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작가: 이산화, 작품정보)
리뷰어: 주렁주렁, 17년 9월, 조회 411

1.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이산화 작가의 사이버펑크 백합 수사물 [오류가 발생했습니다(이하 오류)]는 ” 주인공 도나우벨레와 룸메이트 할루할로가 미래 도시에서 일어나는 몇몇 번거로운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이다. 도나우벨레가 수사관으로 일하는 쁘띠-4는 그녀 외 3인의 동료(주인공까지 합쳐 4인조 수사대)가 있고 모두 블랙 포레스트의 시민이다. 에필로그를 제외한 [오류]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3부/4,5부 크게 두 파트로 나눌 수 있다.  

 

2. 과거와 복원

사이버펑크라면 미래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이들의 수사 역시 죄다 미래와 관련된 일일 것 같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류]가 계속 파헤치는 부분은 현재와는 단절된 과거이다. 이야기의 시작인 [번역상의 오류]는 과거의 어떤 것을 복원하려는 범인에 관한 이야기이며 두번째 [설계상의 오류] 역시 복원을, 세번째 [계산상의 오류]는 연인간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 ‘도나우벨레’는 처음에는 연인이자 룸메이트인 ‘할루할로’를 자각하고, 두번째에서는 동료인 ‘자허토르테’를, 세번째에서는 쁘띠-4의 나머지 멤버인 ‘레이디핑거’와 ‘사타안다기’를 자각한다. 즉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도나우벨레와 엮인 관계와 세계가 확장되고 당연히 독자인 나의 시야 역시 확장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추리’라는 외양을 띠고 있지만 추리 자체는 사소한 부분이며 오히려 주요 캐릭터와 블랙 포레스트라는 낯선 세계 설명이 주요 내용이다. 소설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매회 다 해결된다. 도나우벨레의 세계를 구성하는 동료들 – 자허토르테, 레이디핑거, 사타안다기 – 에 대한 설명도 끝났고 사건도 해결됐고 이제 할루할로와의 엔터네인먼트만 남은 것 같고 “이제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완전한 평화같다. 지극한 평온만이 남은 것 같다.

바로 그 때,  지금까지의 사건에서 관찰자나 조력자에 머물렀던 할루할로가 이야기의 중심으로 갑자기 난입한다. 우리는 그녀의 [미안해]란 말을 읽게 된다. 할루할로의 지령을 읽게 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라는. 이 지령은 도나우벨레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읽고 있는 독자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그 순간, 소설은 요동친다. 지금까지 작가가 뿌려놓은 무수히 많은 디저트 이름들이 만들어놓은, 독자인 내가 따라 걸어왔던, 지나왔던 그 길이 환하게 반짝거린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 장면의 고양감이 엄청나서 나는 “아…너무 좋아!” 환호성을 질렀다. (이런 고양감의 구사가 작가의 훈련에 의한 건지 타고난 재능인건지 모르겠지만, 이산화 작가의 뚜렷한 장점이다.) 그리고 여기서 첫 번째 파트가 끝난다.

 

3. 변화하는 공간

 

작가의 단편 [증명된 사실], [아마존 몰리], [무서운 도마뱀]에서도 느꼈던 점인데, 소설속에서 캐릭터가 처한 공간이 자연스럽게 바뀐다. 산속의 연구소에 들어가거나 시골 성당에 가거나 빈 연구소를 찾아간다거나 식으로 그의 인물은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한다. 물론 어느 소설이나 인물들이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배경도 변한다. 하지만 이 변화가 작가의 소설에서는 더 뚜렷한 느낌이다. 그의 캐릭터들은 여기에서 저기로 보이지 않는 문을 열고 건너 간다.

[오류] 역시 공간이 변한다. 앞서 말했듯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라는 지령을 받았으니 당연하다. 첫번째 파트에서 좌우로 펼쳐졌던 공간이 4,5부에는 상하로 바뀐다. 그동안 작가가 건넸던 수많은 디저트들이 상승한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대답은 간단했다.

우리가 성공하고 만 것이다.

리뷰를 쓰면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를 차근차근 다시 읽었다. 이 소설은 처음 읽을 때도 재밌지만 두 번째 읽으면 또 더 재밌는 소설이다. 곳곳에 뿌려놓은 유머부터 ‘아 이게 그 뜻이었나?’ 생각할 지점들이 많다. 읽을수록 더 재밌는 소설이다.

 

 

***몇 가지 이랬으면 좋겠다

1) ‘블랙 포레스트’에서의 케이크가 무엇인지 설명이 좀 자세했음 좋겠다. 어떻게 생겼고 뭘로 만들고 얼마이고 얼마나 자주 먹고 등. 블랙 포레스트에서 음식이란 게 어떤 위치이고 그 안에서 또 케이크가 어떤 위치인지 이걸 알고 싶었다. 이미지가 딱 안 잡힌다. (이게 사이버펑크 팬이라면 설명 없어도 당연히 알 수 있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싶은데, 리뷰 쓰느라 다시 읽으면서도 역시 케이크가 걸림)

2) 2부의 순애보 얘기, “그러니까 이건 *** 로맨스였다.”라는 설명이 좀더 강조됐음 좋겠다. 어떻게 보면 사이버펑크 세계가 지금 세계와 뚜렷히 다른 점이고 또 사이버펑크 세계이기에 가능한 순애보인데, 좀더 애절함이 강조되면 어떨까 싶었다. 아마 내가 이 순애보 얘기를 좀 더 길게 읽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되게 애절한데 왜 덜 애절하게 쓰냐고요! 

3) 결말까지 몰아치는 느낌이 엄청났기에 에필로그 부분이 상대적으로 고양감을 좀 뺀다고 느꼈다. 뭣보다 다른 서술이었음 좋겠다 싶었다. 인터뷰한 기자의 기사로 대체한다거나 레이디핑거나 사타안다기 시점의 설명이라거나…..도나우벨레가 이전처럼 전면으로 나오지는 않았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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