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잘 읽었다는, 조금 의미 없을 이야기부터 합니다. 하지만 정말 잘 읽었어요. 사실 1년 전이었다면 또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서정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그래서 더 인상 깊었지만요. 그러고 보니 불과 작년에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에 대한 리뷰 의뢰를 받고 ‘야단났다’ 싶었던 게 떠오르네요. 지난 1년 동안 도대체 저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웃음). 처음에는 그냥 단문 응원에 몇 자 남길까 했는데, 막상 이렇게 쓰다 보니 길어져서 역시나 오래간만에 리뷰를 남겨 봅니다. 실례가 안 되기를.
시의적절하게 접하게 된 <짝사랑 문제>는 작품 소개나 편집부의 추천평만 보더라도 왠지 아련함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특히,
문제는 이렇다. ‘그 애를 좋아하는데, 그 애도 나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첫 문장의 예시로써 작법서에 등장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해요. <짝사랑 문제>는 stelo 님과의 작은 인연(이라고 해도 될까요?)이 아니었더라도 읽어 보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연재된 분량의 절반은, 수학과 사색을 즐기는 주인공 세영이 같은 반 학생인 예은을 짝사랑하며 고민하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좋아하게 된 과정, 좋아하기에 더 알고 싶지만 선을 넘지 않으려 자제하며 느끼는 고통, 뜻밖의 계기로 가까워지며 더 애틋해지는 감정을 어쩌지 못해 우왕좌왕하기까지. 그리고 결국 커다란 갈등이 촉발되죠. 다소 느리지만 지루함 없이 세영의 시점을 좇다 보면 어느새 예은의 시점이 나오면서 이야기의 중심부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랑과 추리의 본격적인 시작이죠.
<짝사랑 문제>는 장편 소설입니다. 하나 궁금한 것이, 현재 연재된 분량이 전체의 몇 퍼센트쯤일까요? 575매면 약 절반 정도일까요? 다는 모르지만 이 글을 틈틈이 써서 연재하시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퇴고가 안 된 장편을 실시간으로 연재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뭐라 말씀드리기는 뭣하지만, 특히 예은의 시점이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가 다소 산만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그 원인에 대해 감히 생각해 봤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시점의 혼재입니다. 약 200매 가량을 세영이 이끌다가 커다란 갈등 장면이 나온 뒤에 예은의 시점이 번갈아 등장합니다. 한 회차가 오롯이 예은에게 할애된 첫 장면과 그 반대의 경우인 세영의 회차 몇 개를 제외하면, 20여 매의 짧은 분량에서 두 사람의 시점이 휘몰아치듯 바뀝니다. 한 문장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요. 안 그래도 장르의 특성상, 그리고 흐름상 복잡해지기 시작한 이야기를 두 사람이, 그것도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서로 자기 얘기를 하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듯한 구성으로 인해 글의 템포는 엄청나게 빨라졌는데도 되려 읽는 속도는 떨어지더라고요. 결정적으로 두 목소리가 구분이 잘 안 갑니다. 좀 긴 분량은 그나마 누구 목소린지 의식적으로나마 알겠는데, 한 너댓 번을 툭툭 바뀌고 나면 꼭 야바위를 본 기분…
추리 요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은데, 실은 제가 고전적 추리 소설에 그다지 흥미를 못 느끼는 편이라는 걸 참고하고 들어주세요. 왜 그러냐고 물으신다면, 어쩐지 추리 소설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에요. 소설을 구성한다는 3요소조차 추리 앞에서는 뒷전이 되는 걸 몇 번 보다 보니 그러지 않았나 싶네요. <짝사랑 문제>를 읽으면서 예은과 관련한 미스터리 쪽으로 포커스가 옮겨가는 순간 그동안 섬세하게 쌓아올린 감정선이 허무할 정도로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영조차 예은에 대해 추리를 할 때면 평소에 품고 있던 그 애절함은 잠시 t쯤으로 치환해 버리고 오로지 논리로 모든 걸 접근하는 느낌이고요. 사실 <짝사랑 문제>는 태그도, 분류도 ‘추리’가 1번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뭐랄까요, 강약 조절이 안 된 느낌? 앞의 짝사랑 이야기에 비하면 그렇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보면 뒤에 어떤 내용이, 얼마나 나오느냐에 따라 제 감상은 한낱 헛소리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stelo 님의 리뷰를 통해 드러나는 추리와 관련된 것들을 고려하면 헛소리가 될 거란 쪽에 무게가 더 실리겠지만요. 그냥 본격(?) 추리 요소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독자의 푸념이다, 하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로서는 예은의 미스터리 관련 내용은 냉정하게 말하면 과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게 추리 때문이라는 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혼자서만 알고 있으려 하는 것 같달까요. 좀 치사…
의도한 건 아니지만, 추리의 답에 대해서는 어쩐지 빙 둘러간 것 같아 따로 숨겨야 할 것 같은 대목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만약 있다면 알려주세요). 짐작이야 가는 건 있지만 어차피 틀릴 거니까 가만히 있다가 중간이라도 되겠다는 속셈입니다. 한 달 안에 연재가 끝나지는 않을 것 같고, 추후에 완결이 나면 또 몰아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읽는 동안 저 또한 풋풋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덧. 왠지 ‘미분’으로 드립을 쳐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이과생분들께 테러를 가한 점, 사과드립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나빠요.
덧2. 막상 제목을 짓고 나서 생각해 보니 감정선을 추리(요소)로 미분하면 갈등의 변화량이 되지 않을까… 예,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