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자의 침실에서 피어나는 광기, 밤을 지배하는 여성들의 비극 공모(감상)

대상작품: 모두가 잠들지어니 (작가: 장아미,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6시간 전, 조회 7

※리뷰에 작품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다만 스포일러가 작품의 재미를 해치는 류의 작품이 아니라 리뷰를 먼저 읽은 후에 작품을 읽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햄릿을 처음 봤던 건 중학교 음악 시간입니다. 오래전 일이라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아마 햄릿을 오페라화한 작품을 바탕으로 그것을 다시 아동용으로 애니메이션화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때는 줄거리는 머리에 안 들어오고 음악만 들었는데(음악 시간이었으니 오히려 성실한 태도였을지도 모릅니다) 이후에 고등학생이 돼서 셰익스피어 원작을 접하고 나서야 그 작품이 품고 있는 인간 내면의 갈등과 질문들이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죽음과 망령, 망설임과 광기”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방을 비추는 고전입니다. <모두가 잠들지어니>는 <햄릿>을 모티프로 삼되, 중세 덴마크의 왕자 대신 정복자 ‘부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막과 궁성, 그리고 환영으로 가득한 세계를 펼쳐 보입니다. 그간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글에서 우아함이 느껴진다”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었는데, 이 작품 또한 정복자의 승리 뒤에 남은 공허함과 불안, 그리고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무너져 가는 주인공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그런 정취를 보여줍니다.

부의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왕성이 된 폐허의 궁에서 권력의 정점에 섭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명예나 평화가 아니라, 죽은 누이 홍연의 환영, 첫사랑 은월의 그림자, 그리고 자신을 뒤흔드는 불면과 광기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망령’이라는 외부 자극에 의해 내면의 갈등을 겪듯이 부의 또한 망령에 의해 자신을 갉아먹는 감정에 휘둘립니다.

반면 <햄릿>과의 차별점은 이 작품에서는 ‘여성의 유령’이 강력한 서사적 힘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홍연은 단순한 복수의 화신이 아니라 부의의 과거, 죄책감, 그리고 비늘이라는 이질적 정체성을 상징하며, 그를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은월 역시 살아 있는 자인지 망령인지 모호한 존재로, 부의의 욕망과 죄의식을 자극합니다. 설지는 은월의 대체재로서의 여성으로 보이며, 진실한 사랑과 권력의 소비로서의 육체적 관계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합니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 볼 때 부의가 꿈속에서 홍연에게 압도당하는 순간은 눈여겨 볼만합니다. 홍연은 “원귀로 되살아나는 건 오직 여자들뿐이랍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 작품의 정서적 핵심이 남성적인 속성과 대비되는 여성적 기억과 원한 등에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로 인해 부의는 이 세계에서 승자가 아니라 과거의 잔재에게 끊임없이 패배하는 존재로 격하됩니다.

결국 부의는 자신의 검에 찔려 죽습니다. 누군가에 의한 타살이 아닌, 자기 자신의 손에 의한 죽음은 이전에 류 왕자가 자신의 칼에 심장을 꿰뚫린 채 죽어있던 장면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부의는 류 왕자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 역시 류 왕자가 겪었던 비극의 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소설은 비단 류 왕자와 부의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 땅이 정복자를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며 끝납니다. 비약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의미에서 “왕성은 아직 거기에 있다.”라는 문장에 도달했을 때 저는 이 문장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차이나 타운>의 결말과 조응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류 왕자의 죽음과 부의의 죽음이 그렇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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