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장편 소설 완결 후 새로운 장편을 쓰는 도중 뭐 할 거 없나 두리번대다 이 작품을 발견했습니다.
자유게시판에서 첫 소설이라는 말을 보았는데, 확실히 다듬어지지 않은 모양새를 보아 이러한 완결된 형태의 소설은 처음 써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작품에 대한 리뷰를 쓰는 이유는 그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작가님을 평가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저 요즘 볼 수 없는, 상당히 은유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인 듯하여 흥미로운 점들을 몇 가지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1. 작품의 제목
이 소설의 제목은 <짐승>입니다.
보통 여러분은 짐승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폭력, 악의, 부도덕함, 그 외 부정적인 개념들이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작 중 화자는 ‘나’이며 나는 나를 짐승으로 인식합니다.
전형적인 자기혐오적 자아 형태인데,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어째서 ‘짐승’이라고 느껴지는지 작품에서 표현되지 않습니다.
독자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나’가 타고난 우울함, 그 뿐입니다.
그렇기에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는 많아집니다.
-모종의 사건으로 ‘나’가 짐승으로 전락한 건가?
-타고난 영혼의 결핍으로 이 자는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독자에게 해석을 맡기는 방식은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작품 제목이 <짐승>이라면 내가 짐승이라고 규정될 만한 사건 혹은 사유가 하나 정도는 등장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작품 특성상 <짐승>은 그렇게 잘 어울리는 제목은 아닙니다.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 자학하고 채찍질하고 비하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짐승’이란 단어엔 폭력적, 능동적 이미지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기력하고 우울하며 자살 충동을 느끼는 ‘나’가 어떤 의미에서 짐승인지, 은유하는 장면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내가 스스로를 지네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돼지, 혹은 늑대 같은 동물들로 바꾸는 방법도 있죠.
지네는 보통 벌레지 짐승이라고 인식되는 게 아니니까요.
이렇게 하면 내용과 제목 간의 통일성도 생기고 상징도 만들 수 있습니다.
개미를 관찰하는 장면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이 장면은 인물의 철학적 사유로 옮겨가기 좋은 장면입니다)
더럽고 혐오스러우며 무기력한 존재, 그것이 나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규정일 경우 이 작품엔 <벌레>가 더 적합한 제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말이죠.
2. 작품의 구조
짐작하건대 전체적인 시놉시스를 짜놓고 서사를 전개하며 쓰려고 하셨다기보다,
의식의 흐름에 맡겨 생각나는 대로 쓰신 글 같습니다.
문단이 사건에 따라 분리되지 않으며 인물도 사건도 즉흥적인 인상을 풍깁니다.
작품의 구조는 나의 사유-설명 혹은 어떤 행동-자기 혐오 순으로 이루어지는 편입니다.
구조 자체는 일관성이 있으나, 독자가 피로를 느끼기 좋은 구조입니다.
하지만 작가님은 독자들의 피로를 염두에 두지 않으십니다. 그저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쭉 이어나갑니다.
어떠한 분위기 환기도 없고, 정서 정화도 없습니다.
작품의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데, 이 점은 조금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딱 한 번, 전체적 구조에서 벗어나는 문단이 있는데요.
바로 두 번째 문단입니다.
바로 전 문단과 달리 “오늘은 즐거운 날이다!” 라는 활기찬 문장으로 시작하는데요.
그 전 문단의 무거운 분위기와 대비되어 신선하게 충격적이면서도 좋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문장이 “아침부터 기운이 좋은 것이 잠을 너무 안 잤을 때의 느낌이다!”라서 더욱.
이 문장에서 독자는 화자가 불면에 시달렸다는 사실과 감정의 간극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문단은 정보 전달+분위기 전환으로 인한 충격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장입니다.
좀 더 다듬으면 좋은 장치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흥미롭지만요.
3. 박제가 되어버린 짐승을 아시오?
<짐승>의 주요 문장들을 한 번 살펴볼까요?
1)
추한 짐승입니다. 동물원의 미친 원숭이입니다.
문장들의 이미지가 상당히 폭력적입니다.
추한 짐승=조롱적, 경멸적 시선
동물원의 미친 원숭이=인간과 닮았지만 인간은 아닌 존재, 광분해 갇혀있는 격리의 대상
‘나’의 인간성 박탈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문장들입니다.
2)
초승달이 창문을 쳐다봤다. 강렬한 눈빛이었다. ~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의인화를 이용한 무생물과의 대면.
초승달이 상징하는 것은 순결한 푸르름. 하지만 그 달은 ‘나’를 노려봅니다.
‘순결’이 ‘짐승’을 노려봅니다.
상당히 훌륭한 상징적 표현입니다.
3)
아니, 이 세상은 지네의 세상이다. ~ 나는 육체를 버리리다. 깨끗이 씻으리다.
이 장면은 이상의 <날개>적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날개>의 주인공이 날개를 통해 지적 자아의 각성을 실현한다면, <짐승>의 주인공은 탈피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또한 날개와 탈피는 각각 화자들이 현재 결핍 상태임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날개>는 박제와 날개가 대조를 이루지만, <짐승>은 하늘과 땅이 대조를 이룹니다.
박제=주검을 방부 처리하여 생전의 모습과 같게 만든 것.
하늘=신성하고 변하지 않는 것.
박제는 죽어 있고 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하늘은 신성하지만 ‘나’가 도달할 수 없는 곳입니다.
‘나’라는 짐승은 땅에 박제되어 있습니다. 날개 없는 지네들과 함께.
4)
오늘 내가 죽더라도 내일의 나는 또 우울할 것이다.
모순입니다.
오늘 내가 죽는다면 내일의 나는 살아있지 않아 우울하지도 않습니다.
역설적 표현이죠. 나는 오늘 죽지 못합니다. 오늘 죽어도 우울할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죽음은 생명을 어떤 특정 상태로 ‘박제’하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철학적인 사유입니다.
총평을 하자면, ‘의식의 흐름에 따라 파괴적 우울감을 표현한 철학적 작품’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 불쾌함을 느낄 독자를 걱정하는 글을 남기셨던데,
때로는 살기 위해 써야 하는 글도 있는 겁니다. 이 글을 씀으로써, 작가님의 의식은 정화 단계를 거쳤으리라 믿습니다.
흥미로운 작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