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는 500타 겨우 넘깁니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ʃ ‘-‘)ʃ_] vs [_ƪ(‘-‘ ƪ) (작가: 이나경,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7년 8월, 조회 119

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내가 입대하기 전에 제일 무서웠던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 있을까. 선임의 폭력이나 얼차려 같은 건 별로 무섭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아구창이라도 날려줄 수 있으니까. 그런 물리적인 폭력보다도 더 무서웠던 것은 ‘다녀와서 꼰대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는 여자 얘기랑 군대 얘기,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밖에는 하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꼰대’의 모습이 나는 싫었다. 그리고 군대 다녀와서도 절대 군대 이야기는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꼰대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뭐,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충실한 꼰대다. 전역한지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갓 입학한 신입생 뼝아리들에게 ‘군대는 말이야’ 라던가 ‘포병은 말이야’ 따위의 서두로 시작하는 굵직한 꼰대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한다. 아아, 나는 이제 군대 다녀온 아저씨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그리고 그런 아저씨가 읽기에 이 작품은 매우 재미있었다(그런데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이 즐비한 곳에서 이렇게 늙다리 푸념하는 게 옳을까 싶기도 하다.)

 

1. 군대 이야기는 왜 재미가 없을까

군대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 문제는 이야기하는 사람만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역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자가 아직 입대하지 않은 친구거나 여성 분이라면 문제는 두 배쯤 심각해진다. 소설로 넘어와보면,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내 기준에서 군대 이야기는 원래 삼겹살 집에서 쏘주 한 잔 걸치고 시작하는 종류의 이야깃거리다. 이렇게 문장으로 늘어놓아버리면 지지부진해져버리고 만다. 군대 이야기는 이야기할 때의 분위기가 잡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군대 이야기를 문장으로 옮기는 시도는 대체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이 작품이 그러한 ‘대체로’에서 벗어나있는 까닭은 사실 이 작품이 군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군대에서 후임 시켜서 토너먼트 나갔다가 어떠한 사정으로 자신이 직접 나서고, 수확철에 곡식 털어내듯 탈탈 털리는 이야기다. 배경을 군대로 잡았을 뿐이지 실제로는 군대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 읽고나서 이 작품의 배경이 군대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작품을 읽을 때 ‘당위성’에 꽤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군대가 아니라 가령 회사 사무실이라고 해볼까. 그렇다면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기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부사수는 뭐 크게 문제가 될 거 같지 않다. 그렇지만 팀장님이 주인공 사원과 굳이 반띵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다른 배경에서도 그러하다. 결국 군대에서만 이 이야기는 성립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군대 이야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군대 이야기처럼 읽히게 된다. 배경이 작품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좋은 예시라 하겠다.

 

 

2. 그냥 내 이야기

이 작품에서 ‘소문의 1300타’ 병사의 존재는 재미있다. 또한 전군에서 무명고수들이 참전한다는 설정도 재미있다. 그래서 내 비슷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군생활 할 때, P 뭐시기 탄핵당한 대통령을 모시고 하는 훈련을 했었다. 통합화력격멸훈련. P 대통령이 자리한 그 몇 시간을 위해 우리 대대는 두 달 동안 밖에서 텐트 치고 매일같이 사격훈련하며 살았다. 훈련이 모두 끝나고 참가한 전 병력에게 5일의 포상휴가가 주어졌다. 그리고 사단에서는 훈련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한 병사들을 대상으로 소감문 쓰기 대회를 열었다. 동기들의 평균 휴가일수에 한참 모자랐던 나는 최우수상의 부상으로 나오는 포상 4일에 목말랐다. 어떻게든 따내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포대(포병의 중대를 포대라고 부릅니다)에서는 내가 글 쓰는 걸 다 알고 있고, 때문에 내가 당연히 소감문 대회에 나갈 것이라고도 생각했다고 한다. 다만 나는 소감문을 쓸 줄 몰랐다. 소감문이 소설과 똑같을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국방일보를 몇 개 집어와 읽었다. 국방일보에는 병사 및 간부들의 수기 몇 개가 올라오는데, 그걸 분석하겠다는 목적이었다. 나흘 정도를 에세이 분석에 매진하여 마침내 나만의 ‘공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공식대로 글을 썼다. 행보관이나 사통관, 아니 전 포대 병력이 내 글을 읽고 좋은 피드백을 주었다. 나는 최우수상이 따논 당상이라 생각했다.

사단에 업로드할 때, 다른 병사들이 쓴 감상문을 읽을 수 있었다. 다들 문장이 지지부진하여 내용이 쉬이 나아가지 않았다. 딱 한 사람만 빼놓고 말이다. 그는 자신을 육군사관학교를 자퇴한 병장이라고 소개했다. 사관학교 다니던 때의 계급이 남아서, 그는 입대할 때부터 병장이었다고 서론을 풀었다. 그의 문장은 서툴렀지만 진짜배기였다. 진짜 그의 목소리로 그의 사실을 사실대로 나열하는 에세이였다. 다 읽고 깨달았다. 내 거짓말로 점철된 에세이로는 결코 이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 사람이 최우수상을 탔고, 나는 우수상 셋 중 하나로 뽑혀 포상 3일을 받았다. 단순히 자존심이나 자긍심 같은 거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있다. 돈이나 포상 말고 다른 곳에 목적이 있는 사람. 이 작품의 부사관처럼 타자 치는 그 자체에 즐거움을 목적으로 삼았던 사람. 그런 사람은 정말 이길 수가 없다.

그런 걸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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