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대지신의 사랑, 소유냐 존재냐 사이에서 공모(감상)

대상작품: 대지신의 사랑 (작가: 벽라, 작품정보)
리뷰어: 슬픈거북이, 4시간 전, 조회 10

1.

조리 있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는 조금 편한 방식으로 말하는 편이 오히려 더 적절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작품을 가볍게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작품이 품고 있는 내용의 무게가 상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무겁게 접근하기보다 조금은 가벼운 방식으로 리뷰하는 편이 더 잘 맞겠다고 판단했습니다.

 

2.

이 작품은 태양신의 골렘, 수신의 일식, 대지신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3연작입니다.

리뷰의 중심은 대지신의 사랑이지만, 3연작인 이상 앞선 두 작품을 읽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미뤄 두었던 소설들이기도 했고, 덕분에 이번 기회에 세 작품을 모두 읽게 되었습니다.

네. 편집부의 소개글과 노르바님의 훌륭한 리뷰까지도요.

 

3.

브릿G 편집부가 자신있게 소개합니다.

프로토타입의 “신화.”

—> 신화란 무엇일까요?

 

신화는 인간이 세계의 기원, 신, 자연, 죽음, 질서, 운명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만든 상징적 서사입니다.

신화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한 공동체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집단적인 원형 서사입니다.

 

프로토타입 3연작의 외피를 보면, 인간같은 신들의 모습은 그리스 신화의 그것을 닮았습니다.

사고도 잘 치고, 노르바님의 말씀처럼 재미난 가족 드라마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하게 재미난 이야기로 끝나면 브릿G에서 추천할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야기 이면에는 숨겨진 테마들이 존재합니다.

저는 태양신의 골렘이 존재론을, 뒤 이은 연작인 수신의 일식은 존재론과 윤리를 물어보는 작품이라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그들 역시 인간과 다를 바 없는 현존재라는 점을 부각하면 실존주의로.

골렘 눔의 사명을 내려달라는 말을 부각한다면 이 작품은 존재론을 넘어 의무와 명령의 문제, 나아가 칸트의 윤리학 정언명령의 문제까지 건드리는 것으로 읽힙니다.

 

4.

앞서 편하게 리뷰하겠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논문도 아니고 이걸 다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리뷰 대상인 대지신의 사랑을 가볍게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이런 밑밥을 조금 깔아두고 싶었습니다.

3연작이라 이 구조를 말하지 않고 리뷰를 시작할 수는 없고.

보기보다 깊이 있는 테마를 품고 있는 앞선 두 이야기를 전부 깊게 파고들 수는 없으니, 여기서는 대지신의 사랑을 중심으로 조금 가볍게 이야기해 보겠다는 뜻입니다.

 

5.

저는 최신작이 앞선 작품들에 비해서는 조금 쉬운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지신의 사랑.

네. 테마가 사랑이라고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니까요.

 

물론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에로스일까, 아가페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사랑을 말하고는 있지만, 결코 만만한 작품은 아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지신 데헤못의 사랑.

이 구조는 제 생각에 소유를 포기한 사랑, 비대칭적 사랑, 그리고 축복으로 완성되는 사랑입니다.

 

6.

하나씩 나누면 분명해집니다.

 

첫째, 에로스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데헤못은 샨을 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점에서는 분명 에로스적 요소가 있습니다.

즉, 끌림과 애착, 특별한 존재에 대한 편향이 있습니다.

 

보통 에로스는 상대를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데헤못은 그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 이어지려 하지 않고, 오히려 샨의 결혼과 후손의 번영까지 축복합니다.

이 지점에서 단순한 에로스를 넘어섭니다.

 

둘째, 아가페와도 닮아 있습니다.

상대의 행복을 자기 소유보다 우선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샨이 자신과 맺어지지 않아도, 샨이 잘 살기를 바라고, 그의 후손에게까지 번영을 내립니다.

이건 “내가 너를 가져야 한다”가 아니라 “네가 잘되기를 바란다”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아가페적 요소가 강합니다.

 

셋째, 그러나 순수한 아가페라고만 하면 모자랍니다.

왜냐하면 출발점에는 분명한 개인적 애착이 있기 때문입니다.

데헤못은 모든 인간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샨이라는 특정 존재를 특별히 사랑합니다.

 

즉 보편적 사랑이 아니라 선택된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이건 추상적 자비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관계적인 사랑입니다.

 

결국 이것은 “내 것이 되지 않아도 네가 존재해서 좋다”라는 형태의 사랑입니다.

 

7.

대지신의 사랑.

그리스 신화와 유사한 프로토타입의 외피 아래,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연상시키는 사랑의 구조를 품은 소설.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만,

‘분명히 이것이 다는 아닐겁니다.’

신화의 해석은 하나로만 흐를 수 있는게 구조적으로 아니니까요.

 

여러분의 해석은 어떠신지요.

다른 리뷰도 보면 재밌을 거 같습니다.

 

끝으로 재미난 작품을 써서,

골드 코인 10원으로 글 3편을 읽게 하신 벽라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재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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