, 18년 8월, 조회 84

* 이 글은 스포일러로 가득합니다. 읽기 전에 꼭 작품을 읽으시길 권합니다.

왜 인간들의 세상도 우리들의 세상 만큼 위험하다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배가 터져 죽어가는 길고양이로 이 글이 시작되었을 때,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붉은 빛을 계속 상기시켰을 때 눈치를 챘어야 한다. 나는 上,下로 나뉜 이 소설을 3분의 1정도 읽었을 때 내가 생각했던 SF나 환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미 이야기에 발목이 잡혀 끌려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사(臨死) 상황의 존재를 얼마간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게 하는 수상쩍은 기계. 그 기계의 과학적인 작동원리는 무엇인지, 어떻게 해서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인지는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 기계가 세상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 인연들이 중요하다. 주인공 밍은 이 기계를 천형처럼 짊어진 존재이다. 그의 아버지를 잃은 것도 목에 스카프를 둘러야 하는 이유도 이 기계 때문이다. 되살릴 수 없는데 놓아보내기는 싫은 욕심 때문에 한 아빠는 이 기계에 돈을 쏟고 있다. 

그렇게 보면 이 도시의 환한 거실 캣타워에서 식빵자세로 앉은 존재들이 아닌, 온갖 위험에 노출돼 쫓기고 배고픔에 허덕이는 길고양이같은 존재들은 이 수상쩍은 기계에 이미 의존하고 있거나 곧 의존해야 할 운명에 처해있다. 밍 또한 예외가 아니다. 밍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헤드셋을 착용하고 고객들의 욕설을 받아내야 하는 텔레마케터. 그런 ‘보잘것 없는’ 길고양이는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고, 피를 흘리며 헐떡거려도 도무지 눈길을 끌지 못한다.  

2018년 8월 15일, TV뉴스를 보니 30세 이하의 파산이 지난 오년 동안 35%나 증가했다고 한다.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라는 한 20대 여성의 육성이 흘러나왔다.

<나와 밍들의 세계>는 무엇보다 탄탄하다. 구성은 물론이고 현실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수상한 기계가 만들어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로서의 존재도 손에 잡힐 듯 그려내는 표현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둡고 우울한 등장인물들의 배치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아름답다.

작가는 작품의 마지막에 너무나 큰 분노를 품고 죽어간 밍을 새끼 고양이로 출연시키는 것으로 그리고 그 새끼고양이를 할머니가 쓰다듬는 것으로 그걸 촉각으로 느끼는 것으로 애써 작품의 온도를 높이려고 시도한 것 같았다. 그러나 작품을 읽고 나면 누구라도 치솟는 분노 때문에 한 동안 멍해지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주 주관적으로 말하자면, 그게 문제라면 문제다. 마음이 너무 아픈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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