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시간을 넘어온 청춘 일기, 그 방대한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공모(비평)

대상작품: 달의 아이들 (작가: 김우진, 작품정보)
리뷰어: SNACCC, 8시간 전, 조회 22

<달의 아이들>을 덮으며

때로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작품의 제목, 시놉시스, 장르 및 태그가 아닐 때가 있다. 이 작품을 펼친 계기는 바로 독자들의 뜨거운 호평이었다. 수많은 댓글이 찬사를 이루고, 출판을 독려하며, 이 작품이야말로 ‘인생작’임을 호소하기에, 궁금하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호기심을 넘어 어떤 의무감마저 들게 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이토록 세차게 흔들었을까.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세계와 작가의 정체가 궁금했다.

 

전문적인 평론가는 아니다. 내 글을 쓸 줄이나 알지 타인의 세계에 감히 뭐라 할 재주도 주제도 없다. 한데, 모든 이야기가 매듭지어지고 작가가 남긴 10년의 회고록인 ‘후기’까지 읽은 후에는 생각이 변했다. 그렇게 찬사 속에 감춰진 세계를 펼쳐본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지금, 나는 독자로서, 그리고 굳이 비평이라는 카테고리를 선택한 입장에서 꽤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혀 있다. 본인을 ‘독자’로 자칭하고 감상평, 비평, 후기를 적어본다.

이 작품은 작가의 10년, 소년이 청춘으로 익어가는 과정을 함께한 거대한 세계이다. 작가께서 후기를 통해 먼저 약점을 고백하셨듯이, 이 리뷰는 독자가 작가의 ‘용기’를 응원하며, 작품이 가진 가능성과 아쉬움을 가감 없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작가가 먼저 지적한 포인트들도 모두 다룰 예정이다.


 

1. 감상평. 장르의 변주와 10년의 단층

 

본 작품은 ‘부(部)’를 기준으로 과감하다 못해 파격적인 장르적 변주를 시도한다. 이는 작가가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집필하며 변화해 온 관심사와 필력이 지층처럼 쌓여 있음을 방증한다. 간단히 각 부를 소개하고, 각 부의 감상평으로 접어들겠다.

1부는 세계 종말 이후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소위 서브컬쳐에서 세카이계라 칭하는 로맨스물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세계 #로맨스 #운명

2부는 나폴리탄의 향취가 짙게 묻어나오는, 초자연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판타지다.

#코스믹 호러 #나폴리탄 #SF #신념

가장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3부는 거대 기업과 정보기관이 얽힌 첩보 스릴러이자 세계적인 위기에 맞서는 소수 집단의 액션 활극이다.

#첩보 #스릴러 #SF #어반판타지 #느와르 #액션 #밀리터리 #추리

 


(1부) 낭만화된 종말과 실존의 간극

여기 멸망한 대한민국에 두 남녀가 덩그러니 살아남았다. 미남 경찰 태성과 미녀 대학원생 하나.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하나의 장르적 성격을 가진 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으니, 으레 독자는 생존에 대한 처절함과 익숙하지만 생경한 풍경 속에서의 긴장감을 기대한다. 다만, 그 생존 투쟁의 장에서 독자는 두 사람의 철학 토크쇼와 로맨스의 무대로 초대받는다.

워킹데드 시즌 1의 첫 시퀀스. 킹 카운티 보안관인 주인공 ‘릭 그라임스’는 시즌 초반에 철저하게 ‘경찰’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행동한다. 무너진 세상에서도 그는 사명감을 갖고 법과 질서, 도덕을 수호하고자 한다. 그는 첫 시즌 내내 보안관 제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다닌다.

태성도 경찰이다. 수 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에서 생존자가 라디오를 구하려고 애를 쓰는 건 이유 있는 클리셰다. 가장 구하기 쉽고, 약간의 지식이 더해지면 폐품을 수거하여 제작까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석 사진기도 작동한다면 광역 EMP는 아닐 건데, 군필 경찰이라면 재난 상황에 라디오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러나 태성은 하나 씨와 한 시간 떨어져서 조사하자는 결론을 내린다. 상담 심리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에게 경찰이 조사를 맡긴다. 참고로, 지금 재난 상황이다.

