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었으면 좋았을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신세기 탈렌티어 (작가: 문 아이작,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18년 6월, 조회 115

올라온 작품 소개는 이렇다.

[아포칼립스 이후 종교가 메이저가 된 세상, 소시민 신학생 주위에 벌어지는 이야기].

종교가 메이저가 됐다는 게 무슨 소리일까? 직감적으로는 느낌은 오지만, 냉정히 따졌을 때 정확히 ‘이러이러 하다’고 말할 정도로 파악이 되지는 않는 말이었다.

본문에서도 이런 인상은 계속 이어졌다.

이를테면 ‘누군들 그리스 신화라 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배우거나 흘려 들었을’이나 ‘많은 신들 중에 모든 신이 인간에게 자비로운 것은 아니었다’ 같은 문장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이해가 되지만 어수선하다.

또 문제 중 하나는 쉼표나 따옴표를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가 이전을 뜻하는 접두어라면 에피는 이후를 뜻하는 접두어이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는 이전에 생각하는 사람을 에피메테우스는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을 뜻한다.]나 [2024년 2월 29일, 4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2월의 29일 아침 독도 인근의 해저 화산이 분출했다]같은 문장이다. 전자는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가 ‘이전’을 뜻하는 접두어라면, ‘에피’는 ‘이후’를 뜻하는 접두어이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는 ‘이전에 생각하는 사람’을, 에피메테우스는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을 뜻한다]. 후자는 [2024년 2월 29일. 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2월의 29일의 아침에 독도 인근의 해저 화산이 분출했다]라고 썼으면 좀 더 직관적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솔직히 내용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것도 아니니 큰 문제는 아니긴 하지만 도입부인 만큼 신경을 썼더라면 좋았을 듯.

위의 글은 사실 손풀기용 잡담에 가깝고, 아래가 본문이다.

예전에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톨스토이가 현대에 와서 신춘문예로 등단할 수 있을 것인가?’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조아라에서 연재했으면 인기를 끌 수 있겠느냐는 얘기도 있었다.

당시 나는 둘 모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의문이 든다.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신춘문예에 대해서야 학연이라느니 추천이라느니 부정적인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반지의 제왕에 대해서는 왜 그리 생각했는지 좀 더 심도 깊게 파고들 필요성을 느꼈다.

반지의 제왕은 조아라에서 유행하는 내용이 아니다. 지금이야 전생물(그 당시에는 전생물이라는 단어도 보이지 않았다. 이고깽이나 차원이동물, 퓨전판타지 라는 식으로 불렸다)이 유행하지만, 얘기를 나눌 시점에서는 순수 판타지도 나쁘지 않은 대접을 받을 시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럼 왜 나는 부정적이었을까? 생각없이 생각한 거였나? 아니다. 직관적인 판단임에도 그 판단의 근저에 여러 사려 깊은 생각의 합의가 발견되는 일은 의외로 드물지 않다.

우선 여러 이유 중에 이 글에서 다룰 건 ‘웹소설과 출판소설의 문단 나눔 차이’이다.

지금 리뷰 중인 ‘신세기 탈렌티어’의 문장은 기본적으로 장광설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우선 프롤로그를 살펴보자. 프롤로그의 분량의 48매(200자 원고지 기준)이다. 그리고 이 48매의 글은 20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히 계산하면 1문단 당 원고지 2.4매인 셈인데, 1문단이기 때문에 문단 나눔이 없는 걸 생각하면 공백포함 480자 분량이다. 거기다 한 줄로만 된 문단 5개도 생각해야 한다. 이것도 꽤 대단하지만 1화의 경우엔 29매에 챕터 제목으로 쓰인 한 줄 문장을 빼면 8문단 밖에 안 된다. 평균 3.6매. 공백포함 720자다.

720자가 어느 정도 분량이냐면, 꽤 빽빽해 보이는 ‘탈혼경’ 1권 1장 두 번째 페이지(첫 번째 페이지는 페이지의 절반가량이 공백이다)의 글자수가 공백포함 610자 라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소년이 바위 위에 참선하며 앉아 있었다. 몸에는 도복을 두르고 조그맣게 뜨인 눈에는 현기가 감돌았다. 연공(연공)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그 주변에 떠도는 듯했다.

곧 소년이 말했다.

“찾아서 무엇 하려 하는가?”

마치 힐난, 추궁하는 듯한 어투였다. 쓸데없이 욕심만 많은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조백은 개의치 않았다. 그 말에 답하는 대신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소년은 침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벌써 구파(구파)의 움직임이 무림을 지배하는 천왕성(천왕성)에 금제당한 지 십이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과거 영왕겁전(영왕겁전)이라 불리던 전쟁이 있은 후 구파일방의 힘은 급속도로 약화되었고, 그들은 새로이 떠오른 신진 세력과 아슬아슬하게 대립해야만 했다.

그 균형을 깬 것은 신창마제(신창마제)의 진전을 이어받은 시대의 기린아, 백호명(백호명)이었다. 백호명은 영왕겁전 당시에 어마어마한 무위를 보여 주던 배구(백구)의 무공을 이어받아 파천황(파천황)의 신위를 펼쳤다. 그 기세에 눌려 구파일방은 점점 천왕성에 밀려났고, 결국은 세외제일문으로 자처하던 곤륜파 또한 곤륜산 일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탈혼경 中- 괄호 안에 있는 글자는 원본에서는 한자로 나와 있다.]

신세기 탈렌티어 1화 문단들의 평균 글자수는 출판된 한국 판타지, 무협소설의 1페이지 분량보다 많다.

