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작품 잘 읽었습니다. 제가 리뷰를 솔직하게 쓰는 것은, 다른 분들이 제 글을 리뷰할 때 괜히 장점을 포장하는 대신 단점을 짚어주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편의상 경어체를 생략하는 부분은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
평범하고 소심한 주인공의 인생에 개입한 천재적(혹은 전지적) 존재에 대한 이야기로, 천재와 대비되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을 그려낸 부분을 무기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솔직한 감상평은, 이 작품은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인물에 대한 설정집을 읽는 느낌을 주었다. 문체는 주인공의 성격처럼 소심하면서도 담담했고, 전반적인 이야기 진행도 큰 임팩트는 없이 조곤조곤하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령의 의사에 끌려다니는 마리오네트처럼 그려진다. 소시민의 삶을 묘사하기 위해서 적절하긴 했지만, 필자 취향에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독자가 주 소재인 의령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기똥찬 묘사로 기술하더라도, 음악을 글로써 풀어내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문명의 시작이나 우주의 끝을 추억할 수 있는 존재가 위대한 아름다움을 깨닫고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소재는 흥미로웠지만, 그 음악 자체를 들을 수가 없는 이상 독자에게는 그 아름다움이 감동이 아닌 하나의 설정으로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뮤지컬 영화를 대본으로 보는 듯한 그런 아쉬움이었다.
가수로 성공한 삶을 살다가 자살한 의령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마지막에 그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 구조는 독자들의 눈을 붙들기에는 충분했지만, 이 캐릭터는 자신이 깨달은 깊은 아름다움에 비해 어린아이 같은 멘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음악가로서의 삶에서 느낀 어려움에 너무 쉽게, 마치 게임을 리셋하듯이, ‘이번 생은 영 별로야. 다시 시작해야지’ 하고 자살해 버리는 부분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명확해 생명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고 해도, 몇 번의 인생을 살면서 우주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사람의 행보라기엔 너무 가볍다. 그 긴 세월을 살면서 깨닫는 것이 우주의 위대함과 삶의 무상함에서 끝날 뿐이라는 설정은 아무래도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철학적 성찰력의 한계를 과소평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또한 지하철에서 굳이 주인공에게 설명을 하면서 믿어달라고 하고, 마지막엔 미안하다면서 떠나버리는 동기가 무엇일지는 신비주의로 놔둔 채 그 이미지만 남기고 사라지는 것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유나가 의령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주인공은 지금까지는 질투라도 할 수 있었던 ‘천재’라는 존재를 넘어서는, 거의 전지적인 존재를 접하게 되고 그에 압도되어 삶이 지극히 사소한 것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깨달음은 거기서 끝난다. 주인공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삶에서 지금까지와 다르게 바뀌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의령과 달리 죽음 이후의 세계가 명확하지 않으므로 자살할 것 같지도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동적 캐릭터의 신세한탄으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의 끝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우주의 스케일에 비하면 분명 우리의 삶은 사소할 것이다. 하지만 그 우주를 바라보면서 아름답다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우리 인간 뿐이다. 인간이 없었다면, 우주는 그저 관객 없는 연극이 되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빅뱅 이후 식어가는 돌덩이들이 색색이 아름답게 빛난다 한들 그것을 볼 사람이 없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필자는 주인공의 비관적인 시선에 술 한잔 건네며 위로는 보낼 수 있겠지만,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려웠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