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까지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웹소설쪽 판타지 영지물이라 하면 보통 두 가지 클리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몬스터를 쓸어버리는 검사형 영주, 혹은 회빙환 치트키로 모든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는 주인공.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주인공 카스펠 폰 티펠은 ‘괴물같은 동안(童顔)’에 ‘곰 같은 덩치’를 지녔지만, 정작 그의 진짜 무기는 검이 아니라 10년간 갈고닦은 행정 감각이다. 그나마 철심을 박은 롱소드만한 지팡이를 휘두르고, 매일같이 검술 연습은 하지만, 지팡이를 휘두르는 실력도 “본직이 아니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닐 정도로 어중간하다. 그냥 호신용. 실제 전투는 ‘전 여친’이 소개해 준 용병 출신 여기사가 한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이 얼마나 작정하고 ‘현실적인 스토리’를 따르려 하는지 알 수 있다.
[진짜 폐허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카스펠은 남부 대귀족 티펠 백작가의 삼남으로, 10년간 가문의 내정 총괄직을 맡아왔다. 조카들이 장성하자 스스로 실권을 주고 물러났고, 이를 아깝게 여긴 가문이 황실과 거래해 그를 영주로 만든 것.
그런데 그가 부임한 에린시아는 판타지 영지물의 “황무지부터 시작”이라는 클리셰조차 순진하게 느껴질 만큼 처참하다. 성문은 아예 없고, 성벽은 무너져 돌무더기만 남았다. 영주관은 도착하자마자 어딘가가 무너지는 소리를 낼 정도다.
전대 영주가 “영지는 풍요, 군대는 충실”이라는 새빨간 거짓 보고서를 올리고는 정작 궁핍을 수습하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이 소설이 그리는 재건이 얼마나 밑바닥부터 시작하는지 체감할 수 있다. 1000명도 안되는 주민들이 살아남기 위해 성벽의 벽돌마저 빼내어 팔았다는 디테일은, 이 작품이 판타지적 낭만보다 ‘궁핍과 생존의 리얼리티’를 택했음을 보여준다.
오늘부터 그의 집이자, 일터이고, 고향이며…… 아마도 그의 관이 될 장소였다.
(뭐가 있어야 관으로라도 쓰지… 잘못하면 지금 당장 관이 되게 생겼네 어쩔…)
이 한 문장은 이 소설의 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영웅적 사명감이 아니라, 그저 맡겨진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각오. 카스펠은 뭔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이 땅을 구원하러 온 구세주가 아니라, 그저 여기서 살아가고, 여기서 죽을 사람— 정말 지극히 평범한 젊은 영주일 뿐이다.
이 궁핍은 무기 하나 없는 주민들의 모습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마을 남자들은 청소하던 빗자루를 검 삼아 휘두르며 검술 연습을 한다. 처음엔 하나였던 그 빗자루가 둘이 되고, 다섯이 된다. 변변한 무기 하나 없어도 다시 싸울 준비를 하겠다는 그 마음가짐이야말로, 이 소설이 그리는 재건의 본질을 가장 소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치트’가 아닌 ‘자본’]
카스펠에게 주어진 유일한 이점은 초능력도, 회귀 지식도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황제가 미리 짐작하여 하사한 꽤 많은 예산”뿐. 이마저도 무한히 지원하는 게 아니라, 내려올 때 받은 한 번이다. 즉 세밀하게 관리하고 아껴 써야 하는 유한 자원으로 그려진다.
소설은 이 자본이 어떻게 세제 개편, 산림권 개방, 상단과의 거래, 용병 모병 등으로 조금씩 전환되어 가는지를 놀랄 만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가족’이 아니라 ‘가구’단위로 세어 매긴 가구세와 목재 교환 비율, 주급 계산까지 이어지는 디테일은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연상케하며,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진짜 정통 영지물”이라 불릴 자격을 얻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어둡고 무겁지만은 않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소설은 시종일관 진중하고 무거운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은 이 절망적인 배경 위에서도 사람 사는 냄새와 발랄함을 놓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런 낙차는 1화부터 시작된다. 텅 빈 영주관 홀에서 카스펠은 위엄 있게 외친다.
“폐하의 명을 받아, 이 땅을 다스리러 왔고, 죽은 이로부터 이 땅을 맡아 영광스러운 제국의 영지로 되살리기 위하여 왔으니! 모습을 드러내라!”
