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일을 마치고 브릿G에 들렀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처럼, 단골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처럼 글을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리뷰 공모에 들어갔고, 아주 우연히도 마녀왕 님의 <누군가가 되어>라는 단편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에서 이야기를 지배하는 것은 단단한 서사가 아니라, 오히려 선명하고 강렬한 인상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임스는 과거 연인이었던 메이슨을 잊지 못해 세계를 유랑하던 선원입니다. 그는 같이 술을 마시던 동료로부터 기적의 동굴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소의 이름을 듣게 되고, 기적의 동굴에서 몇 마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나긴 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살아서 돌아옵니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중략) 이건 어디까지나 정당방위였다. 살인이라면 질색이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지금 이대로 살아가고 싶었다.”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의 결말을 연상시키는데요, 특히 <금각사>에서 주인공이 금각사를 태운 뒤에 뒷산에 올라가서 맛있게 담배를 태우는 장면과, 주인공이 살해를 완수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흡사해 보입니다. 제가 <금각사>에서 느꼈던, 한창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절을 태우고 난 뒤에는 살아남은 자신의 생 그 자체에 대한 찬양으로 넘어가는 주인공에 대한 당혹감은, 연인을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에는 죽임을 완수해야 하는 주인공에 대한 느낌으로 치환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문장과 문장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를 잇는 강렬한 힘이 문체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쉽게 생각하였습니다. 작은 가루들이 모여서 전체의 거대한 반죽이 되려면 물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작가 분께서도 문장이 가진 개성을 거대한 힘으로 살리기 위해서 문체의 궁리를 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