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엘 디아즈가 살았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카나엘 디아즈의 하루 (작가: BornWriter, 작품정보)
리뷰어: , 17년 10월, 조회 54

(이 리뷰는 제일 마지막 문단만 읽어도 됩니다.)

 

소설이란 놈은 수다스럽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거에요. 1920년대 미국을 소설로 쓰자면 거리를 지나는 신사들의 모자가 어땠는지 그들이 지나면서 어떤 농담을 던지는지 따위를 문장으로 그려내야 합니다. 그 시대가 들어나는 염세적인 농담이면 더욱 좋지요. 영화나 드라마라면 단 한 컷으로 끝날 그런 풍경에 소설가는 어떤 입김을 얼마나 불어 넣을지 고민합니다. 저 마다의 방식으로 독자를 자신의 이야기로 서서히 안내하죠. 그래서 영화가 관객의 멱살을 잡고 달려가는 열차 같다면 소설은 안개 속에서 손짓하며 독자가 천천히 따라 오길 기다리는 귀신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리곤 끝내 하려던 이야기에 당도 했을 때서야 독자들은 알게 됩니다. 아 결국 이 이야기를 하려던 거였군. 재밌는 수다였어. 짝짝짝.

하지만 아주 과묵한 귀신도 있는 법이지요. 이들은 태연하게도 내가 들려 줄 이야기는 겨우 이 정도야 라며 몇 마디만 툭 던지고 가버립니다. 행간과 행간의 의미를 찾고 풍성한 묘사와 탁월한 문장을 기다리며 눈을 부릅 뜬 독자들은 놀랍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를 매꿀 의도는 원래부터 없었다면서 ‘그가 태어났고 살다가 죽었어’ 라고 끝내 버리니까요. 안개도 없이 그저 떡 하니 앞에 서 있는 귀신들. 영화라기 보단 사진에 더 가까운 이야기들. 소설이 다다를 수 있는 뻔뻔하고도 놀라운 영역이 여기에 있습니다.

<카나엘 디아즈의 하루>를 읽고 제 하루를 생각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합니다. 일을 하고 퇴근을 합니다. 퇴근 버스 안에서 쪼그려 앉아 글을 씁니다. 먼저 간 사랑하는 이들이 떠올라 몇 정거장 먼저 내려 괜히 걷는 날도 있습니다. 집에 와선 밥을 지어 먹습니다. 설거지를 합니다. 책을 좀 읽는 날도 있습니다. 어제를 생각하고 내일을 걱정하며 잠듭니다.

제 작가 소개 프로필 ‘설거지와 읽고 쓰기를 미루지 않습니다’ 가 제 삶의 모든 목표인 마냥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상처 받지 않은 듯 말이에요. 이런 일상을 버텨낸 끝에 삶이 다다를 수 있는 당연하고도 값진 영역이 있으리라 믿으니까요. 그래요, 이런 소설은 리뷰도 과묵해야죠. 딱 세 마디만 더 할게요.

 

잘 쓰셨어요.

잘 읽었습니다.

다 잘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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