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가짜’에 거부감을 갖는다. 진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진품과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짝퉁과 거짓말을 의도적으로 선호하는 사람은 없다. 개인적으로 감탄하고 감명을 받았던 물건도 사실 위작이고 모작이며 표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불과’라는 표현을 자연스레 함부로 떠올린 필자 역시 이미 이런 선입견에 얽매였다는 증거다.) 밝혀지는 순간 그것이 가지고 있던 모든 가치는 사라져버린다. 원래 있던 물건은 티끌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일 뿐인데, 가짜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 우리가 가짜에 느꼈던 그 감동과 호의적인 감정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주인공 ‘나’역시 이러한 가짜들에 시니컬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가짜 술에, 가짜 나무에, 승무원들의 가짜 친절 역시 ‘서로 다른 삶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면 베풀 수 있는 친절의 크기 역시 다르다’며 이 모든 가짜들을 비아냥거린다. 한때 아내와 딸과 함께 진실로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도 했지만, 테러로 인해 딸을 잃은 뒤 아내가 화성에서 이룩한 모든 업적을 거짓이라 규정하고 결국 화성을 떠나버린다. 테러가 있기 전까지 주인공에게 화성은 힘들지만 그래도 견딜만한 진실한 장소였다. 그 모든 것들이 어떠한 힘에 의해서 단 한순간에 모조리 거짓으로 변해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저 주인공 나가 스스로 그렇게 규정했을 뿐일까?
작품 중간 중간의 묘사에서 시적인 아름다움과 주인공의 시니컬한 조롱이 어울려 분위기를 더 어둡고 우울하게 만든다. 빠른 전개 사이에 퉁명스레 툭툭 던지듯 두세 번 생각해볼법한 문장들이 끼어있으니 이러한 요소들은 몇 번쯤 다시 천천히 정독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테러로 인해 주인공이 딸을 잃었던 날 들었던 경관의 대사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라는 반응이 절로 나온다. 표정이 ‘잘 익은 도자기처럼 매끈했다’는 묘사도 그렇고, 아마 이 장면은 윌 스미스 주연의 SF영화 ‘아이로봇’의 오마주가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