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브릿G에 연재되기 이전부터 『Broken Flower』라는 작품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었습니다. 관심도 있었고, 그래서 여기 올라오는 것을 보고 ‘한 번 읽어봐야지’ 싶었어요. 원래는 브릿G 연재 페이스에 맞춰서 천천히 읽으려고 했는데, 이런, 그러기는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흡인력이 있고, 글이 매끄럽고, 앉은 자리에서 결말까지 다 읽게 만드는 종류의 글이었어요. 브릿G에서도 연재가 끝나면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 날이 왔네요. 구체적인 스포일러는 없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작품을 읽고 나서 읽어주세요.
한국 창작/동인계 용어로 ‘지뢰’라는 게 있습니다. 도저히 용납하고 볼 수 없는 장르, 작품, 소재 따위를 의미합니다. 한편 영미권 웹에서는 유사하게 Trigger, 즉 ‘방아쇠’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독자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는 괴롭힘이나 폭력, 현실적 범죄 묘사 등등의 소재를 뜻해요. 공교롭게도 둘 다 무기에서 비롯된 알기 쉬운 비유입니다. 밟으면, 당겨지면, 나쁜 일이 일어납니다.
비슷한 비유의 연장선상에서, 『Broken Flower』는 지뢰밭과 포화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글입니다. 일단 작품 내적으로 그래요. 전쟁이 끝난 뒤의 이야기를 다루니만큼 실제로 탄환이 빗발치지는 않습니다만, 인물이며 배경 전체에 지뢰가 묻혀 있고 방아쇠를 당길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살에 파묻힌 총알이라든가 땅 속의 불발탄 따위가 등장하기도 해요. 거의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장면들이죠. 전쟁이 남긴 상처는 시간이 지난 뒤에도 끊임없이 등장인물들을 괴롭히고, 조금 숨을 돌릴라치면 이젠 잠들어 있던 화약에 불이 붙습니다. 글 전체가 일종의 메멘토 모리라고나 할까요. 전쟁을, 비극을, 죽음을 쉴 틈 없이 생각하며 긴장하게 만듭니다.
지뢰는 작품 바깥에도 묻혀 있습니다. 이 글의 소재 자체가 거대한 불발탄이나 다름없거든요. ‘그녀’는 전쟁으로 두 다리를 잃고 수많은 흉터를 얻었으며, 성적 학대를 당했고, 작중 시점 이전까지 성매매로 생업을 유지하던 사람입니다. 이쯤 되면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의 화신이라고 불려도 될 정도죠. 사방 천지가 지뢰밭이고, 어떻게 쓰려 해도 총알 한두 방 스치지 않기는 힘든 일입니다. 이 점에서 『Broken Flower』가 완벽하다고 단언하지는 않을게요. 다만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이 작품이 지뢰밭에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이 작품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봅시다.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옛 동료를 성매매 업소에서 만나고, 집으로 데려오죠. 여기서 『Broken Flower』는 아주 뻔한 지뢰를 밟을 수도 있었습니다. 상처입은 여성이 주인공의 헌신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어쩌고……하는 구원 서사 말이에요. 그 중에서도 ‘성매매 여성 구원’과 ‘장애인 구원’처럼 흔하고 지긋지긋한 게 없죠. 대다수의 작품은 오만하기 그지없는 시혜적 시선이 느껴지거나, 아예 ‘이런 여자라면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겠지’라는 욕망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Broken Flower』는 이 지뢰를 정말 열심히 피해갑니다. 물론 화자는 헌신적이고 ‘그녀’는 그런 화자에게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만, 마법적인 구원은 등장하지 않고 사랑 역시 구원의 결과 당연히 주어지는 퀘스트 보상이 아닙니다.
구원 서사를 피해가다 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다른 흔한 지뢰도 있습니다. ‘역 구원 서사’라고 부르도록 하죠. 장애인/가난한 사람/기타 사회적 약자인 등장인물이 사실 그 누구보다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어서, 주변 사람들이 그 모습에 치유되거나 반성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구조의 이야기에서는 현실의 고통과 문제 따위가 죄다 무시되고, 사회적 약자인 등장인물이 사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치유 토템이 되는 경향이 있죠. 『Broken Flower』는 이 함정에도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써요. 화자는 ‘그녀’만큼이나 전쟁의 상흔으로 괴로워하는 인물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일종의 치유를 얻는데, 이 과정에서 ‘그녀’가 많은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치유 역시 편리한 알약처럼 뿅 등장하지는 않아요. 고생하고 고생한 끝에 간신히 얻어낼 뿐이죠.
이렇게 모든 진부한 기적과 마법의 지뢰들을 피해가려 하니, 남는 건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입니다. ‘그녀’는 조금의 구원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려 애를 쓰고, 희망이 주어지는 것 같으면 절망이 이자까지 쳐서 뜯어가는 전개가 반복되죠. 그 결과 꽤 읽기 괴로운 글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얘들 그만 좀 고생시켜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채로 엔딩까지 읽어야 해요. 하지만 글 전체에 깔린 괴로움이야말로 『Broken Flower』 최대의 장점이자 의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통에서 눈을 돌리는 일 없이, 끊임없이 삶의 괴로움과 우리의 불완전함을 인지한 채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 저에게는 상당히 뜻 깊은 경험이었어요.
인물 얘기를 좀 더 하죠. 화자와 ‘그녀’ 둘 다 흥미로운 조형이었습니다. ‘선량한 피해자’ 스테레오타입이 아니었다는 점이 특히 좋았어요. 역경을 받아들이기보단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고 싸우는 인물들이고, 덕분에 고통이 계속되는 전개가 일종의 가학적인 포르노처럼 느껴지지 않죠. ‘그녀’가 동정보다는 짜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렬한 인물인 것도, 화자가 그런 짜증을 무한히 받아주는 보살이 아닌 것도 둘을 인간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이 점이 앞서 말한 ‘뜻 깊은 경험’을 가능케 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의사도 언급해야겠네요. 작중에서 가장 기적과 마법에 가깝게 작동하는 인물인데, ‘그녀’가 기적에 대응하는 태도 덕분에 이야기가 뻔해지기보단 인간관계를 흥미롭게 만듭니다.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집요하게 강조되고요. 결함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법이죠.
앞서 말했듯이, 『Broken Flower』는 지뢰와 방아쇠로 가득한 글입니다. 아마 제가 간과한 지뢰가 잔뜩 묻혀 있겠죠. 다른 독자라면 또 다른 부분에서 고통을 느낄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이 정도로 열심히 지뢰를 피해 나아가는 글이라면 그 시도 자체를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전쟁과 장애와 성과 트라우마 같은 어려운 소재를 아예 건드리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는 모르지만, 어려운 소재를 어떻게든 쓰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요. 그 고민의 결과물이 이 정도로 잘 쓰인 글이라면 더더욱이요. 포화를 뚫고 지뢰밭을 가로질러 멋지게 목적지까지 도달한 군인에게는 아마 훈장이 주어지겠죠. 훈장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저는 리뷰의 마지막을 독자로서의 솔직한 감상으로 이렇게 마치고자 합니다. ‘이런 글을 더 많이 읽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