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을 가로막는 자는 진정 누구인가 공모(감상)

대상작품: मार पापीयस् (마라 파피야스) (작가: 김은애, 작품정보)
리뷰어: 카시모프, 14시간 전, 조회 17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러시아의 짜르였던 이반 4세는 공포정치로 유명한 황제였습니다. 짜르라는 호칭을 가장 처음 사용한 통치자였으며, 강력한 정복의 황제였죠. 하지만 그는 말년에 수은중독으로 그 광기가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결국 이반 4세는 자신이 유일하게 아끼던 자식인 바실리를 광기 속에 때려죽이고 말았죠. 이반 4세의 그 모습은 일리야 레핀의 그림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광기 속에 아들을 죽이고, 그 후에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후회하는 광기 어린 뇌제의 모습이. 이 <마라 파피야스>를 읽고 나니, 그 그림 속에 있던 이반 4세의 눈빛이 떠오릅니다.

 

 

<마라 파피야스>의 이야기는, 겉으로는 해탈하려는 스님에게 찾아온 마지막 유혹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마지막 문단으로 인해 이 모든 것들의 진실과 환각의 경계가 사라집니다. 깨달음의 이야기였던 것이 광기에 사로잡힌 치매 노인의 이야기로 뒤집어져 버리죠. 그리고 독자는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아가’는 누구인가? 이 노인은 정말 스님이 맞긴 한가? 애초에 노인은 치매에 걸려 자신이 해탈 직전의 스님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결국 독자는 생각하기 싫은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아가’라며 찾아온 여인이, 사실은 무염과 가장 가까운, 혹은 사랑했던 사이였을 수도 있는 누군가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그리고 치매의 환각 속에, 그녀를 때려죽였다고. 마치 이반 4세가 광기 속에 아들을 때려죽인 것처럼 말이죠. 어쩌면 노인이 ‘오리 집 거사’라고 부르던 사람은 노인의 아들이고, 찾아온 ‘아가’라는 여인은 오랫동안 왕래가 없던 노인의 딸이거나, 혹은 부인일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보통 노인들은 며느리를 ‘아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금지된 욕망이 치매로 인해 마음 속에서 형상화된 것일 수도 있겠지요.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는 알 수 없지만요.

무염이 진짜 스님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소설 중간에도 느낄 수 있는데, 수십 년 수행을 한 스님치고 너무 가벼이 여인의 유혹에 흔들린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위해 음욕을 제어하고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지, 부정하고 완전히 금하라는 것이 깨달음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스님의 흔들림은 더욱 수십 년 수행한 스님의 그것이라고 보기 힘들어집니다. 물론, 그만큼 파순의 유혹이 강력하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불자들은 다 알고 있지요. 붓다가 깨달음의 마지막에 어떤 유혹들이 왔고, 그것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그래서 이 이야기 전체가 이태천이라는 노인의 환각이었다로 해석하게 되면, 너무나 슬프고 섬뜩한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의사가 말하길, 종종 제정신으로 돌아온다고 했으니… 소중한 누군가를 때려죽인 이태천은 그 광경을 보고 어떤 마음이 들까요.

또 하나의 가정은, 무염이 실제 해탈 직전의 스님이며 그에게 찾아온 치매가 불러일으킨 환각이 ‘아가’라는 여인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붓다는 자신에게 찾아온 유혹을 말로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무염은 때려죽였죠. 무염이 때려죽인 건 무엇이었을까요. ‘아가’가 실체가 없는 마왕이라면, 때려서 깨트린 건 자신의 머리가 아닐까요? 결국 치매의 속삭임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때려죽여 열반에 든 것일까요.

결국 <마라 파피야스>는 단순히 극적 반전을 통한 재미를 주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악이나 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우리가 악이라 상정하고 폭력적으로 제거하려 할 때, 만약 그 악이 내 환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내가 죽이려는 악이 사실은 선이 아니었을까. 선과 악은 내 안에서, 내 옆에서, 나를 이루는 사회에서 정말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오늘도 세상은 서로 자신이 선이라고 외치며, 악을 때려잡아 유혹을 물리치자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자신이 때려잡으려는 그 악이, 실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무엇이 될지도 모르는 채 말이죠. 어쩌면 이러한 혼돈, 그 자체가 세상에 깃든 ‘마라 파피야스’일지도 모릅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