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농담이 있다. 내 머릿 속에 있는 걸 써주는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난 생각만 하면 되고 글은 기계가 딱 써주고 말이야. 마감에 절박해진 사람들의 동감에는 진정성이 있다. 때로는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한다. 내 머릿속에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어. 이걸 써주는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정말 훌륭한 이야기가 완성될텐데. 다른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을지라도 이런 생각을 해낸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 이야기가 선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걸 꺼낼 수만 있으면 될텐데.
그리고 지금은 2025년, AI의 시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세상은 AI에 의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관련된 분야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 마음 속에 있던 이런 생각 ‘누가 내 머릿 속에 있는 것 좀 써줘,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걸 써줘.’ 같은 느낌까지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AI와 데이터 과학의 시대는 우리의 바로 곁까지, 그러니까 핸드폰 안까지 들어와있다. 구글의 제미니와 챗 지피티는 글자를 입력하거나 음성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아주 사소하고 바보같은 질문부터 우주적인 철학과 가장 복잡한 계산들까지도 해낸다.
<AI의, AI에 의한, AI를 위한 소설>은 작가, 편집자, 독자가 모두 적극적으로 AI로 대체된 결과가 가져오는 행복한 결말에 관한 이야기이다. AI는 유능하다. 글이 써지지 않아 고통받는 작가에게 버튼 하나만 누르면 원하는 글이 완성되는 AI의 존재는 엄청난 치트키다. 베스트셀러를 발굴해내기 위해 고민하는 편집자에게 100퍼센트의 확신을 가지고 작품을 찾아내는 AI의 존재는 구원이다. 책을 읽고 싶지만 여러이유로 정말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AI의 요약과 추천은 컨닝페이퍼를 보고 치르는 시험처럼 간단하다.
실제로 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가 가능해졌다. <AI의, AI에 의한, AI를 위한 소설>속에서 작가, 편집자, 독자는 시장의 욕망에 의해 모두 AI로 대체되었다. 모두가 절실히 바라던 것이었기에 모두가 행복했지만 이것을 소설을 읽는다고 봐도 되는 걸까? 욕망은 이제 인간을 통해 발현되지 않는다. 시장이 AI를 통해 바로 실현된다. 인간의 욕망이었던 것은 자본을 통과하면서 자본의 욕망으로는 남았지만 인간을 더이상 통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소설의 일부 내용은 어떤 면에서는 현실에서 실현되었다. AI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소설을 읽고 쓰고 편집하고 이야기하는 행위조차도 AI를 통해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은 처음 이야기를 만들어낸 인간이 원하던 모든 것이다. 소설을 쓰거나 읽고 판단하지 않아도 소설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누가 내 머릿속에 있는 걸 써줬으면 좋겠다. 정말 훌륭한 소설일텐데.’ 같은 소원은 다소 일그러진 모습으로 실현되었다. 마치 원숭이 왕이 들어준다는 잘못된 소원처럼 기묘하게 삐뚤어진 모습이다.
시장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시장 바깥에서 책을 읽고 쓴다는 것은 어떤 일이 될까도 생각하게 되는 재미있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