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그 날.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졸업식 (작가: 김태연, 작품정보)
리뷰어: 피오나79, 18년 6월, 조회 50

여고라면 어느 학교나 다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여학생들 사이에서 우상과도 같은 존재가 꼭 한 명씩 있었다. 약간 큰 키, 짧은 머리, 남자아이 같은 몸짓에 공부를 잘하거나, 똑 부러지게 말을 잘 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어떤 이유로든 어디서나 눈에 띄는 존재 말이다. 같은 여자임에도 마치 남자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듯이 여학생들을 열광케하는 그런 약간 중성화된 매력을 자아내는 존재. 이 작품 속 민주도 그런 존재이다. 그녀는 같은 학년은 물론 선배 언니들에게까지 인기가 많았다. 극중 나 역시 민주와 중창단 활동을 함께 하면서 그녀와 가까워지게 된다.

동아리에는 위계질서가 확고했고, 선배들은 군기를 잡는다는 핑계로 후배들을 툭하면 야단치고 모질게 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민주가 선배에게 야단을 맞던 나를 구해준다. 선배에게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그만하시라고. 다른 사람 괴롭히고, 괴로워하는 거 구경하는 게 좋냐고, 그러면 뭐라도 된 것 같냐고. 그렇게 시작된 작은 혁명은 학교 내에서 묵인되던 많은 것들을 하나씩 바꾸게 만들고, 선생님들은 민주에게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붙인다. 다들 불합리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서기 싫어서, 혹은 뭔가 나만 피해를 볼 까봐 모른 척 했던 것들에 대해 당당히 옳은 말만 하는 민주라는 캐릭터는 그야말로 통쾌했다. 선배들의 괴롭힘에 맞서고, 여학생들이 당당하게 교복으로 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며 할 말 다하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민주 곁에서 그녀의 둘시네아가 되고 싶었던 나였지만, 민주는 공주 같은 건 별로라며 나에게 산초로 하자고 말한다. 산초는 돈키호테와 언제나 같이 있으니 더 좋다고. 여기서부터 민주와 나 사이에 서로를 대하는 감정의 온도에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민주에게 나는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나는 민주를 사랑하는 연인처럼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동성애 코드로 풀어가지 않고, 갑작스럽게 분위기를 전환하는 사건을 전면에 내세운다. 개인적으로는 잔잔한 로맨스물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먹먹한 드라마로 바뀌는 후반부의 스토리가 더 좋았다.

굳이 세월호 사고처럼 전 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실제로 현실에서 아이들이 작은 부주의로 인한 사고로 인해 어이없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일은 숱하게 벌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수많은 무책임한 어른들에 의한 것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다들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해 외면하고 도망치려고만 하다보니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 버리고, 진실은 영원히 묻혀버리는 경우도 너무 많고 말이다. 이 작품에서 일어난 사고가 현실의 그것과 닮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비겁한 어른들이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을 떠난 그들을 누군가는 기억해 줄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 이 작품은 참 따뜻했다.

작가 분이 추가 결말을 두 가지가 덧붙이셨는데, 결말을 이야기에 포함할지는 읽는 사람 마음대로라고 하셨지만, 굳이 왜 추가 결말을 쓰셨는지 좀 아쉽다. 이미 작품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작품의 주제와 의도라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결말이고, 실제 인물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창조되었음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는 결말이기 때문이다. 가끔 에필로그가 작품의 결말보다 더 상상력을 자극하며, 여운을 남기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에는 그런 에필로그의 역할 조차 하지 못하는 추가 결말이라 삭제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고로 이야기는 삭제하고, 또 삭제해서 군더더기가 없는 가장 매끈한 상태일 때가 완벽한 법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이야기 자체는 매우 술술 읽혔고, 누구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큼의 공감성도 가지고 있고, 동성애 코드를 지나치지 않게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는 점도 좋았고, 후반부의 이야기가 가져오는 애잔함도 괜찮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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