(어명이오! 는 귀신에게도 무적이지 ㅇㅇ)
문제는 이 대사가, 내려놨던 짐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여 약간 겁을 먹고 텅 빈 방을 향한 혼잣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서고에 숨어 있던 아이들이 그 모든 걸 들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며, ‘위엄’ 넘치던 영주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지는 처지가 된다. 이 낙차야말로 이 소설이 무거움과 유쾌함을 오가는 방식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후로도 코믹한 활력은 소설 곳곳에 스며 있다. 카스펠이 청소를 맡긴 여인들 몰래 지팡이 검술 수련을 하다가 땀에 젖어 옷을 벗으려던 그를 엘리노어가 “지금 그 모습 완전히 외설물입니다.” 라며 다급히 막고 청소를 돕는 여인들 중 다섯이 과부(그중 셋은 5년째)라고 귀띔해 카스펠을 당황시키는 장면도 기습적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또한 재무관이 된 (아마도 중국인) 상단주 샤오 론과의 티키타카는 특히 이 소설의 감초 같은 존재다. 동방식 말투로 “-해”를 붙이며 능청스럽게 농담을 던지는 샤오와, 그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쳐 도리어 웃음을 만드는 카스펠의 대화는 매 화마다 빠지지 않는 재미 요소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지 못해 허둥대는 엘리노어의 모습은, 딱딱한 행정관 캐릭터에 인간적인 빈틈을 더해준다. 에린시아의 안주인이 되겠다는 샤오의 농담에 정색하며 끼어드는 엘리노어, 그런 그녀를 두고 “그 정도가 딱 좋다”고 놀리는 주변 인물들의 반응까지. 이 삼각 케미는 무거운 재건 서사 사이에서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
먹는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호밀죽 말고는 먹을 게 없는 상황에서 그 끔찍한 맛에 카스펠이 컥컥거리면서도 “이거 상당히…… 재건 의욕이 샘솟는 맛이군”이라며 억지로 웃어넘기는 장면은, 절망적인 상황조차 유머로 소화해내는 이 소설 특유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유머는 단순한 웃음으로 그치지 않는다. 카스펠은 끔찍한 맛을 그저 참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항해용 비스킷을 도입하고 세제를 개편하는 등 실질적인 해결책을 궁리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웃어넘기되, 거기서 멈추지 않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이 그리는 회복력의 방식이다.
물론 소설은 이 발랄함 뒤에 묵직한 얼굴도 감추고 있다. 코볼트 토벌 작전에서 스물네 명의 용병들이 목숨을 잃고, 카스펠이 직접 메서와 타지로 빈 땅에 무덤을 만드는 장면은 이 소설이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무거움 뒤에도 사람들은 다시 웃고, 다시 일하고,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는 점이다. 무덤을 만든 그 손으로 다음 날 다시 세금 정책을 논의하고, 상인과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보여준다. 슬픔도, 웃음도, 결국은 같은 일상의 일부라는 것.
[담담한 소제목, 담담한 서사]
또 하나 눈여겨볼 지점은 소제목이다. 이 소설의 소제목은 예외 없이 전부 ‘~였다’, ‘~이다’, ‘~했다’ 식의 짧고 건조한 종결형으로 끝난다. 물음표도, 느낌표도, 수식어로 꾸민 은유적 제목도 없다. 그저 사실을 진술하듯 딱 떨어지는 문장 하나씩만 남을 뿐이다.
이 무뚝뚝한 소제목들은 오히려 이 소설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마치 누군가 매일 써 내려간 일지나 연대기의 표제처럼, 사건의 무게와 상관없이 동일한 어조로 나열된다. “전여친? 과 다시 만났다.”, “빗자루를 들었다.”와 “적이다.”와 “무덤을 만들었다.”가 같은 구조로 나란히 놓일 때, 독자는 이 소설이 그리는 재건이란 특별한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 쌓여가는 ‘기록’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감정을 실어 포장하지 않고 담담히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적어 내려간듯한 제목들은, 앞서 살펴본 카스펠의 성격—투덜대지않고 그저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하는 태도—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소제목 하나에까지 스며든 이 일관된 톤은, 작가가 이 소설을 얼마나 세심하게 설계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라 보겠다.
[별자리로 흐르는 시간]
세계관의 디테일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간을 표시하는 방식이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익숙한 3월, 5월 같은 표기도,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 창조한 고유의 달력 체계도 쓰지 않는다. 대신 황도 12궁 별자리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독특한 방식을 따른다. ‘천칭달(천칭자리)의 서른 번째 날’, ‘마갈달(염소자리)의 첫 번째 날’ 같은 식이다.
익숙한 서양력도, 작가 고유의 판타지스러운 조어도 아닌 이 절묘한 중간 지점의 표기법은, 낯선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이질감과 동시에 별자리라는 익숙한 개념 덕에 은근한 친숙함을 함께 안겨준다.
이 소설은 현실적인 디테일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인내로 쌓아 올리는 ‘진짜 재건’을 그린다. 천칭달이나 마갈달이라는 애매하게 낯설고도 익숙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빗자루를 무기삼아 휘두르는 주민들의 소박한 몸부림과 위엄을 부리다가도 얼굴 붉히는 영주, 능청스러운 동방의 상단주, 허둥대는 어린 행정관, 그리고 노련한 촌장들이 만들어내는 웃음과 눈물이 끊임없이 스며든다. 화려한 전투보다 세금 정책 회의가, 몬스터 토벌보다 가죽 갑옷 시제품 개발이 더 흥미진진하게 읽히면서도, 그 사이사이 터지는 일상적인 농담에 피식 웃게 되는 작품이다.
영지물을 표방하는 작품은 많지만, 이 소설만큼 “영지를 관리하고 다스린다는 것”의 무게와 위정자의 현실적인 행정능력,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 온기, 거기에 타 영지와의 갈등과 묘한 음모를 동시에 그려내는 작품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