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를 아낀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어머니를 얄팍하고 속물적인 인간으로만 설정한 것인지, 작품 전반에 드러난 어머니의 캐릭터가 다소 평면적이다. 하지만 그 부분이 오히려 이 딸이 들려주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는지도 모른다.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의 다채로운 면모를 발견하기 힘들므로,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의 사고를 뒤집어엎는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누군가의 속내를 제대로 살펴보려고 하지 않으므로.
인상 깊게 읽은 전작 <국립존엄보장센터>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에 알맞은 수준의 디테일을 부여하고 죽음과 삶의 경계를 관조하는 작가의 저력은 여전하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책임진다는 것. 그러나 이 작품에는 군데군데 글을 쓰다 지친 것이 보이는 부분이 있어 다소 아쉽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감염된 어머니를 죽음으로 부축하는 딸의 한 발자국 발자국을 찬찬히 짚어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문장에서는 영락없이 속으로 ‘엄마’, 하고 중얼거리게 된다는 점이다. ‘엄마’, 하고, 먹먹한 그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