세상이 뒤집혔다. 이동 수단이라고는 고물 자전거 한 대가 전부인 폐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가족, 친척, 친구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 태성은 처음 만난 하나와 순식간에 감정적 교류를 나눈다. 그들은 백화점을 찾아 1.5개월 만에 누더기가 된 옷을 갈아입을 정도로 열악하지만, 그들의 대화에서 생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부모님은 작중 이미 고인이시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관계망 속에 살아가는 엄연한 인간이다. (김태성 씨는 작가와 동일한 이름의 친구도 있다) 세상이 뒤집히고 인류가 증발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의 태도는 지나치게 차분하고 낭만적이다. 생존의 고민이 사라진 자리에 대신 들어온 건 ‘소소한 행복’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담론이다.

물론 극한 상황에서 피어나는 낭만은 아름답다. 하지만 하나 씨가 설파하는 행복론은 소설에 살아있는 인물의 대사라기보다 자기계발서의 한 구절처럼 들린다. 눈앞에 비극이 펼쳐져 있는데 ‘오늘 날씨가 좋으니 난 행복한 사람’을 말하는 것은, 긍정이라기보다 현실 도피, 혹은 기이한 정신 승리에 가깝게 느껴져서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치명적인 병목현상은 두 인물의 대화였다. 태성과 하나의 대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태성의 지적 열세, 그리고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태성에게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계도하는 하나의 일침으로 구성된다. 태성은 한없이 어리석고 하나는 한없이 지혜로운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들의 입에서 거미줄처럼 끝없이 뿜어지는 십수 줄의 대화문은 정제된 문어체로 표현되어,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라, 시간을 정해두고 웅변대회에서 각자 준비한 대본을 발표하는 것 같았다.

점차 정신이 혼미해지며 광증을 보이는 태성과 이상하게 변하는 세계, 그 속에서 벌어지는 또 한 차례의 붕괴에서 다양한 복선들이 사출된다. 다리가 깔린 태성, 콘크리트에 머리를 맞은 하나, 암에 걸려 수척해진 태성과 그와 함께 달나라로 여행하는 하나의 비극적인 엔딩은 훌륭하다.

어? 그런데 이게 꿈이었다고? 근데 공유몽이었다고? 그렇다면 태성이 할 일은 하나다. “너의 이름은!”

(2부) 확장되는 세계관과 괴리감, 그 속에서의 눈부신 상상력.

초반 빌드업에 상당히 공을 들인 환상소설이다. 태성 씨와 하나 씨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중학생 하늘이가 주인공이다. 현서 언니 ─라고 믿었던 자신의 미래─에 맡겨졌다가 초자연현상에 휩쓸리고,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듣도 보도 못한 환상적인 세상을 탐험하는 이야기이다.

독자는 이 모험 파트의 분위기를 너무 좋아한다. 도저히 가늠도 되지 않는 배경들이 마구잡이로 밀려들고, 그 속에서 겨우겨우 정신을 유지한 채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리는 주인공의 심리적 성장소설. 자그마한 빌둥스로만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1부에 비해 훨씬 정제된 연출, 그리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이번에도 매끄러운 독서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들이 있었다. 1부와 마찬가지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주인공은 생존본능을 발휘하는 대신 ‘내 신념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철학을 전개하는 방식은 다소 아쉽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철학 주입의 토론장이 열렸다. 이번에 그 깨달음을 전해주는 선지자의 역할은 로봇인 카프가 맡았다. 결국 구도는 태성과 하나의 토크쇼와 결을 같이 한다. 한 번에 수십 줄에 달하는 가치관이 폭우처럼 쏟아지고, 15세 소녀 하늘이는 그걸 꾸역꾸역 삼키는 것도 아니라, 이유식을 먹듯 부드럽게 소화해낸다. 그 끝에 자신만의 신념과 정의관을 정립해낸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어떤 동기와 성장을 부여했으나, 그 방식이 사건 속에서의 경험을 통한 성숙이 아닌 대화만으로 구성된 지식 주입의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나, 로봇이 ‘바다의 악마 전설’을 대화문으로 읽어주는 장면은, 2000년대 초반 가정용 프린터에 컬러 인쇄를 맡긴 것처럼 버거웠다.

