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평: 가혹하지만 해야하는 이야기. 원숭이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혹평을 하기 전, 내 작품 세계에 대해 어느정도 설명해야겠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문학은 이데아의 모방이니 어쩔 수 없다. 모방이 새로울 순 없지 않은가? 난 여기서 반발한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옳다. 문학은 새로울 수 있다. 그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의미의 새로움은 아닐 것이다. 분명 문학은 이데아의 모방이다. 하지만 유에서 알려지지 못한 것은 분명 존재한다.
문학이란 이데아란 황량한 벌판에서 땅을 파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광물이나 화석을 찾아내 채굴해내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의 새로움은 분명 존재한다. 예를 들어, 티라노사우르스 화석을 발견했다면 이전에 누군가 티라노사우르스 화석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화석만에서 알 수 있는 특별함이 있을 것이다. 이빨의 흠집에서 티라노사우르스의 식습관이 발견 될지도 모른다. 어린 유아기의 티라노사우르스는 어떤 골격이었는지 알 수 있을 지 모른다. 같거나 비슷한 카테고리에 묶일지언정 기존의 화석과 지금 발견한 화석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새로운 화석을 발견한 것이다.
난 원숭이 손 이야기를 알고 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원숭이 손, 하지만 그 소원은 잔혹하고 비극적으로 이루어준다. 세계적인 단편 공포소설이다. 원숭이 손 역시 과거 비슷한 전설이나 동화에서 가져 왔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섬세한 묘사와 전개 능력으로, 이 단편은 인정받았다.
사실 장르가 그렇다. 어떠한 장르다로 규정되면 그것에선 클리셰화되고 메인 플룻이 거기서 거기가 되고, 어떤 차별점을 찾지 못하는 그런 광경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고딕장르에서 드라큘라가 가진 위치를 생각해보자, 모든 흡혈귀 장르는 드라큘라의 위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원치 않아도 드라큘라와 비교될 수 밖에 없다. 드라큘라가 그만큼 대단한 작품이라서 그렇지만 이후 흡혈귀를 메인으로 잡은 작품들이 드라큘라의 짝퉁이나 표절 취급받진 않을 것이다. 게임 시리즈 악마성(캐슬바니아)이 드라큘라의 짝퉁은 아니지 않은가. 만화 헬싱이 드라큘라의 짝퉁은 아니지 않은가. (그 모든 것이 2차 창작 스럽다는 건 둘째 치고.)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나도 영향을 받는다. 내 작품에 ‘자매’에 얼마나 많은 작품이 섞였는지 모른다. 나 역시 기존 작품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오리지널리티를 뽑아오지 못한다. 하지만 기존에 흔하게 있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가능한 내 식대로, 내 방법대로, 내 생각대로 풀어내려고 한다. 이 작품은 내 작품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말의 껀덕지를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이렇게 하더라도, 지금의 비판은 나도 똑같이 받아야한다.
난 이 작품에 실망했다. 원숭이 손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그대로 가져왔다. 주제, 구성, 주제, 마무리 영향을 받았다로 끝내기엔 너무 닮았다. 소원은 들어주지만 그것을 뒤틀린 형태로 들어준다는 점, 죽은 가족을 부활시킨다는 요소, 원숭이 손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가져왔다. 물론 달라진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들이 아내로, 소원은 하나 뿐, 소원을 이루어주는 건 이상한 물건이 아닌, 마녀로. 그렇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 너무 닮아서, 불편했다. 내가 민감하고 내가 이상한 걸 수 있다. 그냥 우연히 닮았을 수 도 있다. 흔하게 있는 소재니 그럴 법하다. 그래도 나는 불편했다. 나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보기 위해 리뷰를 받았는데, 이건 작가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다.
제목 그대로, 다시 이야기하면 독자들이 이 리뷰로 이 글을 판단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리뷰는 누군가 불편하다고 말하면 바로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