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농사에 관한 기억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시]위험한 新농부 (작가: 배명은, 작품정보)
리뷰어: 한정우기, 18년 5월, 조회 55

본 글은 창작형 리뷰입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나는 한 해 농사를 지은 적이 없다. 매년 밤을 주운 적은 있다. 외할머니는 밤농사를 하셨다. 할머니. 저 이번에 내려가는데 뭐 사갈까요. 참 이슬 빨간딱지. 소주 한 궤짝을 사서 시골로 내려갔다. 나무에서 툭 하고 떨어진 밤이 고슴도치처럼 제 몸을 웅크렸다. 장화발로 힘껏 밟아 알밤을 꺼냈다. 생밤을 오도독오도독 깨물며 씹었다. 아. 밤 막걸리 마시고 싶다.

 

봄 농활을 갔다. 충남 서산이었다. 이장님 밭에서 고추모종을 심었다. 새참을 먹었다. 어르신들이 주신 건 절대 남기지 말라는 선배의 말에 고봉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잘 먹네. 더 먹어라. 네, 어르신. 고봉밥 두 그릇을 먹었다. 술도 한 잔 하라는 말씀에 소주를 마셨다. 단숨에 소주를 비웠다. 술에 취해 엎어져 밭두렁에 키스를 했다. 씻은 뒤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으니 고추모종을 땅에 심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해 여름, 같은 마을로 여름 농활을 갔다. 혼자 농사를 짓는다는 할머니를 돕기 위해 마늘밭에 갔다. 잡초가 허리까지 자라있었다. 잡초를 뽑고 다 자란 마늘을 뽑았다. 정글처럼 우거진 마늘밭에서 뱀을 본 후배들이 소리를 질렀다. 이장님과 5리 반장님이 소주와 수박을 가져오셨다. 소주를 원 샷하고 수박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너 술 먹고 안주 먹으면 그거 다시 물 되는겨. 한 잔 더 해라. 네. 한 잔 더 마셨다. 이장님이 일 잘한다고 자꾸 자기 둘째 아들이랑 만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셨다. 마침 이번 주에 집에 내려온다고 하셨다. 5리 반장님이 저 쬐까난 게 무슨 농사를 짓겠냐고 쓸데없다고 하셨다. 저를 위해서 하신 말씀은 아니겠지만 감사합니다. 5리 반장님.

 

아침과 저녁은 항상 마을회관에서 먹었다.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밥을 했다. 설익은 밥이 나오기도 하고 진밥이 나오기도 했다. 탄 카레를 먹은 적도 있었다. 국처럼 끓인 카레인데 탄 맛이 나는 게 신기했다. 밥을 먹기 전에는 항상 농민가를 불렀다. 삼천만 잠들었을 때, 잠에서 깨어. 근데 이 노래 언제 나온 걸까. 인구가 삼천만인 적도 있었구나.

 

논에 가서 피를 뽑는 일을 도우라고 하셨다. 올해 처음으로 농사를 지은, 귀농한 부부가 하는 논이었다. 제초제를 뿌린다는 걸 약을 잘못 뿌렸다고 하셨다. 어느 게 피이고 어느 게 벼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가뭄도 아닌데 논바닥이 쩍쩍 갈라져있었다. 피가 잘 뽑히지 않았다. 새참을 가져오신 어르신이 아직도 이것 밖에 못했냐고 하셨다. 시범을 보여주겠다고 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양반들이 논의 물을 너무 빨리 뺐다고 투덜거리셨다.

 

서산에 있는 마을을 돌며 농활 진행을 돕던 부학생회장이 우리 마을에 왔다. 그날 저녁에 작은 세미나가 열렸다. 한미 FTA가 주요 화제였다. 세미나가 끝난 뒤 각자 소감을 말하는데 후배 중 하나가 칠레산 포도가 맛있다고 했다. 세미나가 연장되었다.

 

마지막 밤, 마을 잔치를 열었다. 삶은 국수 면에 고명을 얹고 육수를 부어 어르신들에게 드렸다. 돼지머리를 준비해 고사도 지냈다. 우리가 있던 마을은 풍물 동아리가 있었다. 마침 우리도 풍물패인 아이들이 많았다. 풍악을 울렸다. 어르신들이 덩실 덩실 춤을 추셨다. 풍물 동아리 어르신이 나보고 북을 치라고 하셨다. 할 줄 모른다고 하니 그냥 박자 맞춰서 치면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북을 쳤더니 곧 도로 가져가셨다.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폐렴에 걸렸다. 열이 급하게 올라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가 다시 제 색으로 돌아오곤 했다. 의사가 요즘에 무리한 일이 뭐가 있냐고 물었다. 농활을 갔다 왔다고 했다. 옆에서 엄마가 나를 째려보았다. 열이 한 번만 더 오르면 응급실에 가서 입원하라고 했다. 21세기 서울 한 복판에서 폐렴환자가 웬 말이냐며 친구들이 문자로 놀려댔다. 엄마가 농활 금지령을 내렸다.

 

나는 가을 농활을 가지 못했다.

 

 

농사에 대한 기억은 사실 이게 다네요. 농사 일이 정말 힘들다, 술을 엄청 마신다. 이렇게 딱 두 개로 요약되는 것 같아요ㅋㅋㅋ 이게 10년도 더 지난 기억이라는 게 슬플 뿐입니다… 저는 시라기보다는 수필에 좀 더 가까울 것 같은데… 명은님의 시를 보니 이때 기억이 나서 써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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