다시, 하늘이는 중학생이고, 천재 기믹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15세 소녀는 카프와의 대화에서 정치, 외교에 대해 심도 있는 담화를 나누고, 영화에서 봤다는 이유로 백린탄을 한순간에 육안으로 구분해낸다. 신념과 정의에 대한 사유는 철학자처럼 고상하다. 특별한 선택을 받은 아이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들이 있는 초월적 공간의 영향인가? 이 공간에서 카프조차도 사고력이 향상됐다고 한다.

붉은 눈의 등장과 그것이 보여주는 파멸의 세계 시퀀스는 압도적으로 좋았다. 영화 ‘28일 후’의 첫 장면인 침팬지 실험실의 풍경이 떠올랐고, 에피소드 중간마다 나타나는 오펜하이머, 닐 암스트롱의 상징적인 대사가 기묘한 분위기에 맞물려 소름 돋는 공포감을 자아낸다. ‘네가 누군지 알면 찾아오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까지, 독자는 한때 유튜브를 떠돌던 ‘절대 위를 보지 마’ 를 떠올렸다.

후반부, 1부의 태성과 하나가 fly to the moon을 실천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 거대로봇 캎쨩(가명)과의 사투는 매우 인상적이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이 떠오르는 그로테스크함과 엉뚱함이 잘 버무려져 찾아오는 심리적 압박이 잘 느껴졌다.

캎쨩과 싸울 때 우연히 빗맞히길 기도하고, 정말 우연히 빗맞혀서 살아남는 장면은 아쉽다.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드론이 날아와 앞의 로봇 머리를 대신 때려주는 우연도. 우연이 계속 개입하니 편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부) 세계의 운명을 천칭에 올린 압도적인 스케일은 디테일보다 한없이 무거웠다.

이제 개인의 문제를 초월하여 세계의 문제로 뻗어나간다. 그를 지탱하기 위한 작가의 세계관 구축 능력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초기에는 개인의 미시적인 감정에 집중하던 서사가 후반부로 갈수록 국가 간의 알력, 거대 기업의 음모, 인공지능과 핵무기라는 거시적 담론으로 확장된다.

3부 12장부터는 본격적으로, 복잡한 국내 정세, 정치와 외교 갈등, MGB, CIA, MI6, GRU 등의 정보기관, 올빼미, 미네르바, 아테나, 체이서즈 등의 소재가 등장한다. 작가는 그에 얽힌 이해관계들은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매우 풍부하고 치밀한 세계를 조성한다. 내러티브를 견인할 핵심 사건들이 발생하자 이전의 불편감이 반복되었다. 그 멋진 세계가 오직 인물들의 대화로만 설명되었다는 점은 아쉬웠다.

세계가 거대해지면 신경 써야 할 디테일이 그만큼이나 치밀해진다. 가령 알파인의 CTO인 현서 언니에 대해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알파인은 국가 권력을 넘어서는 메가코프로 성장했다. 블레이드러너의 타이렐 코퍼레이션, 파이널 판타지 7의 신라 컴퍼니, 사이버펑크의 아라사카와 밀리테크와 결을 같이 하는 초거대 기업의 임원이라는 뜻이다. 작중 적색 전선, 자유 연합으로 대변되는 폭도들조차도 감히 알파인의 직원을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현서 언니의 저택에는 CCTV, 경비 드론, 경호 휴머노이드가 매우 많은 것으로 묘사된다.

