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쟁이 독자를 완주하게 한 범죄스릴러 의뢰(감상)

대상작품: 붉은 라벤더 (작가: 이선생,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4시간 전, 조회 20

자유게시판에도 여러 번 썼고, 리뷰 의뢰를 거절할 때마다 밝혀왔고, 프로필에도 박아놓았지만, 나는 장편을 잘 못본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장르나 소재가 아니면 사실상 읽지 못(않?)하는 사람이다. 대단히 편식이 심하고, 좋아하는 소재나 익숙한 문법이 아니면 집중력이 금방 바닥난다. 거기다 가독성을 엄청 따지고 드는 편이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이 소설은 애초에 내가 손댈 작품이 아니었다. 범죄 스릴러는 내 취향의 장르가 아니고, 57화짜리 장편은 더더욱 아니다. 원칙대로라면 이 리뷰 의뢰는 거절했어야 맞다.

 

그럼에도 수락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소개글이 간결하면서도 무슨 이야기인지 한눈에 들어왔다.

둘째, 그 소개글과 장르에서 결말이 어느 정도 유추가 됨에도—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가 나오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을 것이다—오히려 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졌다.(원래 스릴러란 범인이 얼마나 미친놈이고 어떻게 죽는지 보려고 하는 거 아임까)

셋째, 의뢰 수락 전,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아무 회차나 두어 개 찍어서 슥 훑어봤는데, 가독성이 상당히 좋았다. “어… 이 정도면… 필력도 볼만한 거 아닌가” 싶은 기대가 들었고, 결국 그 기대에 이끌려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만족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래서 이 리뷰는 장르 애호가의 시선이 아니라, “이 장르 안 좋아하는 사람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는가”라는 조금 다른 잣대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그렇다, 이 작품은 그걸 싫어하는 내가 보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영화로 나와도 볼 거 같다.

 


[형식이 곧 서스펜스다 — 소제목의 시간 표기]
이 소설을 처음 눌렀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07:10 오도리 공원”부터 마지막 에필로그 “2026.07.25. 바퀴는 굴러간다”까지, 매 화의 소제목에 정확히 박힌 시각이다. 이 장치는 단순한 형식적 재치가 아니라 소설 전체의 엔진이다. 외국드라마 『24』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미 소개글에도 있지만, 이 소설은 단 13시간동안 벌어지는 사건이다. 독자는 “지금 몇 시인지, 다음 사건까지 얼마 남았는지”를 무의식중에 계산하며 읽게 되고, 이는 관광버스의 스케줄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소재를, 벗어날 수 없는 카운트다운으로 바꿔놓는다. 아침 7시 10분의 평화로운 산책에서 시작해, 저녁 8시 3분 “지옥의 가이드”라는 처단의 순간까지, 단 13시간동안 벌어지는 이 압축된 시간 구조는 스릴러가 요구하는 긴박감을 형식 자체로 구현해낸 훌륭한 설계였다. 즉, 소제목 리스트만으로 어떤 이야기가 어떤식으로 오갈지 유추가능하면서 흥미도 끌고 있다.

 

[분위기 — 관광지의 양면성]
라벤더밭, 사계의 탑, 청의 호수 등 홋카이도의 실제 관광지를 무대로 삼은 점은 이 소설의 공포를 더욱 실감나게 만든다.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살인이 교차 편집되는 구조(“보라색 꽃그림자에 가려져 핏빛이 잘 보이지 않았다” 등)는 전형적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스릴러적 대비다. 특히 “명절 연휴로 텅 빈 관공서”라는 설정으로 완벽한 밀실을 만들어낸 13화는, 현실적 디테일(오본 연휴, 공무원 휴가)을 이용해 개연성을 확보한 좋은 예다.

 

[카톡방이 서사의 살아있는 증인이 되다]
오픈채팅방이라는 장치는 처음에는 ‘챈짱(채은)’이라는 인물의 이중생활을 드러내는 코믹한 도구로 시작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 소설에서 가장 잔인한 무기로 진화한다.

 

[‘이유있는 악당’으로 끌고가지 않는, 잘 만들어진 빌런 캐릭터]
이 소설에서 최고로 마음에 든 부분은 단연 범인 캐릭터의 조형이다. 초반에 그는 “정체불명의 위협”으로만 존재하다가, 18화의 도축장 트라우마, 37~38화의 “티켓의 주인” 에피소드,

또한 겐지의 대사 톤 변화—존댓말과 반말을 오가는 것, “손님”들 앞에서는 매끄러운 한국어를 구사하다가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 급격히 건조해지는 것—는 그를 그냥 “미친 살인마”가 아니라 사회적 가면을 능수능란하게 조작하는 인물로 그려낸다. 무엇보다 그의 지능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점이 훌륭하다. 19화에서 “삿포로”라는 단어 하나로 흔들리는 장면은, 그가 전지전능한 빌런이 아니라 실수할 수 있는 인간임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서스펜스를 정교하게 조인다.