신세기 탈렌티어의 21화의 경우엔, 21화의 두 번째 문단은 놀랍게도 70줄이나 된다. 웹에서 봤으니 세어 볼만했지 모바일로 셌으면 중간에 포기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얼마간 70줄이나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문단을 평생 동안 한 번이라도 읽은 적이 있나 기억을 되짚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에서? 러브 크래프트의 책에서? 나는 황금가지판 러브크래프트 전집과 범우사판 ‘백치’를 꺼내 책장을 술술 넘겨보았다. 확실히 이 책들은 문단이 꽤 길게 이어진다. 그렇지만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문단은 의외로 보이지 않는 편이다. 페이지의 중반부터 시작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문단도 막상 세어보면 한 페이지가 안 되기도 했고, 한 페이지를 채웠다 한들 러브크래프트 전집의 경우엔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워도 24줄밖에 안 된다.

70줄이라느니 24줄이라느니 덧셈뺄셈을 하자는 게 아니다. 애초에 본질적인 문제는 엔터 많이 친다고 고쳐지는 것도 아니다. 70줄보다 짧은 러브 크래프트도, 도스토예프스키도 길다. 반면 웹소설은 문단 나눔을 짧게 처리한다. 예시로 든 탈혼경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고, 베스트셀러라 아마 다들 집에 한 권씩 구비하고 있을 눈물을 마시는 새도 가끔 긴 문단이 나올 때도 있지만 대체로 문단들이 짧은 편에 속한다.

인기 있는 대부분의 웹소설들은 문단이 짧은 편이다. 70줄까지 갈 것도 없이 24줄까지 이어지는 문단도 찾아보기 힘들다. 20줄도 힘들다. 10줄도 드물다. 50권이 넘어가는 달빛조각사에서 10줄이 넘어가는 문단이 얼마나 있을까? 한 줄에 들어가는 글자수가 브릿지 뷰어보다 적은 판형인 걸 그대로 봐주더라도, 잘 보이지 않는다.

내 생각에, 문단을 짧게 처리하는 건 웹소설의 룰이다. 작가들끼리 정한 룰이 아니라 독자들의 무의식적인 합의에 의한 룰이다. 암묵적인 것일지라도, 지키지 않으면 나는 그런 요소를 마이너스로 본다. 문장을 따라가다가 호흡이 엉키고, 중간에 지쳐 나가떨어진다. 고산지대에서 운동하는 것과 같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모바일로 읽는 독자층이 늘어나면서 더 심해졌다고 본다. 앞서 말했듯 70줄은 웹으로 볼 때 70줄이지, 폰으로 봤으면 몇 줄인지 세어볼 엄두도 안 났을 것이다. 100줄은 확실히 넘어갔을 거다. 한 화가 아니라 한 문단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 때문에 작품의 가치 자체를 깎아내릴 수 있는가? 단지 글이 웹에서 연재된다는 이유만으로?

그러고 보면 예전이 이런 걸 의문으로 품어본 적이 있다. 출판만화의 경우, 회당 페이지수는 꽤 엄격하게 정해져있다. 페이지당 고료가 나오니 난 매 주마다 50페이지를 그릴 거야! 가 되지 않는다. 웹툰도 60컷 내외라느니, 80컷 내외라느니 하는 식으로 분량이 제한되어 있다.

내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과연 분량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가? 작품마다, 그리고 매 화마다 가장 적절한 고유의 호흡과 분량이 있을 텐데, 별 내용 없는 화를 페이지에 맞춰 길게 늘리고, 중요한 내용이 있는 화를 페이지에 맞춰 짧게 압축하고, 그런 건 차라리 페널티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 연재 같은 것에 꽤나 기대를 품어왔었는데, 분량 제한이 없는(유료 결제 회차를 빼고)웹소설들도 포함해 그런 작품들을 보다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겪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작품자체가 재밌다면 거의 상관없는 일이지만, 요컨대 나는 선호하는 ‘호흡’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독자들에게도 있고, 이런 여러 개인적인 호흡들이 모여졌을 때 평균적으로 산출해낸 독자들이 선호하는 호흡은 ‘1화에 5500자 내외’다. 분량이 이것보다 길어지면 화장실에서 읽다가 변비 걸리는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저 정도 분량이 적절하다. 웹툰으로 치자면 60~80컷 정도다. 나이트런이나 블랙 베히모스 읽다가 너무 길어서 뇌가 쪼그라드는 느낌 받은 걸 보면 맞다고 본다. 저것보다 적으면 포만감이 부족해진다. 플랫폼도 독자들로 하여금 돈을 내게 해야 하기 때문에 독자의 의견을 듣고, 작가의 작업한계량도 생각하고, 원고 독촉도 하고, 고료도 올리고, 그런 시행착오들을 겪으면서 고심했을 것이다. 한 화가 갖춰야 할 적절한 분량은 어느 정도인가를.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인간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몇 시간인가 같은 논문들도 찾아봤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고심해서 나온 노하우를 왜 무시해야 하는가? 제한된 분량이란 건 어드밴티지다. 이 어드밴티지를 무시하는 건 박수 받아야할 개척자 정신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운동화 벗고 맨발로 축구경기를 뛰는 셈이 된다.

제한된 형식이 도리어 더 재밌는 글을 만든다니. 글이란 건 참 신기하다. 작법서들만 봐도 그렇다. 작가마다 하는 말이 다른 경우가 많다. 누구는 최대한 문장을 짧게 써야 좋다고 하는데, 이문구의 좋은 글들을 예시로 들면서 그런 말을 하지는 않는다. 누구는 인물이 우선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플롯을 우선해야 한다고 한다. 누구는 가볍게 쓰면 안 된다고 하고 누구는 너무 무거우면 안 된다고 한다. 누구는 정제된 것을 추구하고 누구는 그 정제된 것을 작위적이라 말한다. 좋은 글은 모순을 이겨내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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