다시, 현서 언니는 메가코프의 C 레벨 임원, 그중에서도 기술의 집약체나 다름없는 CTO다. 작중 그녀의 위상은 대통령보다도 한 수 위로 쳐준다. 즉, 개인 경호원, 생체 신호 모니터링, 즉각 대응 타격대(QRF)가 24시간 그녀를 엄호해야 정상인 걸어 다니는 요새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휴머노이드들은 면식이 있는 하늘이에게 간단히 길을 터주고, 주정 부리는 그녀를 묵인한다. 현서는 경찰 1명과 로봇 2대의 습격으로 하늘이의 눈앞에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다.

비극을 암시하는 대사가 빈번히 나와 이후에 안 좋은 일이 있음을 미리 예지하고, 각 부에서 이상한 일을 겪은 주인공들은 항상 털어놓기를 시전한다. 태성은 우진에게 털어놓고, 하늘은 우진과 현서와 카프와 CIA에게 털어놓고, 목숨을 구해준 현우에게도 털어놓는다. 현우의 집. 로봇 엠마가 나오는데, 그 짧은 순간 엠마와도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CIA와 접선하자마자 갑자기 마이클과 하늘이는 싸울 듯이 날을 세우고, 이내 원만하게 지내자고 하더니 또 대립각을 세운다. 그런데, 감정싸움이 발생할 건덕지가 안 느껴진다. 심지어 저들은 프로인데도, 갑자기 급발진을 해버리고 자존심을 부린다.

기밀 해제가 불허된 극비 문서에 엄연히 남아 있는 기록을 CIA 요원은 알고 있다. 로건은 그 사실을 하늘이에게 말한다. 이 자들에게 과연 세계의 운명을 맡겨도 될까? 걱정하지 마라. “비밀 요원 나가신다!”

연이은 절망 속에서도 카프와 재회한 장면에서 그의 낭심을 보고 음흉한 상상을 하는 묘사는 이해하기 어렵다. 솔직히, 왜 그런 장면이 나와야 했는지는 작품을 덮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로봇도 인간으로 대하는 하늘이의 태도는 이해하고, 둘 사이의 성적 긴장감이 생겨도 이상할 건 없지만, 왜 이 상황에서 굳이 그래야 했는가? 잘 모르겠다.

하늘의 고군분투와 후반부의 연이은 반전, 그리고 점점 거대해지는 액션 시퀀스는 인상적이다. 과거의 인연이었던 해리와의 격투, 카 체이싱 액션을 넘어 알파인 지사 돌파 시퀀스는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를 연상케 한다. 아테나와 맨몸으로 벌이는 라스트 맨 스탠딩은 처절하다.

김태성, 헤르메스, 아테나, 김우진의 정체는 영리한 반전을 보여준다. 아빠인 태성 씨는 하나 씨의 죽음 이후 분노의 칼날을 갈고 있었지만, 우주에게 한우 세트를 보내주는 등 저의를 알 수 없는 행동으로 반전의 예상을 적절히 관리했고, 아테나의 경우도 이태원 회담에서 가능성이 작다고 결론을 내렸다. 김우진은 자주 등장하지만 오히려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들이 하늘이와 대립하여 정체가 드러날 때면, 자신의 인생사, 범행 동기, 조직의 비밀을 친절하게 브리핑한다. 헤르메스의 경우 2부에서의 떡밥 ‘왼쪽 눈’을 단서로 정체를 밝혀내는 카타르시스가 일품이었다.

1부부터 뿌려둔 떡밥들을 엔딩까지 조밀하게 회수하여 수미상관을 이루려는 시도가 좋다. 세계는 구했지만 모두가 죽어버렸다.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씁쓸하게 떠나는 하드보일드적인 마무리는 카우보이 비밥이 떠올랐다.

 

Bitter Sweet Symphony

 


2. 완독 후의 비평

작가 후기까지 모두 읽었다. 감상 중에 느꼈던 불편감은 작가 또한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이 없어진 것은 아니기에, 느낀 바를 적는다.

