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감정은 공포다.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
H.P.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신화’의 창조주로 알려져 있다.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형상화 한 크툴루 신화는 대중매체에 너무나도 거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좋아하거나 읽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러브크래프트의 문학 속에 담긴 기이한 요소들이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처음으로 러브크래프트를 접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러브크래프트의 문학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리고 이런 반응이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일 테다.
러브크래프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브크래프트가 살았던 시대와, 러브크래프트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러브크래프트는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살았다. 러브크래프트의 아버지, 윈필드는 러브크래프트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원에 수용되었고, 곧 그곳에서 삶을 마감했다. 어머니인 사라는 러브크래프트를 외조부에게 맡겼는데, 외조부는 전형적인 19세기의 영국인이었다.
외조부는 러브크래프트에게 고전 명작을 읽게 하고 오래된 괴담이나 19세기에 유행했던 고딕 소설들을 읽어주곤 했는데, 러브크래프트의 취향도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 이국적인 아랍의 이야기, 공포 소설, 고대의 문화 등 19세기적인 것에 치중되었다. 러브크래프트의 가정환경은 학교와 관련된 일화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어려서부터 병약했다. 대체로 신경적인 문제였지만, 수학에 약한 것도 한 몫을 했다.(수학과 신기술에 대한 공포를 형상화 한 것만 같은 니알라토텝과 연관을 지어 생각하면 재미있다.) 이에 외조부는 잉글로색슨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가문임을 강조하면서 통학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하고, 대신 독서와 가정교사를 통한 교육을 시켜주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외조부가 전형적인 19세기 사람이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러브크래프트 또한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 19세기적인 면모를 갖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훗날 러브크래프트는 친구와 주고 받던 편지에서 자신은 19세기적인 사람이기에, 20세기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뉘앙스의 내용을 밝히기도 했는데, 러브크래프트의 인격과 문학은 할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낡은 취향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러브크래프트가 복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러브크래프트의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난다. 외조부가 갑자기 숨을 거두게 된 것이다. 외조부가 벌이고 있던 사업은 외조부의 죽음과 함께 무너졌고, 러브크래프트의 풍족한 생활은 그렇게 깨지고 만다. 러브크래프트는 더 이상 풍족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여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했고, 어머니 또한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를 이기지 못한 채 정신발작과 히스테리로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어머니가 수감된 병원은 아버지가 수감되었다가 숨을 거둔 바로 그 정신병원이었다.
러브크래프트의 가정환경은 정신병원으로 시작해서 정신병원으로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러브크래프트의 문학은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와 <공포로 인한 광기> (어쩌면 둘은 하나일지도 모른다.) 러브크래프트의 가정환경 속에서 이러한 키워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아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러브크래프트를 논하는데 있어서 그가 보인 인종차별적 면모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이다. 러브크래프트는 대외활동을 꺼리고, 대부분의 사교 활동을 편지를 쓰는 것으로 대신했다. 방대한 분량의 편지가 남아있는데, 문제는 편지 속에 담긴 인종차별적인 세계관이다. 단순히 편지에만 담긴 것이 아니라,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에서도 인종차별적인 묘사가 많이 녹아 있다. 이러한 인종차별적인 세계관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러브크래프트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사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밖에 입장의 우리는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유추할 수는 있다. 다름 아닌 외조부이다. 러브크래프트에게 19세기적인 가치관을 주입했던 사람,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다는 잉글로색슨의 혈통을 강조하며 홈스쿨링을 허락했던 사람.
이런 관점에서 보면 러브크래프트의 문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또한 유추할 수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대표작인 <니알라토텝>을 보자. 러브크래프트가 <니알라토텝>에서 묘사하는 공포의 근원은, 다름아닌 신기술이다. 20세기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이 기존의 세계관을 대체하게 된 시대이다.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 19세기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러브크래프트가 그것을 문학적으로 승화한 것이 이른바 <크툴루 신화>라고 한다면.
이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20세기의 문학을 감상하는 재밌는 관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관점에서 러브크래프트의 문학은, 20세기를 살아가는 19세기적 인간의 비평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