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리뷰) 록시아스 아폴론: 신화를 소재로 삼을 때의 모호함 (+ 캐릭터 이름 분석) 비평

대상작품: 오피디데스 (작가: 벽라,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2시간 전, 조회 16

이 리뷰는 1부-델포이 신전(19)까지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화를 다루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원전들부터 시작하여 이미 수천 년간 쌓아 올린 창작물들이 있고, 기본만 충실하면 실패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그 안에 새로운 신화를 끼워 넣는 것은 때로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다루고자 하는 신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다면 말입니다.

게이트키핑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장르문학에서 장르 문법을 따르거나, 이를 의도적으로 어기더라도 최소한의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처럼 신화를 소재로 창작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사용하려는 소재에 대해서만큼은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는 우리가 원전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을 남긴 고대 그리스의 신화 작가들도 지켰던 일입니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헤라가 제우스를 결박하는, 사실상 반역을 저지르려다 테티스의 개입으로 실패했다는 내용을 적습니다. 이는 『일리아스』에만 나왔다가 수 세기 뒤에나 다시 나오는 내용이지만, 제우스가 테티스의 아들인 아킬레우스를 은근히 편들어주게 되는 개연성을 부여합니다.

다른 예를 들자면, 사튀로스처럼 반은 인간이고 반은 염소의 형상인 판은 아버지 헤르메스를 비롯하여 모든 신들에게 사랑받습니다. 그러나 루키아노스의 산문집 『신들의 대화』에서 헤르메스는 판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 때문에 신이 짐승의 형상을 취해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의 신화 작가들이 새로운 내용을 넣으려면, 그 내용이 그리스 신화 내부 논리에서 나름의 개연성과 정당성 그리고 정합성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벽라 작가님의 <오피디데스>는 그리스 신화 내부 논리에서 ‘있을 법한 것’과 ‘있을 수 없는 것’을 동시에 다루고 있습니다.

퓌톤과 가이아의 자식이 델포이에 거둬지는 일이나 그 아이가 델포이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 일은 ‘있을 법한 것’입니다. 그 신탁으로부터 저항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끝내 그 운명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있을 법한 것’이지요.

하지만 신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둠이나 거울 속의 세계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를 쓴 팔라이파토스가 이 소설을 읽었다면 아마 그 서평은 『믿을 수도 있을 수도 없는 것들에 관하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렇게 했기 때문에 기능하는 것도 있습니다. 루키아노스의 『신들의 대화』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루키아노스는 패러디에 능한 작가였고, 이에 더해 아마 무신론자였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신들에게 믿음을 보이지 않는 이들,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조금씩 두각을 드러내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벽라 작가님의 <오피디데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신탁이나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의지라면, 그리스 신화를 소재와 배경으로 삼은 작품에서 전능한 신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어둠을 다루는 것은 루키아노스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난 뒤에 다시 해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보다는 벽라 작가님께서 나름대로 고심하신 흔적이 보이는 <오피디데스>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제 나름대로 간략히 분석해보고 이에 기반을 둔 기대평을 남기는 것으로 1부 리뷰를 끝내볼까 합니다.

 

록시아스(Λοξίας)

‘기울어진, 모호한’이라는 뜻입니다. 아폴론의 여러 역할 중 예언과 신탁에 관하여 델포이에서 그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신탁 구절의 난해함을 두고 이러한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 소설 시작부에서 아폴론의 별명 세 가지를 짚습니다. 포이보스, 리케이오스, 그리고 록시아스. 그러나 이 소설 전반에 걸쳐 아폴론을 가리키는 이름은 주로 록시아스입니다. 리케이오스는 차치하고, 아폴론의 주된 별명이자 마찬가지로 예언의 신임을 나타내는 포이보스가 아니라 록시아스를 주된 호칭으로 내세운 것은, 록시아스의 원뜻인 ‘모호함’이 아폴론의 역할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아폴론의 모호함은 단순히 신탁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가 이 소설 내에서 보이는 태도나 선악의 모호함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오피디데스(Οφίδης)

ὄφις(오피스/뱀) + -ίδης(이데스/~의 아들), 곧 ‘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뱀은 당연히 퓌톤을 가리킵니다.