 

[16화의 유튜브 실제 링크 — 장르 소설/웹소설도 PPL이 가능할 수 있다]
세부적이지만 흥미로운 지점 하나를 짚자면, 16화에서 챈짱이 오픈채팅방에 “사계채언덕을 배경으로 한 캐논 파워샷 광고” 유튜브 링크를 올리는 장면에서 진짜로 광고링크를 걸어둔 것이다(클릭하면 정말 그 유튜브영상으로 이동한다). 이는 서사 전개상 반드시 필요한 디테일은 아니지만, 관광 가이드라는 직업의 현실감을 살리는 동시에 이 형식(오픈채팅방을 통한 정보 전달)이 실제 마케팅 콘텐츠까지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는 유연한 그릇이라는 걸 보여준다. 물론 작가가 그런것까지 의도하고 ‘진짜 광고’를 넣은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웹’소설이라는 매체 특성상, 이런 방식의 자연스러운 PPL 삽입도 가능하다는 것을 엿본 것 같아 소소하지만 흥미로웠다.

 

[진짜 주인공은 김 선생이었다]
이 소설을 완독하고 나면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표면적인 생존자이자 최종 처단자는 챈짱이지만,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작가와 같은 직업의) 의사인 김 선생이었다는 점이다.

 

[MTB 선수라는 떡밥의 완벽한 회수]
1화에서 챈짱을 소개하며 지나가듯 언급된 “과거 MTB 선수 시절, 다운힐 자전거를 타고 시속 80km로 절벽을 내려오던 시절”이라는 설정이 47~52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완벽하게 폭발한다는 점은 이 소설의 플롯 설계가 얼마나 치밀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3화에서 버스가 급제동할 때 챈짱만이 “다운힐 자전거를 타고 절벽을 내려오던 시절의 본능”으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 짧은 묘사, 그리고 극도로 마른 체구와 시선공포증이라는 캐릭터의 약점들이 후반부에서는 오히려 생존의 무기(가벼운 몸, 지형을 읽는 감각, 고통을 억누르는 정신력)로 완벽히 전환된다.

48화에서 폐쇄된 MTB 다운힐 코스와 고철 자전거를 발견하고, 체인도 브레이크도 없는 자전거를 “결코 멈추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재해석하는 장면, 그리고 49화에서 스스로 발을 페달에 결박해 “인간 탄환”이 되는 장면은 클리셰나 맥거핀이 될 수도 있었던 설정을 서사적 필연으로 완성시킨다. 처음부터 심어둔 씨앗이 마지막 순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개화하는, 복선 회수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말하고 싶다.

 

[끈질긴 죽음과 직접적인 심판 — 독자에게 돌려주는 카타르시스]
53화 “지옥의 가이드”는 이 소설이 독자에게 지불하는 가장 확실한 보상이다.

 

[개연성에 대한 아주 작은 아쉬움과 장르적 관용]
물론 완벽한 작품은 없는 법이다. 갑작스러운 불곰의 등장과 겐지가 피 묻은 수건을 던져 곰을 조종하듯 유도하는 장면, 그리고 버스 전복이라는 대형 사고 이후에도 김 선생이 부러진 갈비뼈, 송곳에 찔린 어깨를 이끌고 산길을 몇 시간째 주파하는 설정은, 캐릭터의 정신적 동력(복수심)으로 설명되긴 하지만 신체적 개연성 면에서는 좀 과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준수가 폭포 하류에서 하루 만에 생존한채 구조된다는 설정의 확률적 개연성도, 사실적 스릴러의 기준으로 보면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런 ‘과함’을 통해 빌런 캐릭터의 비인간적인 잔인함과, 그를 잡아서 어떻게든 복수하고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자 하는 주인공 캐릭터들의 집념과 복수심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면, 결함이라기보다 장르적 허용의 일부로 읽는 것이 더 공정할 것이다.

 

[에필로그 — 끝나지 않은 무언가, 열린 결말의 미학]
57화 에필로그는 이 소설이 단순한 완결이 아니라 다음 이야기를 향한 문을 남겨두는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초반의 정교한 관찰형 서스펜스에서 중반의 처절한 서바이벌 스릴러, 그리고 후반의 복수극으로 장르를 자연스럽게 확장해가며 완결까지 밀도를 잃지 않은 작품이다. 시간 표기라는 형식적 장치, 카톡방을 활용한 다층적 서스펜스, 특히 35화의 잔인한 반전, 그리고 챈짱과 김 선생이라는 두 생존자 겸 희생자가 만들어내는 서사의 무게중심 이동은 이 작품을 단순한 스릴러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무엇보다 1화부터 심어둔 사소한 디테일들—MTB 선수 경력, 시선공포증, 극단적인 마름—이 클라이맥스에서 하나도 낭비되지 않고 회수되는 것을 보며, 이 작품이 단순히 자극적인 장면의 나열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플롯 위에 서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겐지라는 괴물에게 확실한 죽음을, 김 선생이라는 희생자에게 온전한 애도를, 그리고 챈짱이라는 생존자에게 회복의 서사를 각각 부여한 뒤, 마지막 순간 다시 불씨를 남겨두는 이 결말은 완결작으로서의 만족감과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훌륭한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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