공교롭게도 독자 또한 어반판타지를 좋아하고 그런 글을 써온 사람이다. 며칠 전, 한 사람에게 강제로 기억이 주입되는 과정을 ‘텅 비어 있던 항아리에 바다를 억지로 쑤셔 넣는 폭력’이라 묘사한 적이 있었다. 달의 아이들을 3부까지 읽었을 때, 독자는 수박보다 작은 두개골 안에 홍수가 범람하는 기분을 느꼈다. 멸망한 세계에서 태성과 하나의 대화, 달의 꿈에서 하늘과 카프의 대화, 백인 미남으로 부활한 카프와 그의 대물을 상상하며 귀가 빨개진 하늘이의 대화, 하늘과 CIA 요원들의 대화, 정체가 드러난 흑막들과의 대화가 그러했다. 1부와 2부, 3부를 관통하여 중요한 정보는 캐릭터의 입을 빌려 끝없이 서술되었다.

캐릭터의 입을 빌려 세계관을 설명하거나, 철학을 논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듯, 그 형식에 대해서는 고민의 지점이 필요한 것 같다. 하나의 대사가 원고지 2~3매를 차지하는 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게 지속해서 반복된다면 인포 덤핑(info-dumping)이 된다. 정보가 너무 없으면 불친절한 글이 된다. 그러나 정보가 너무 많아 버리면 과잉 친절이다. 과잉 친절은 결국 독자에게 불친절로 환원된다. 독자는 지구 최강의 그래픽카드인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일부는 상황을 통해, 일부는 묘사를 통해, 일부는 대사를 통해, 일부는 과감히 생략하더라도 독자의 상상력을 믿는다면 ‘구구절절’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물이 아닌 서술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점은 다소 아쉽다. 일인칭 시점에서는 ‘슬프다’는 문장이 곧 슬픔을 규정하고, ‘분위기가 다운됐다’는 인식이 곧바로 분위기 전환을 불러온다. 인물들이 사건 속에서 자발적으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주어진 분위기에 맞춰 행동하는 태도가 3부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문장력이라는 건 작가의 목적과 독자의 취향에 따라 의견이 분분해질 수 있는 영역이기에 조심스럽다. ‘달의 아이들’은 환상을 다루는 문학이다. 현실에 없는 것을 묘사하기를 작가가 선택했기에, 작가에게는 형용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이란 결국 언어를 결합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기어코 그려내는 과정이다. ‘형언할 수 없는’, ‘믿을 수 없는’, ‘웅장’, ‘신비로운’, ‘몽환적인’, ‘알 수 없는’의 반복적인 사용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을 형언하지 않는 선에 그칠 위험이 있다. 2부의 얼음동굴 시퀀스에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등장할 법한 통로’라는 묘사가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큐멘터리를 즐기지는 않는다.

작가는 다양한 주제와 철학적 담론에 대해 심도 깊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아는 것이 매우 많다. 그 흔적들이 작품 곳곳에 묻어 나온다. 다만, 아는 것을 모두 보여주려는 마음과 소설이 독자에게 제공해야 할 환상의 묘사 사이의 불균형이 다소 크게 느껴졌다.

Don’t tell, but show. 소위 ‘쇼돈텔’이라는 말이 독서 중에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뜻이다. ‘소소한 행복을 찾으세요’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태성은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듯 행동한다. 실제로 그들은 폐허 속에서 사진을 찍고, 쇼핑몰에서 옷을 주워 입고, 모닥불을 피우며 지냈다. 무너져 가는 편의점에 들어가 겨우 삼다수를 손에 넣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기뻐했을 법하다. 작품에 일일이 적히지 않아도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겪었을 사소하고도 웃픈 에피소드들은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하나가 장광설을 늘어놓지 않더라도, 함께 쌓인 시간 속에서 태성은 자연스럽게 깨달았을 것이다.


 

3. 작가 후기에 대한 후기. 10년의 성장통이 빚어낸, 낭만의 성채.

