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10화까지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장편을 읽어 나가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선뜻 읽자, 생각이 안 든다. 긴 것을 끝까지 읽어가는 게 힘들어서 짧은 단편들만 찾아다니고 있는데 오랜만에 장편 하나를 읽기 시작했다.
‘양말’이 날 웃겼다. 예기치 않게 웃음 한줄기를 뿜고 나서 계속 읽기 시작했다. 세상에 양말이 날 이렇게 웃길 줄은 몰랐다. 전생을 봐주는 카페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으러 간 서원의 전생은 양말이란다. 누가 봐도 전생이라고 보여지는 따스한 영상 속 크리스마스의 장면 속에서 선물을 받는 꼬마가? 생각할 찰나에 거기 걸린 양말이 너의 전생이라고 하는데 그 의외성에 안 놀랄 수는 없으리라.
하핫, 웃으면서 무생물이 전생일 수도 있다는 설정에 서원처럼 의문을 가지면서도 뭐 소설에서 안 되는 게 어딨어, 생각해버렸다. 어차피 판타지는 그 작품 내에서 개연성만 충분하다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전생이니 윤회니 이런 주제에 꽤 관심을 가지고 소설도 하나 써볼까 구상한 적도 있는 나조차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무생물이 전생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더욱 놀랐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의외성을 만나게 되는데 그 의외성이 상상의 세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놀라운 상상력 혹은 많은 의외성을 가진 소설은 참 소중하다. (물론 나의 공부 부족이나 다른 소설읽기를 게을리 해서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었을지 모를 의외성을 나만 몰랐다면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이 소설은 한편마다 한번씩은 웃기게 하는 의외성을 가지고 있다. 양말 얘기는 작가님이 이미 작품 소개에 올려두었기에 썼지만 나머지는 재미를 반감시키므로 적지 않겠다.
독자가 첫 화(프롤로그)에서 두 번째 화(1화)로 넘어가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런 점에서 첫화는 성공적이다. 호기심을 느끼게 만들었고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인공 서원의 캐릭터가 또렷한 이미지로 부각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알바 면접 보기 전에 유리창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봄에도 불구하고 또 면접이라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 그 개인에 대해 좀 더 많이 설명 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말이었다는 전생 외에는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다. 서원이 다음 화에서 손님들을 맞을 때까지도 난 서원이 여자인 줄 알고 읽을 만큼 주인공에 대한 이미지가 뚜렷하지 않았다. (여자라고 생각 한 건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
꼭 소설에서 남자, 여자 밝혀야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이 남잔지 여잔지 궁금하지 않은 적도 물론 있었다. 상관없는 적이 더 많다. 굳이 남자 혹은 여자라는 성 (性)을 알아야만 소설 속에서 효과가 뚜렷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달리 신경쓰지 않는 편이지만 이 작품은 카페주인이 여자(줄곧 아주머니로 지칭)이고 다음 화에서 만난 손님들(여자들)과 썸을 타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서원이 남자인 것을 먼저 아는 것도 필요해 보이는데 그건 좀 아쉽다.
그리고 카페주인을 왜 서원은 계속 아주머니라고 하는 걸까? 사장이면 사장님, 카페주인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카페주인이 남자일 때 아저씨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이건 좀 어색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이야기 전반에 걸쳐 아주머니라고 계속 지칭함으로서 이후에도 중년여성임을 또렷이 각인시키는 효과는 있는 것 같다. (특별히 문제 될 수준은 아니니 넘어가고. 그럼에도 무서운 아줌마라는 이미지 말고는 역시 특별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어서 아쉽다.)
일단 전생카페라는 비정상적이고도 오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손님들은 계속 들어올 것이기에 앞으로 다양한 인물들과 이야기가 무궁무진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타인의 전생이 뭘까에 대한 궁금증과 또 그 의외성, 그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들도 재밌으니 이대로만 끌어간다면 이야기는 무리없이 계속 될 것 같다. 더구나 사건은 카페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서원의 행동 반경에 따라 대학이나 길거리 등 다양한 곳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풋풋한 연애의 시작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법, 이제 시작되는 연인들의 이야기도 기대되고 난 10화까지 읽고 이 리뷰를 쓰는데 갑자기 어마어마한 존재가 나타날 기미가 보여서 그것도 기대된다.
이 이야기는 재미있다. 소소한 사건도 계속 일어난다. 주인공이 조금 불쌍한 느낌도 들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 카페주인과 어우러져 재미를 자아내는 것 같다. 근데 비밀을 누설한 대가를 치르는 게 고작 두들겨 맞는 것이라니 이 의외성은 좀 실망스러웠다. 카페주인 아주머니가 판타지적인 인물인데 좀 판타지적인 걸 기대하고 있었던 때문이다.
색다른 공간,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꿈속 공간도 흥미롭다. ‘양말씨’의 모험담은 귀여우면서도 풋풋하고 점점 크게 확대 돼 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다행스러운데 혹여나 또 판타지적이지 않은 의외성이 전개되서 실망시키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
밝고 잔잔하면서도 잔재미가 있는 소설, 내가 읽은 부분까지의 느낌은 잔잔히 흘러가는 강에서 가끔 물고기 한 마리가 퐁퐁 뛰어올랐다 사라지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기대된다. 어떤 폭풍이 물결을 사납게 파도치게 할지 기대하며 좀더 기다려보리라. 사실 난 기다리는 걸 잘 못해서 완결난 작품 말고는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어쩌다 읽게 됐기에 어쩔 수 없이 좀 기다려야겠다. 작가님의 판타지적 의외성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