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탑차의 악마들: 복수와 악의의 이름들 비평

대상작품: 냉동탑차의 악마들 (작가: 엄길윤, 작품정보)
리뷰어: 창궁, 2시간 전, 조회 16

누군가가 제게 이 소설이 어떤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할 겁니다.

오래된 악의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지 모를 이야기

라고요.

 

우선 이 소설의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이름’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송 기사'(민석) ‘피해자'(근형) 등으로 서술되며, 나머지 인물들은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고 ‘신입직원’ ‘교통경찰1’ ‘교통경찰2’로 서술된다는 점입니다. 보통 이렇게 이름을 배제한 특정 성격(직업-배송 기사, 교통경찰, 관계 위치-신입직원, 피해자)으로만 서술하는 건 그러한 성격을 강조하거나 그러한 성격만이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혹은 그런 것보다는 이름을 고의적으로 누락함에 초점을 맞춰서 해당 작품이 다루는 이야기가 특정된 개인의 이야기(곧 ‘남’의 이야기)가 아닌 보편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모두의 이야기임을 드러내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유효한 작동인지는 작품의 내용과 성격을 들여다봐야겠고요.

하지만 본 이야기는 그렇다기엔 다소 의아한 지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누군갈 죽이는 경험은 보편적으로 확장될 수 없는 이야기고, 민석과 근형 사이에 작동하는 이야기는 ‘배송 기사’와 ‘피해자’,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신입직원’이라는 성격으로 다루기엔 다소 어색하지 않나 싶습니다.

냉동탑차의 복수가 끝난 다음 디저트 격(?)으로 일어난 교통경찰 살해도 그렇습니다. 교통경찰1, 교통경찰2는…… 계급으로 서술하거나, 좀 더 구분되는 특징으로 차라리 ‘젊은 경찰’ ‘선배 경찰’이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숫자는 너무 성의없는 구분처럼 다가오더군요.

사람을 죽여놓고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만의 속죄를 거친 민석을 향한 ‘냉동탑차의 복수’는 확실히 인상적입니다. 다만 피해자와 신입직원 사이의 대화가 너무 붕 떠 있다는 느낌입니다. 악마들(혹은 악마와 계약자) 사이의 대화로선 적절하다 싶지만, 은연 중에 진상을 드러내기보다는 자기들끼리만 떠드는 식이라 냉동고 속의 상황에 몰입하기 조금 어려워지긴 하더군요. 상황 파악이 자꾸 덜 된 채 이야기가 진행되는 느낌이랄까요.

신입직원은 반전으로 드러나는 정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배송 기사를 유인한 거였다는 사실과 악마의 악의가 겹쳐지니 좋은 반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은 암시가 있었으면 좋겠지 않나 싶습니다. 뒤에 나오는 교통경찰에 비하면 냉동탑차 배송 이야기는 사실 거의 의미가 없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 분량에 배송 기사의 과거 이야기나 신입직원의 정체에 대한 암시나 복선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직업 특성을 다루는 것이나, 복수 장면 자체나, 분명 따로따로 보면 디테일이나 생생함에선 나쁘게 볼 이유는 없는 부분들입니다. 이름을 기술하지 않는 것 역시 덮어놓고 나쁘다고 말할 것 역시 못 되죠. 고통의 미식을 추구하는 악마라는 다소 고전적이고 정통적인(?) 악마의 등장 역시 좋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냉동탑차의 악마들’이란 작품 속에 잘 엮였느냐면 그건 또 다른 영역입니다. 그래서 그 점에서 아쉬움이 터져나왔습니다.

각 요소들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신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몰입감 있고 여운이 짙을 단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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