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땅에 살며 하늘을 경외하고 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이야기여요. 묘하게 19세기스러운 느낌이 나는 건 날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와 기구 때문이 아니었을지 싶네요. 주요 인물들 이름도 조금 특이해요. 에이브릴이 아니라 아브릴, 클라라가 아니라 끌라라.
듣는 아이라는 독특한 백치. 신의 뜻을 따라 내린다는 비가 어디로 내릴지 아는 백치. 아브릴은 비싼 돈을 주고 데려 온 끌라라의 시종이었죠. 이유도 모르고 그 작은 소년을 사랑하게 된 어린 폭군의 미래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지만, 한편으로 기대되기도 했답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하는 것들이요.
비가 언제 내릴지 언제 가뭄이 올지는 알지만 세계의 끝으로 가고 싶어하는 듣는 아이. 아브릴과 같은 모든 이들이 그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세계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끌라라였지만 어느 눈 내리는 날 결국 아브릴을 위해 세계의 끝을 향해 여행하는데, 도착한 곳이 세계의 끝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끌라라는 화를 낼 뻔해요. 그가 죽음이 임박한 듣는 아이들에게 나타난다는 발작 증세를 나타내지 않았다면 아마 손을 댔겠죠.
이야기가 대체로 잔잔하게 흘러가는데 끌라라의 아브릴을 향한 비뚤어진 애정으로 가득한 것처럼 읽혔어요. 내가 네 주인인데 감히? 하는 시점에서 천천히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그것을 위해 공부하고 발명해서 결국 신성불가침 영역인 하늘을 침범하고야 마는. 금기를 저지른 후에 뒤따를 일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아무튼 사랑이었어요. 아브릴을 이용하다가 아브릴 때문에 방향을 틀고, 그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날아오르고.
듣는 아이가 아브릴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세계의 끝을 소망하는지 아니면 아브릴이 특이한 경우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해요. 그들이 어떤 연유로 신의 뜻을 알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죠. 글을 따라가며 알 수 있는 건 끌라라의 사랑 정도요. 그를 위해 살아가는 삼촌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겠죠.
세계의 끝은 긍정적인 이상향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어요. 잔인한 자들이 사는 곳. 괴물과 새들이 있는 곳. 그곳을 과연 꿈꾸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계는 아주 많이 작았어요. 결국 언젠가 누군가는 세계의 진짜 끝을 향해 날아올랐겠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이루어낼 지는 일이 일어난 다음에야 알겠지마는. 그래도 끌라라는 다시 하늘을 날 것 같아요.
결코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세계여요. 그러나 이후가 궁금해지는군요. 좋은 이야기였어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