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제대로 보려면,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다음, 다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 본 다음에 중간의 본 연재를 읽어야 이해되는 구조다.(…)
이야기의 외피 자체는, 한 남편이 아내의 불륜에 대해 말하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아내의 불륜상대의 멱살을 잡으며 마주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다. 그렇다 그 이야기. 글로 된 그거.
여기서부터 작품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들어간다. 화자는 ‘이야기’를 하나의 실체, 즉 ‘이야기’씨로 대면하고, 그 이마부터 발끝까지 문장으로 이루어진 존재를 읽어나간다.
즉, 이 소설의 본문은 남편이라는 화자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야기’씨의 생김새를 설명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보이지만 액자식 구성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 화자가 묘사하는, ‘이야기’씨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고있을 뿐이다.
이 ‘남편’이라는 화자는 자기의 삶을 말하려 하지만, ‘이야기’가 갑자기 침입하면서 그의 삶은 서사적으로 탈취당한다. 즉, ‘이야기’는 화자의 존재를 삼켜버리는 기생체처럼 작동한다.
그래서 본문, 즉 ‘이야기’의 내용, 아니 모습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인간의 밑바닥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가짜 가족을 꾸려 집을 상품으로 받으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이 작품이 서사 속에 또 다른 서사를 삽입해 ‘허구가 허구를 낳는 구조’를 노출시키는 메타픽션적 실험임을 보여준다.
이 삽입된 이야기 속 주인공은 인간관계와 가족, 그리고 행복마저도 조작된 이미지로 재현하려는 인물이다. 그는 주변인물과의 합의, 합성과 조작으로 가짜 가족을 만들어내고, 방송이라는 ‘가짜 이야기의 공장’에 출연해 ‘진짜 집’을 얻으려 한다. 이야기 속 인물이 또다시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방송에 나오는 모든 것은 연출이고, 작가와 PD의 요청에 따른 연기이며, 이미 짜여진 대본과 편집에 의한 가짜다.
현실과 허구가 완전히 교차하는 이 전개는 ‘살아 있는 인간의 삶’과 ‘이야기 속 인물의 존재’ 사이의 경계를 철저히 허문다는 점에서 자의식을 가진(?) 현대 소설(…?)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현대 판타지 또는 판타지 스릴러처럼 보이게 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약간은, 20세기 후반 만화책들에서 유행하던, 만화 주인공들이 컷을 뚫고 나와서 작가에게 항의하는 연출도 생각났다)
마지막에 ‘이야기’의 두 발등이 서로 다른 결말을 가진다는 설정은 너무나 신박했다. 마치 게임에서, 선택지에 따라 마지막 대사가 달라지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형식적 장난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야기’의 불안정성, 곧 진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이야기의 양면성을 상징한다고 본다(작가가 의도하고 쓴건지는 모르겠다).
왼쪽 발등의 결말은 감정의 폭발로, 오른쪽 발등의 결말은 디지털화된 사랑으로 나타난다. 사실상 그 둘 다 ‘진실’이지만 동시에 ‘허구’이며, ‘이야기’를 읽던(보던?) 남편, 즉 “처음의 화자”는 이 애매한 양쪽 결말을 성의없고 건방지다며(‘이야기’씨가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어서 결말이 두 개가 되었다고…) 비판하고, 자기 이야기를 드디어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씨를 비판/비난하던 그는 결국 본인의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작품이 닫혀버린다. 마침표조차 찍지 못한 채.
따라서 이 작품은 불륜 서사로 출발하지만,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소설은 이야기와 인간, 아니 이야기와 등장인물 또는 이야기와 독자와의 ‘주종 관계’, 현실과 허구의 경계, 그리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말하지 못하는 자아’라는 문제로 확장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독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읽는 이 텍스트가 ‘이야기’씨 라는 실체에 집어삼켜지고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에가서는 “내가 지금 뭘 본거지…” 라는 멍한 상태만 남게 된다.
결국 이 작품은 ‘이야기’라는 존재가 인간보다 더 오래, 더 강하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한다. 남편 화자는 “이제 진짜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말하며 끝나지만, 이미 독자는 안다. 그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며, 마지막까지도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그를 대신해 말하는 것은 ‘이야기’ 그 자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소설이 재밌냐고? 아니 별루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교훈도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 내가 제대로 평론을 하자면, 우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