사실 이 리뷰를 작성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작가 후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비평이라는 다소 민감한 파트를 굳이 넣은 것도 이 후기를 읽은 후에 결정했다. 작가는 10대부터 이 소설의 세계를 구축했고, 10년에 걸쳐 이어왔다. 뼈대를 이미 다 잡아놨기 때문에 뒤늦게 바꾸기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 상황에 처해봤기에 공감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독자가 실제로 밥 벌어먹기 위해 했던 일은 프로그래밍이다. 처음부터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은 없다. 작은 프로덕트부터 출발하여, 점차 기능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뒤늦게 피보팅 등의 이유로 기본 골조를 수정해야 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그 기술부채를 해결하는 건 참 고역이다. 다 갈아치우고 새로 쓰는 편이 더 빠르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분야가 다르다면 다시, 독자 또한 10대 시절에 한 어반 판타지 작품을 집필하다가 진학을 앞두고 절필한 바가 있고, 뒤늦게 꿈을 찾아 키보드를 잡았을 땐, 나이를 두 배로 먹어버렸다. 그래서 작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과거의 작품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은 사명감에 달할 만큼 컸을지도 모르겠다. 10대의 글을 30대에 다시 만난 독자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옛 추억이 담긴 원고를 살릴 것인가? 처음부터 새로 쓸 것인가?

완독 후 읽은 작가의 후기는 작품에 대한 인상을 다시 한번 바꾸어놓았다. 작가는 10년의 집필 과정을 설명하며 작품의 단점을 스스로 먼저 지적한다. 다만, 그게 타인의 비판을 예상한 선제적인 방어기제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10년의 집념과 고민, 사유의 스케일은 존중받아 마땅한데, 독자는 어차피 작가의 노력이 아닌 결과물을 소비한다.

냉정히 말해, 이러한 후기가 오히려 독자에게 단점을 더 크게 의식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는 게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문장을 본 사람은 코끼리를 생각한다. 단점을 말했기에 단점이 보인다. 작가 스스로 중구난방이라 하면 중구난방이고, 설정 놀음이라 하면 그렇게 보인다. A-B-C를 건너뛰고 A-D-G로 진행했다고 말하면 그 결점을 읽을 수밖에 없다.

작가는 자기 세계에 대해 변명할 필요가 없다. 텍스트는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 오롯이 독자의 해석에 맡겨지는 독립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달의 아이들>에서 독자는 신박한 연출과 뛰어난 서사, 그리고 많은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다. 환상적인 세계를 구축했으나 캐릭터는 작가의 사유를 장문으로 전달하는 스피커가 되기도 하고, 위기를 우연으로 극복하는 장면도 심심찮다. 세계관은 방대하고 유기적이지만 미시적인 결합은 헐거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끝까지 읽게 만든 힘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 요인으로 독자는 작가의 집요함과 애정을 꼽고 싶다.

Q: 작가의 노력을 독자는 봐주지 않는다고 상술했을 텐데, 갑자기 이 무슨 자아분열이냐?

작가는 행복을 깨닫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용기와 신념을 품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그 애정은 주인공들을 통해, 방식이 다소 투박하고 거칠 수는 있어도, 그 안에는 세상을 구하고 싶은 순수한 열망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끊임없이 던진다.

서론에서 ‘용기’를 언급했다. 이는 ‘미움받을 용기’를 뜻하기도 한다. 자신의 세계와 이야기에 조금 더 뻔뻔하고 당당해지셔도 된다. 10년간 쌓아 올린 이 거대한 탑은, 비록 틈새가 보일지라도 그 자체로 유일무이한 작가의 역사다. 독자들의 호평은 아마도 텍스트뿐만 아니라, 그 행간에 숨겨진 작가의 치열한 열정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독자를 만족시키는 글은 없고, 작가는 10년의 비행을 마쳤다. 이제 다음 비행을 위해 날개를 정비할 때다.

결론적으로, 달의 거친 표면 아래에는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고유한 빛깔의 원석이 숨 쉬고 있다. 언젠가 이 작가가 다듬어낼 다음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아름다운 달빛으로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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