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는 유료가 아니었는데 유료가 되었네요. 작가님의 새 중단편을 읽고 마음에 드네, 하고 봤더니 이미 관심작가로 눌러놓으신 분이라 어떻게 된 거지 하고 유료작품을 결제했다가 단박에 이전 기억이 떠올랐던, 그만큼 인상적으로 남았던 글입니다.
그림에 관한 흥미로운 괴담들은 아주 많죠. 어떤 그림들은 살아 움직이고, 어떤 그림은 사람을 해칩니다. 이 소설 속 그림은 뭘 할까요? 작중 인물의 말에 따르자면,
그림과 함께 있는 사람이 사라진다고 하는데요.
이 글에는 단 두 사람만 등장합니다. 와타나베와 나. 저는 나름 철저한 지론을 갖고 있는데요.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가 구분되지 않으면 결국 누군가가 파탄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깁니다. 작중의 이야긴데요. 두 사람이 공적인 관계로 만났지만 술자리를 같이 하고 집에 함께 가게 되면서, 둘 중 한 사람의 운명이 확실치는 않아도 불행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어떤 상황으로 끝나게 된다는 걸 보면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으시나요? 스포를 피하기 위한 아무말을 하고 있습니다만,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면 위험과 고난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은 공포소설 등장인물들에게는 꼭 숙지되어야 할 사실일 겁니다.
점잖고 친절하고 청렴한데다 몸도 좋은 훌륭한 50대 중년남성 와타나베씨의 집은 수상쩍습니다. 이렇게까지 인물의 장점에 특성을 몰아주었으니 취미와 거주지 정도는 조금 수상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한국어로 대화할지 일본어로 대화할지 스와힐리어로 대화할지를 조금 궁금해 하며 와타나베씨의 집을 거쳐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와타나베씨는 자기 집에 화자를 초대한 것이 처음이면서 자기 소장품을 본 적이 있냐고 묻습니다. 화자가 남의 집에 불쑥불쑥 들어가는 불한당이거나 그 집을 청소하러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 질문은 뭐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습니다. 드러내놓고 자랑하기에는 썩 좋은 취향의 취미가 아닌 그 그림들은 본격적으로 숨겨진 전설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소재가 됩니다.
이후는 글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갔는지 확인해보실 수 있겠습니다. 읽으며 제가 궁금했던 건
경고문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그 그림과 단 둘이 있었던 적이 몇 번이고 있었을 와타나베씨가 왜 무사했냐는 점이었는데요. 밀실에서 그림과 단 둘이 근접거리에 있어야만 위험해진단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좀 고개가 갸웃거려졌습니다. 그냥 보기만 해서 위험해진다면 와타나베씨는 그림의 첫 번째 손님이어야 했을 테니까요. 아니면 가려져 있던 그림을 들추면 그 안에서 뭔가가 확 튀어나온다는 종류의 괴담이었어도 이해가 갔을 텐데.
와타나베씨 뿐만 아니라 화자 역시도 그림을 들추어봅니다. 다행히 그는 하지 말라는 것을 함으로써 위험에 처하는 종류의 등장인물은 아니었어요. 대신 여태 와타나베씨가 그림과 함께 있어 사라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며 공포에 떠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면서도 그 그림속 조카분과 와타나베씨의 재회를 돕는 기이한 행각을 보임으로써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서의 면모를 자랑스럽게 과시합니다. 그 전까지 제법 상식적인 인물로 보였던 화자에게는 남이 죽는 것을 엿듣는 기묘한 취향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아쉽게도 대화 상대인 와타나베씨가 잠들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이야기는 알기 어렵겠습니다. 그래도 화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선택지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네요. 아마도..
제 아무말을 읽으시며 조금이라도 호기심이 동하셨다면 한 번 둘러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골드코인 뿐 아니라 마일리지로도 결제가 가능한 글이고, 아직 브릿지에 세 편의 글만 올려두셨지만 술술 읽히는 범상치 않음으로 보아 필력으로는 세 손 안에 들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