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물은 트랜디해질 수 있는가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은원(恩怨) (작가: 엄성용, 작품정보)
리뷰어: 조나단, 18년 3월, 조회 236

엄성용 작가님의 <은원>을 마침 읽었던 차에, 후안님이 자게에 쓰신 <시작이 반이다> 글에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고, 이어 한정우기님의 리뷰를 보고는, 저도 말할 꺼리가 있을 것 같아 ‘주관적인’ 리뷰를 보태봅니다. 작가와 읽은 분들만 아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작품을 먼저 읽어주셔요.

-사람마다 작품을 보는 기준이 있고, 저 역시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저만의 기준으로, 두 가지를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은원>은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저는 무협 장르는 잘 모르지만, <은원>을 읽으며 느낀 첫인상은, 매끄럽고 트랜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트랜디하다는 것은 저만의 표현인데,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뜻입니다. 무협을 모르는 저도 재미있게(게다가 흥미롭게) 읽었고, 응원글들 보니 다른 분들도 그런 것 같더군요.

거기엔 물론 작가의 내공과 필력이 있다고 봐야겠지만, 일단 그건 차치하고,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스토리라인이 한 몫한 것 같습니다.

 

먼저 풀어가는 방식. <은원>은 대화로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본격 무협이나 겨루기(?)를 기대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건 애초 작가의 관심사가 아니기에) 대화를 통해 은원의 근원을 쫓아갑니다. 그러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함축적으로 전달하지요. 사이사이 가미되는 무협의 설정/코드들(창술, 도법, 일섬의 추리 등)은 장르적인 (물론 흥미진진한) 덤일 뿐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대화로 풀어가는 이야기예요.

그러한 방식은 신선한 것도 아니고 많이 애용되는 것이지만, 이 작품에선 좀 더 효과적으로 작용합니다. 설정들의 사족을 제거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대화 안에서 기승전결을 보여주고, 작가가 아직 쓰지도 않은 후일담(또는 외전)을 기대하게 합니다. 그 모든 걸 속도감 있게 보여주지요.

 

다음은 스토리라인. 대개의 무협물이 그렇듯, 이 이야기도 ‘사랑하는 가족이 죽고, 주인공이 원수를 찾아가 복수하’는 전형적인 로그라인을 갖고 시작합니다. 그런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전형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아요. 그것을 ‘계속’ 비틀고 변형하면서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심리적인(?) 반전들을 선사합니다. 어떤 식이냐 하면,

1)정파를 신봉하던 아버지는 정파 고수들에게 살해 당했고.  2)복수는 아들인 ’나’가 아니라 사파 고수의 의해 행해지고.  3)사파 고수가 정파 고수들을 찾아가 알게 되는 진실은… (스포일러라 생략) 의외의 사연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의 실체가, 무협 장르의 전통을 따라간다기 보다는, 현대적으로(그래서 트랜디하다?) 보인다는 것입니다. 독자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면서 변화무쌍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해와 공감이 가는 이야기죠. 요즘 트랜드에서, 이를테면 아침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연이거든요.

 

다시 돌아가서, <은원>은 결국 작가의 내공과 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장르 독자가 아니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아직 안 읽으신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그런데 제가 의아한 건, 게시글에서 하신 작가의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던 아쉬움과 부족함이 뭔지를 바로 알게 됐어요. 짧은 분량에 너무 몰아넣은 점. 그러니까, 풀어줘야 하는 거죠. 그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그리고 어떤 독자는 인물들에 아쉬움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의견에, 작가의 자책에 반대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이지요.

 

<은원>의 인물들에 대해 작가는 부족함이 있다고 느낀 것 같고(충분히 그럴 수 있죠. 작가니까요), 저 역시 인물들의 비하인드가 궁금하긴 하지만… 그러나 딱 이 정도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의도 했든 안 했든) 인물들 역시 적절하게 배치하고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하고 있으니까요.

<은원>이 장편이거나 대화체 보다는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이라면, 인물들을 더 설명하고 감정과 정서를 주는 것이 맞겠지만… 단편인 <은원>에서는, 지금의 서술 방식과 스토리라인에 있어서는 그렇습니다. 지금 이 구조에서 인물 묘사/서술이 더 들어갔다간, 속도감이 떨어지고 서술방식이 망가지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작가가 느낀 아쉬움과 부족한 점은 뭘까요…? 아마도, 제가 생각하는 아쉬움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은원>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은원>은 짧은 이야기를 통해, 올곧고 줄기차게 ‘정과 사’를 이야기합니다. 전통적인 정과 사의 구분에 의문을 갖고, 그러한 구분이 현실에선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 역시 무난합니다만, 저는 조금 불협화음(?)을 느꼈습니다. 매끄럽고 트랜디한 구조를 취하고 있으면서, 전통적인 무협 담론이 어울리고 있는가? 트랜디한 구조와 스토리라인에서 보여주는 주제치고는 좀 올드하지 않은가?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 입니다.

 

물론 이해는 갑니다. (게시글로 유추해 보면) 작가는 무협 장르를 처음 시도해 보고, 그러면서 취할 수 있는 것은 무협적인 주제를 안착시켜보는 것이었겠지요. 당연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장르와 그 안에서 풀어가는 방식과 스토리 자체에서는 자유롭게 개성을 드러냈으면서도,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에서는 틀 안에 갇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쩌면 작가가 그 부분은 쉽게 생각한 것일 수 있고요.

좀 더 나아갈 수는 없었을까요?

정과 사를 이야기한다면, (위 구조나 스토리처럼) 좀 더 현대적으로 변형하고 비틀 수는 없었을까요?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주제는 결국 무협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고, 이 무협 장르물을 읽는 사람은 무협팬들이기 보다는, 결국 현대의 독자들이니까요. 작가도 그들을 대상으로 썼을 테니까요.

또는, 무협 장르를 취하면서도 주제적으로는 아주 현대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을까요? (쓰면서 떠오르는 시나리오 작가가 있네요)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말이죠.

 

여기까지. 제가 개인적으로 느낀 <은원>의 아쉬움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일 뿐이고, 이 작품이 재미없거나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지요. <은원>이라는 단편은 이 자체로 제 역할을 완수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다만 이제 ‘곧 하나 둘 연결고리 작품들을 쓰실’ 작가에게 작은 자극을 주고 싶습니다. 갇혀있지 않은 작가라면, 작은 자극에도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리라는 걸 아니까요. 다음에 나올 <은원> 연작은 주제면에서도 좀 더 트랜디하고, 현대의 젊은 독자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덧. 작가와 읽은 분만 아는 내용이라고 분명히 말을 했는데도, 감사하게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안 읽으신) 분들께서는^^! 지금이라도 작품을 읽고 작가를 응원해 주시면 좋겠어요. 더 실랄한 자극을 주셔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작가는 분명 알아 들을 테니까요.

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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