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 SF 하드보일드 수사물” 감상

대상작품: 성 없는 인간 (작가: fool, 작품정보)
리뷰어: VVY, 1일 전, 조회 19

말도 안 되는 제목입니다. 제목이었습니다. 제목이었을 것입니다.

<성 없는 인간>이 결합한 위 요소의 조화는 기가 막힙니다. 개인적으로 하드보일드 수사물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감히 최고의 작품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싶습니다.

저는 성리학이라곤 쥐뿔도 모르고, ‘기’가 존재, 도구나 외연이나 행동, ‘리‘가 본질이나 내면, 진리, 도덕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이기론의 협소한 이미지만 대충 체감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제목의 소재인 심성론의 ‘성’의 개념은 본작 이전에 알지도 못했습니다. (대충 알아보니 인간의 마음 심을 성과 정으로 나누어 학파 간 견해가 다양하지만, 일반 독자 입장에서 성은 리와 같이, 정은 기와 같이 파악하면 무리가 없는 듯합니다.)

그 정도만 알아도 저는 한국인이니까 본작의 개념이 이해가 됩니다. 전작인 리 없는 우주는 조금 더 형이상학적 논의가 많지만, 본작은 수사물이라 전개 자체가 훨씬 대중적입니다.

지금의 AI 코파일럿 개념 ’기능자‘를 믿지 않으며 홀로 돌아다니는 수사관 주인공. 짭새라고 불립니다. 태학의 박사들이 차례로 죽어나가는 사건이 배당되었는데, 황제 직속 금오위 요원이 붙었습니다. 골치 아픈 케이스입니다. 믿었던 부장도 손을 뗍니다. 금새라고 부르면서요. 주인공은 금오위가 직접 일을 저질러놓고 자기에게 떠맡기는 건지 의심합니다. 하지만 사건이 전개될수록 기능자와의 연관성이 의심되는데요…

주인공 이하는 스스로 공허함을 느끼는 외톨이 늑대형 수사관입니다. 전형적, 교과서적 인물상이지만 정교한 세계관 속 행동과 묘사에서 표현되는 조성이 아주 생생하며, 유능하지만 사회 규칙에 순종하므로 우리 일반인의 호감을 삽니다. 더구나 성리학 일변도의 세상에서 이 캐릭터의 서사는 힘을 얻습니다. 이하는 사람의 내면에 본질, 리, 성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요. 실제로 세계와 동떨어져 있는 겁니다. 성 없는 인간이란 주인공 이하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캐릭터가 종국에 내놓는 자기 나름의 해답은 독자를 감복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이쯤하고, 세계관의 정교함에 대해서도 칭찬하고 싶습니다. 조선이 세상을 규율했던 이론적 근거인 성리학을 그대로 차용했기 때문에 본작의 세계관을 지배하는 인문학적 배경, 즉 따로 설명되지 않는 용어나 사소한 행동거지부터가 탄탄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인공이 느끼는 소외감이 이해되는 바입니다. (통상 사회물에서 소외감이란 외형적 소수자나 경제적 약자가 느끼는 것인데 인문학적 소외감이라니 신선합니다.) 여기에 금오위를 낮잡는 금새라는 표현, 태학 정문에 세워진 하마비(지금부터 말에서 내리라는 뜻의, 본작에서는 무시되는 비석), 물러설 때 짧게 읍하는 예절 등 현장감을 보강하는 디테일이 좋습니다. 작가님이 자신의 세계를 작은 부분까지 통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독자로서는 마음 놓고 무방비하게 그 안에 끌려들어가 흠뻑 취할 수 있었습니다.

전형성이란 단점이 될 수도 장점이 될 수도 있는데, 본작이 구현한 하드보일드 수사물의 전형성은 비전형적인 성리학 SF 세계와 맞물려서 극적인 장점으로 승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읽는 동안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수사물이 취향인 여러분들께도 강력 추천합니다. 아직 후속작 체 없는 용을 읽어보지 않았으나 본작은 독립적인 기승전결을 갖췄고 심지어 전작인 리 없는 우주를 읽지 않아도 이해에 무리가 없어, 그 자체로 하나의 단편으로서 권할 만합니다.

말도 안 되는 장르의 버무림을 성공적으로 선보여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끝으로 잘 읽었다는 말씀 다시 올립니다. (짧게 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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