대지와 퓌톤의 자식인 오피디데스는 태어날 때부터 뱀들의 왕, 델포이와 록시아스를 파멸시킬 운명입니다. 신탁을 통해 운명이 이미 밝혀진 존재들답게, 오피디데스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기도 하고 회피할 방법을 강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결국, 그 운명을 완성하는 법이지요. 오피디데스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완성할지가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엘렉시오르(Ἠλεξίωρ?)

ἀλέξω(알렉소/보호하다, 가로막다)의 아오리스트 시제 기본형인 ἤλεξα(엘렉사/보호했다, 가로막았다)의 변형인 것으로 보입니다. 의역하자면 ‘보호하는 자, 가로막는 자’ 정도가 됩니다.

오피디데스를 보호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에게 신탁을 전한 자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어딘가 오피디데스를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록 그가 델포이를 떠나야 할 때는 보내주지만, 오피디데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여전히 엘렉시오르가 ‘보호하는 자’일지, 아니면 그의 길을 ‘가로막는 자’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레우코우라(Λευκοῦρα?)

λευκός(레우코스/흰, 창백한)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레우코우라는 하얀 뱀입니다.

다른 뱀들보다도 오피디데스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뱀이며, 그가 뱀의 왕임을 알려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말투는 어린 편이고 성격 또한 어리광을 피우는 편에 속하지만, 어딘가 묘한 구석도 있습니다. 특히 자신을 ‘지혜로울 만큼 지혜롭다’고 소개하며 오피디데스의 속내를 끌어내려는 부분에서는, 오피디데스가 뱀의 왕으로서 운명에 순응하도록 준비된 존재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침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돕던 ‘바다의 하얀 여신’, 레우코테아가 생각나는군요.

 

테오파네스(Θεοφανῆς)

θεός(테오스/신) + φανῆς(파네스/빛, 현현), 곧 ‘신의 현현’이라는 뜻입니다. 잠의 신 휘프노스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취한 이름입니다.

이름의 뜻을 생각하면, 거의 숨길 생각이 없던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고대 델포이에는 같은 단어들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테오파니아(θεοφάνια)라는 이름의 축제가 있었습니다. 이 축제에서는 봄과 함께 델포이로 돌아오는 아폴론을 기렸습니다.

 

포이니아스피스(Φοίνιασφῖς?)

φοίνιος(포이니오스/붉은, 피의)의 중성 복수 주격형태인 φοίνια(포이니아/붉은 것들)에 아마도 3인칭 복수 재귀대명사 σφεῖς(스페이스)를 합쳐 변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의역하자면 ‘그 자체로 붉은 자들’이 되겠습니다. 실제로 포이니아스피스는 붉은 방패를 들고 나타났죠.

아킬레우스의 전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포이니아스피스의 출신지 뮈르미돈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개미’의 이름을 짊어진 전사 부족입니다. 어쩌면 그의 이름이 복수형으로 풀이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쨌든, 포이니아스피스는 부족의 이름을 걸고 오피디데스를 지키기 위해 나타났습니다. 비록 오피디데스와 성격적으로 잘 맞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나름대로 훌륭한 스승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네메스키아(Nεμέσκια?)

νέμεσις(네메시스/응보, 공의, 복수)의 변형으로 보입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스터리입니다. 어둠(에레보스)의 자식인 휘프노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오디피데스에게만 잠재된 어둠입니다. 이름의 어원을 생각했을 때 아마도 퓌톤과 가이아의 자식으로서, 퓌톤을 죽인 록시아스에 대한 응보의 운명이 형상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능력은 상당히 이질적이며, 신들조차 모르는 존재라는 점에서 의문을 가득하게 만듭니다. 그는 어디에서 온 존재이며,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요?

 

 

아직 이야기는 초반부를 막 지나왔을 뿐입니다. 록시아스의 인도대로, 모호한 것들뿐이지요. 그러나 오피디데스의 여정을 따라가면, 그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벽라 작가님이 이 작품에서 의도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읽으면서 즐거웠던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도 잘 읽겠습니다. 멋진 이야기를 써주신 벽라 작가님께 다시금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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