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짜인 단편 공모(비평)

대상작품: 불법 개조 가이노이드 성기 절단 사건 (작가: 전혜진, 작품정보)
리뷰어: Narst, 17년 10월, 조회 107

주로 SF는 인류에겐 아직 먼 미래를 그립니다. 블랙홀을 타고 은하간 여행을 하거나, 타임머신을 만들어 시간여행을 하거나. 하지만 이 작품은 아주 가까운 미래를 그립니다. 여기저기에서 개발하기 바쁜 섹스로봇(이하 가이노이드)이 주인공입니다.

이 작품자체는 끔찍한 불법 개조 가이노이드 성기 절단 사건이 일어난 후 제작사의 해명 인터뷰입니다. 가이노이드 제작사의 한국지부 대변인인 듯한 화자가 혼자서 줄곧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건에 대해서, 회사의 입장에 대해서, 가이노이드에 대해서. 어떻게보면 설명만 하는 글입니다. 그래서 약간 지루한 감도 있더군요. 하지만 친근하고 가벼운 어조라 읽고 있으면 수다떨기 좋아하는 친구와 대화하는 것 같아 그리 불편하진 않습니다. 사이사이에 센스있게 한국 특유의 문제를 쿡쿡 찔러주는 모습은 시원하면서도 착잡한 기분을 들게하지요.

하지만 이 작품이 진정 뛰어난 부분은 긴 설명을 지루하지 않게 늘어놓는 것이 아닙니다. 노련한 글의 설계가 백미입니다. “이 문제를 설명하려면~”으로 시작하는 인터뷰는 시종일관 ‘이 문제’, ‘문제를 일으킨’ 하고 불법 개조 가이노이드 성기 절단 사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가 뭔데?’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작가는 한국의 여성문제와 가이노이드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하며 긴장의 끈을 팽팽히 당깁니다. 그리고 필요한 준비물이 다 갖춰졌을 때 작가는 뻥 하고 충격적인 전말을 쏟아냅니다. 이 끔찍함 뒤에 숨어있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성이 독자의 충격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저는 읽은 뒤에 머리가 살짝 아파올 정도였습니다. 잘짜인 단편임엔 틀림없습니다.

충격을 겪고 다시 이 작품을 읽으며 느낀 부분은 섹스로봇 제작사의 딜레마입니다. 작품의 큰 줄기는 아니었지만 읽고나서도 계속계속 생각을 거듭하게 되는 부분이죠.

왜 섹스로봇이 필요할까요? 단순히 성욕처리라는 목적 하에서는 오나홀을 쓰면 됩니다. 왜 그렇게 인간과 닮은 섹스로봇을 만들려 할까요? 답은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정욕을 내키는대로 배설해도 상관없는 인간을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섹스로봇 제작사가 파는 것은 성욕처리기계가 아니라 바로 그 환상입니다. 원하는대로 휘둘려줄 아름다운 인간.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공공연한 자리에서 할 수는 없겠지요. 작 중에서도 그런 논란을 고려했는지 화자는 신중한 태도를 보입니다. 일단 성적위안용 가이노이드는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라고 말하죠. 그리고 가이노이드가 ‘그야말로 인간과 같은 반응’라는 발언을 굳이 취소하는 장면도 그렇습니다. 이런저런 방면에 대한 세심한 생각이 들어있다고 느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 더 깊게 파고드는 이야기도 읽고싶지만 그러면 단편이 너무 무거워지겠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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