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짝사랑 문제]를 쓰고 있는 추리하는 Stelo입니다.
1.
이 리뷰는 시작부터 스포일러 밖에 없으니, 안 읽으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저는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반전을 눈치챘습니다.
제가 천재적인 추리력을 가져서는 아닙니다. 어떻게 주인공의 성별 묘사가 안 나왔다는 것만으로 그 결말을 눈치채겠어요.
그냥 이런 반전을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리체르카님의 [나를 좋아해줘]를 읽어서 이런 소재로 쓰실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2.
저는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지만,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들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남자를 좋아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길 가면서 남자들을 볼 때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아름다운지 고민해보기도 해요. 티비를 보면서 저 남자 배우는 어떻게 아름답고 잘 생겼는지 성적인 매력은 뭘지 느껴보려고도 하죠.
하지만 저는 결국 여자가 아니라 남자잖아요. 그러다보니 동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뭔지 약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 아픔도요.
3.
한 남자애가 같은 반 여자애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용기를 내어 마음을 고백했죠. 그랬더니 여자애가 이렇게 말해요.
“미안. 남자는 안 좋아해.”
현실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커밍아웃이라 하죠. 누가 자기가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용기를 내겠어요. 적당히 둘러대겠죠.
그런데 이게 제 지인이 실제로 겪은 일이에요. 고등학생 때는 아니었어요. 정확히 어떤 말로 거절했는지도 몰라요. 단지 제 지인이 고백한 그 분은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였을 뿐이죠.
4.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어떤 여자애를 좋아했어요. 한 순간에 반했죠.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백하질 못했어요. 그 아픔은 제가 용기가 없어서, 자신감이 없어서 그랬을지 몰라요.
저는 길 가며 잘 생긴 남자를 보면 생각했어요. 동성애자라면 저 남자에게 반해도 ‘고백할 수가 없겠구나’
이성애자의 짝사랑은 운이 좋냐 나쁘냐의 문제죠. 그 사람이 운 좋게 나를 사랑해줄 가능성… 사실 존재해요. 받아줄 가능성도 없지 않아요.
하지만 동성에게 반했다면 그 가능성은 0%에 가까워요. 이건 자신감이나 용기의 문제가 아니에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죠.
문제는 사람의 마음이 정말 마음대로 되던가요. 그냥 반해버렸는데. 억누르고 포기해야 했어요. 모두에게 숨기고 마음을 죽여야 했어요.
5.
제 동생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동생의 친구 중에 한 명이 레즈비언이라고 아웃팅을 당했어요.
학교에 소문이 퍼진 건 물론이고요. 도덕 선생님이 “동성애가 옳은가 그른가?”를 가지고 토론을 시키고 그 애에게 의견을 말하게 했다고 했어요.
잔인하죠. 동생은 울면서 화내면서 그 이야기를 했어요.
저도 같은 학교를 나왔고, 그 선생님을 알았어요. 여성학을 전공해서 석사까지 받으신 분이었어요. 석사 논문 발표하러 가시느라 수업을 쉬신 날도 있었죠.
6.
제가 짐작한 반전이 사실이 아니길 바랬어요. 그건 비극이니까요.
저는 동성을 사랑하는 아픔이 가벼운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반전이 주는 효과가 있긴 해요. 사랑은 같다는 걸 보여주죠. 동성애라고 끔찍하게 생각하는 편견을 부수는 효과가 있을 거에요.
하지만 아무리 비슷하더라도 다르기도 해요. 차이가 있죠. 저는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동성애자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요.
감히 추측해볼까요. 키가 작은 주인공은 고백할 마음이 없었을 거에요. 몰래 가슴 속에 마음을 묻고 단지 ‘벚꽃잎’만 떼어주려고 하진 않았을까요.
하지만 마지막에 그 목티를 입은 남자가 그 사실을 눈치채버려요. 그 비밀이 부서져버려요. 주인공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냥 웃으면서 넘길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을 따져보면요. 저는 자꾸만 두려워져요. 한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공을 경멸할 테니까요.
7.
이 반전이 보여주는 효과가 또 있어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반전이 아니라는 거죠. 놀란다는 사실 자체가 독자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어요.
저는 채식주의자에요. 사람들이랑 회식 같은 걸 하면 ‘당연하게’ 고깃집에 갈 때가 있죠. 제가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하면 다들 ‘예상치 못한’ 반전에 놀라요.
Y에 올라오는 글을 보는 사람들도 그래요. 당연히 편견을 가지고 이 글을 올린 건 여자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저는 어떤 사람을 처음 보면 그 사람이 말하기 전까지는 “이 사람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해요. 평소에 그런 습관을 들이고 연습을 해왔어요. 물론 이성애자일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겠지만 그러려고 노력해요.
제가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이 반전을 직감적으로 눈치챘을지도 몰라요.
8.
저는 이 뒤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가벼운 반전, 웃고 넘어갈 이야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 열린 결말이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듯 느껴져요. 주인공은 사랑을 들켰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저는 어떤 남자가 저에게 고백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해보곤 해요. 저는 혐오감도 미안함도 아니라면 어떤 대답을 들려줘야 할까 생각해요. 그저 ‘존중’하는 게 아니라요. 그 용기에 어떻게 답해줘야 할지 고민해보곤 해요.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어떻게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해봐요.
A는 그런 고민을 해봤을까요?
9.
리체르카님은 이용자A가 최근에 ‘애인’과 헤어졌다고 쓰셨어요. 여자친구가 아니라요. 성적 지향을 감춘 거죠. 어쩌면 이 A도 남자를 사랑할지도 모른다고 기대해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죠. 제 머릿속에는 슬픈 가능성들만 떠올라요. 주인공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성애자들은 그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가벼이 웃어넘기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이야기가 다른 짝사랑 이야기들처럼 저에게는 슬프기만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