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괴이는… 감정만 축내고 물러나는 것이 아니옵니다. 이제는…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내려 합니다.”
“그 괴이는 속이 모두 비어 있사옵니다. 다만 집어삼킨 감정의 잔상을 켜켜이 덧씌워, 스스로를 있는 듯 보이도록 꾸며낼 뿐이지요.”
줄거리 요약
정유년 삼월, 서현록은 평안도 강계 운림리로 향한다. 한양을 떠나기 전 의녀 한설의는 도성 곳곳에서 그림자가 뒤틀리는 괴이가 퍼지고 있으며, 그 근원이 강계 산맥 북쪽에서 흘러온 어긋난 기운임을 알린다. 울림벌레 사건 이후 설의의 능력은 더 또렷해져 있고, 그녀는 이번 괴이가 ‘있는 척 흉내 내는’ 존재임을 경고한다.
운림리에 도착한 현록은 아이 둘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 사건을 접한다. 마을에는 몇 해 전에도 같은 일로 아이 하나를 잃은 전례가 있다. 조사 끝에 그는 마을 아전 최봉수가 사건의 핵심에 있음을 알게 되고, 북쪽 금기의 능선—오래전 산신제를 지내던 자리—로 향한다.
그곳에서 현록은 감정 자체를 먹어치우는 괴이 ‘굶그늘’과 마주한다. 지하 토굴에서 만난 유충 같은 존재를 처치하지만 본체는 달아나고, 그는 최봉수가 아이를 잃은 슬픔과 아내의 통곡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감정을 봉인하려다 굶그늘을 키워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옛 산제 우물 깊은 곳, 최봉수의 얼굴이 제물처럼 박힌 굶그늘의 본체와 사투 끝에, 현록은 죽은 아이의 유치(乳齒)에 남은 마지막 감정의 울림을 매개로 삼아 괴물의 핵심을 무너뜨린다. 아이의 “아버지, 그만 울어요”라는 목소리가 최봉수를 인간으로 되돌리고, 굶그늘은 정화되어 소멸한다.
마을에는 아이들의 그림자와 감정이 돌아오지만, 현록 자신은 상처와 함께 ‘괴이를 벨 때마다 자신의 결도 닳아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양으로 돌아온 그에게 다시 낯선 속삭임이 들려오고, 설의는 그의 몸속 울림벌레의 잔재와 이번 사건의 반동이 위험하게 공명하고 있음을 경고하며, 새로운 괴이(귀명)의 존재를 예고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전작의 울림벌레가 “감정을 비운다”는 다소 추상적인 공포였다면, 굶그늘은 억눌린 슬픔이 스스로 괴물이 된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비극적인 구조를 갖는다. 최봉수의 동기—아내의 통곡을 견디지 못해 침묵을 원했다는 것—는 괴물보다 더 서글픈 진짜 공포다. 또한 혀를 깨물고 팔을 그어 피로 그림자를 물리치는 장면은 전작의 정신적 저항(감정으로 맞서기)에서 한 단계 나아가, 육체적 고통이 곧 ‘살아 있음의 증거’라는 설정을 제대로 구현하기도 했다. 거기다, 울림벌레와 굶그늘이 “서로를 깨운다”는 설의의 설명으로 두 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시리즈로서의 누적된 위기감(현록의 몸이 점점 여러 괴이의 그릇이 되어간다)이 잘 쌓이고 있다.
『귀명실록』 2편과 4편은 연작이다. 그리고 두 편을 연달아 읽고 나니 솔직히 리뷰로 이 제목 말고는 떠오르는 말이 없다.
『울림벌레』에서 서현록이라는 인물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건 그냥 적당히 잘 만든 단편 오컬트물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굶그늘』을 읽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단편으로 끝내기엔 너무 아까운 세계관이다.
가장 메리트 있는 것은 주인공의 성장 서사가 이미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현록은 2편에서 울림벌레에게 몸의 일부를 내주고, 여기에서는 그 잔재가 굶그늘과 공명하며 더 위태로워진다. 괴물을 하나씩 처치할 때마다 그의 “결이 닳아간다”는 설정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고 끝나는 옴니버스가 아니라 주인공이 서서히 무너지거나 혹은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는,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장기 서사를 예고한다.
한설의라는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텅 빈 그릇”이라는 설정 하나로 이미 두 편에 걸쳐 다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첫 편에서는 자기 피를 대가로 삼는 희생자였고, 둘째 편에서는 심기수 없이도 결을 읽어내는, 능력이 진화한 조력자였다. 이 캐릭터가 언젠가 현록과 같은 방향으로 무너질지, 아니면 그를 붙잡아줄 최후의 닻이 될지, 몹시 궁금하다. 추리물의 탐정과 조수같은 케미로만 남을지, 또는 뭔가 로맨스적인 서사가 얹힐 수 있을지도 궁금하고. 이 시리즈 전체가, 반전보다는 예정된 비극에 가까워, 서스펜스보다 애도의 정서가 강한 것도 나름 취향이었다.
무엇보다 『귀명실록』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연작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직 적히지 않은 새로운 귀명이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는 마지막 문장은, 독자에게 대놓고 “다음 편 기대하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떡밥을 던져놓고 시리즈화를 안 하신다면, 그건 작가님이 아니라 독자에게 더 잔인한 일이다(…).
울림벌레라는 감정을 비우는 공포와, 굶그늘이라는 감정을 억누르다 폭발하는 공포. 이 두 축만 봐도 앞으로 나올 수 있는 ‘귀명’의 스펙트럼이 무궁무진하다. 분노가 쌓여 만들어지는 괴이, 죄책감이 응어리진 괴이, 혹은 현록 자신의 고독이 만들어낸 괴이까지. 이 세계관은 이미 스스로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낼 힘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작가님, 왜 시리즈로 안 만드시나요. 다음편 빨리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