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ht. That’s Light. 감상

대상작품: 형광등보기 (작가: 김병식,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일 전, 조회 15

‘응시’는 생각보다 어렵다.

한 명 정도 더 들어갈 간격을 두고 나와 마주 앉은 사람을 상상해 보자. 서로의 눈을 얼마나 오래 바라볼 수 있을까. 멍 때리기 대회에 참여했다고 생각해 보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우리는 몇 시간이나 쳐다볼 수 있을까. 바쁘게 움직이고, 다음 할 일이 있어야만 유의미한 시대에 무언가를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은 낭비처럼 보인다. (게다가 그것은 우리의 습관이 아니라 어색하기만 하다) 하나의 존재에 충분한 시간을 쏟는 것. 응시는 그런 일이기 때문에 애초에 하루가 모자란 현대인에게는 몹시 불편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시선이 범람하는 시절이기도 하다.

텔레비전까지 가지 않고도, 손 안의 스마트폰에 ‘볼 거리’가 너무 많다. 타인의 ‘보는’ 행위, 즉 조회수만으로도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사람들이 이미 지천에 널렸다. 하지만 이 ‘시선’은 ‘응시’가 아니다. 오히려 눈이 머무는 시간이 짧고, 머리에 강력히 남는 자가 이기는 생태다. 응시는 ‘가만히’라면 지금의 시선은 ‘빠르게’ 소비된다.

그런데 ‘가만히’로 점을 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무언가를 오랫동안 바라보면 계시를 받는다.

이 무언가는 황당하게도 ‘형광등’이다. 지금 가장 흔하고, 앞으로도 한동안 가장 흔할 바로 그 ‘형광등’이 미래를 점지한다.

김병식의 단편 ‘형광등보기’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형광등보기’ 문화에 대해 논한다. 언뜻 보기에는 소논문 같기도, 논픽션 같기도 한 이 글은 ‘형광등보기’라는 실존했는지조차 짐작 불가능한 행위에 대해 꽤 사실적으로 설명한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독자는 우선 이 천연덕스러운 이야기꾼이 서술한 기이한 역사에 깊이 빠져든다.

그에 따르면 ‘형광등보기’는 우리 나라의 근현대를 관통한, 꽤 유서가 깊은 행동 양식이다.

마치 하나의 나무가 오래 살며 세상을 내려다 보듯, 형광등도 여러 모양으로 도시에 퍼져 ‘역사’라고 할 만한 시간을 지냈다. 그 역사 속에는 불빛과 눈을 맞추며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던 여인도 있었으며, 그것이 아내의 모범이라고 여겨진 시대도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니 우연한 불빛과의 조우에 신내림을 받았다는 사람과, 그 사람을 따르는 이들이 생겼다. 여자들이 집에만 있어야 했던 시대, 필연처럼 나타난 ‘최봉래 여사’는 그렇게 형광등보기점의 창시자가 된다.

이러나 저러나 지금도 우리와 가장 가까워 느껴지지도 않는 형광등이 분명히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서술하는 것 자체가 독자에게는 새롭다. 누구도 살면서 ‘형광등’과 오래 눈을 맞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소설은 가장 익숙한 ‘형광등’을 주인공, 혹은 신으로 호명한다.

그 ‘형광등’이라는 것이 한참의 역사를 지나는 동안, ‘빛’의 해석 또한 달라졌다. 이전에는 세상을 밝히기만 했다면, 이제는 액정으로, 스크린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응시가 아니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은 이제 지루해졌다.

그렇게 형광등보기의 역사가 저물어가는 소설의 끝에서 독자는 ‘VR’이라는 독특한 ‘빛의 최신판’을 마주한다. 이 VR에 현혹된 일인칭 서술자 ‘나’는 흥미롭게도 그 안에서 환각과 같은 불가의한 일을 겪는다. 이는 형광등보기로 점을 친 ‘최봉래 여사’와 비슷하다. 자극만을 좇는 시대, 빛에 현혹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는 듯 정체불명의 서술자가 남긴 글은 온라인 구천을 떠돈다.

그러나 이 ‘빛’의 현혹은 형광등보기와 달리 매우 비현실적이고 묘하다.

서술자는 앞서 거의 논픽션에 가깝게 사실을 추구하던 태도를 철회한다. 그가 택한 플랫폼은 ‘인터넷 커뮤니티’다. 여성들을 구원하던 빛, 그것을 가만히 응시하던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는 듯, 새로운 빛은 급작스럽게 한 사람을 송두리째 매혹시킨다. 그것 또한 신의 현현일까. 빛의 형태만 바뀐 채 그 신비로운 속성이 대를 이어가는 것일까. 흥미로운 질문만을 남긴 채 이 단편은 마무리된다.

구조와 소재, 서술의 변화가 인상적인 단편이다.

‘형광등보기’라는 행위로, 배경에 가깝던 ‘빛’ 자체가 전면에 내세워진다. 능청스럽게 마지막까지 독자를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밀고 당기는 전개의 유연함이 글의 마지막에서 한 번 더 처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어쩌면 나는 또 빛에 현혹되었는지 모르겠다.

0과 1의 무수한 빛이 이 짧은 이야기를 소환해 주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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