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오후 4시부터 금요일 오전 6시까지.
자동 분리수거 시스템이 공용화된 지 십수 년이 지난 것을 고려하면, 채민이 사는 해바라기 아파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 노후 시설이었다. 수도권의 주거지역 절반 이상이 큐브로 대체 되었음에도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아파트에 사는 이유는 단순했다. 월세가 싸니까.
놀이터가 있는 대단지 아파트를 허물고 동마다 경로당이 있는 큐브가 늘어날 때 건설회사 HC는 회장의 유언으로 서울의 해바라기 아파트, 대전의 장미 아파트, 대구의 은방울 아파트, 세종의 개나리 아파트 그리고 울산의 제비 아파트를 굳건히 지켜냈다. 경로당이라고는 단지마다 하나뿐이고 쓰잘머리 없이 먼지만 쌓여가는 놀이터가 있는 아파트의 가치는 나날이 하락했다. 결국 정부 주도하에 HC 건설의 아파트는 20~30대 청년을 대상의 저렴한 임대 주택이 됐다.
불 꺼진 엘레베이터 안, 채민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지금 시각은 새벽 5시 54분. 분리수거 시스템 마감 6분 전이다. 열림 버튼을 꾹 누르자 천장 위의 조명이 켜지고, 몇 분간 1층에 멈춰있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3년 전, 한국 최대 리서치 회사 중 하나인 Mendelian R&DA에 다니다 재택이 가능한 직종으로 전직한 이후 사택에서 나와 부동산을 헤매던 채민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큰 방 하나, 작은 방 하나, 부엌과 거실이 구분되어 있고 ‘베란다’의 개념이 남아있는 아파트. 리서치 회사에 다닐 때는 개폐가 불가능한 자동 공기 청정 기능이 있는 통유리 창문의 원룸 큐브에 살았다. 장점은 오로지 사택이라는 것. 오전 7시 출근에 때때로는 오후 11시까지 야근했기에 정상적인 가사 생활을 전혀 수행할 수가 없었다. 직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입소문을 타는 청소 전문 업체에 연락해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마다 깨끗해진 집에서 잠들고 깨어나 다시 점점 집을 어지르며 4시간도 못 자는 일상. 월급은 짜지 않고 짭짤했으나 삶의 질은 윤택하다고 할 수 없었다.
채민은 리서치 통계분석과에서 일했다. 설문조사의 65%는 인공지능이, 나머지 35%는 사람이 주도하는 시대에서 오로지 인간으로만 이루어진 통계분석과는 Mendelian R&DA의 핵심 부서라고도 할 수 있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현상의 흐름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그 수준이 경쟁사를 압도했다. 그만큼 압도적인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퇴사율이다. 타 부서에 비해 1년 내 퇴사율 40%, 3년 내 퇴사율 73%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채민은 그곳에서 무려 6년이나 일했다.
6년 동안 독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일명 ‘호랑이 팀장’이 되어 일했더니, 그 댓가가 우울증으로 돌아왔다. 하루아침에 생긴 병은 아니었다. 일상에 상은 없고 일뿐인 사람이라 ‘완벽’이라는 단어를 밥 먹듯이 강조하며 팀원들을 괴롭히는 동안 우울증 초기에서 말기로 증세가 악화됐다. 사내에서 지원하는 정신건강 클리닉에서의 첫 상담 이후 채민은 항우울 칩 이식을 거부하며 복용 약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사소한 실수에도 화가 났고, 팀원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분석 할당량을 채우고자 빈속에 약을 털어가며 이틀간 밤을 지새웠던 날. 하필이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채민은 비상계단에서 급히 내려오던 중 굴러떨어져 의식을 잃었다. 3시간 동안 누구도 채민을 발견하지 못했다. 오른쪽 팔과 다리에 통깁스를 한 채 연휴를 지낸 채민은 연휴가 끝나자마자 맞이한 수요일 오전 9시 10분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사유는 ‘팀장으로 팀 분위기를 해친다’라는 것이었다. 인사과에서 보낸 해고 통보 로봇이 띄워준 전자문서에는 총 9건의 사내 괴롭힘 신고 사항이 있었다.
그때 채민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이후 잠시 정신이 들었을 때 느꼈던 인기척이 꿈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 누구도 계단에서 떨어져 기절한 그녀를 보고도 병원에 연락하지 않은 것이다.
해고된 이후 이사 온 해바라기 아파트에서 채민을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가 깨진 건, 일주일 전 발생한 ‘그 사건’ 때문이다. 그로부터 6일 내내.
옆집 남자는 채민을 스토킹했다.
5시 59분.
5분 만에 분리수거를 끝내고 아파트 1층 현관으로 돌아온 채민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주변을 살폈다.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한 채민은 재빠르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채 계단 사이로 몸을 숨겼다.
12… 11… 10…
‘2층에 왔을 때 뛰쳐나가자.’ 채민은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내려오는 것을 확인하며 생각했다.
8….5…3….
엘레베이터 위 숫자가 2에 도달했을 때, 채민은 계단 사이로 숨겼던 몸을 일으켜 열린 문틈을 향해 뛰어나갔다. 채민의 발목에 부딪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던 걸 멈추고 다시 열리자,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낀 채민이 닫힘 버튼을 연신 눌렀으나, 이놈의 아파트는 전부 헌것투성이인데 엘리베이터만 새것이라 노약자 배려 차원으로 문닫힘 시간이 구식 엘리베이터보다 2배가 느렸다. 약 40초 남짓한 시간 동안 천천히 닫히는 문틈 사이로 누군가가 한쪽 팔을 뻗고 달려오는 것이 모였다. 따로 조명이 없는 현관 출입문을 지나 엘리베이터 코앞까지 다다르자, 자동 센서 조명이 켜졌다.
“저기, 잠시만요!”
어둠 속에서 달려오던 이는 채민과 마찬가지로 모자를 푹 눌러 쓴, 남성이었다. 키가 190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남성은 모자 아래의 부리부리한 눈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채민을 노려보는 듯했고, 채민은 남성의 눈을 똑바로 보며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척, 닫힘 버튼을 연타했다. 결국 엘리베이터 버튼 쪽으로 팔을 뻗으려는 남자를 두 걸음 앞두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성이 난 듯 남자가 꾹 닫혀버린 문에 주먹질을 하는 것을 보며 채민은 화풀이하듯 주저앉아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던졌다.
* * *
삑삑삑 삑삑 삑-
아직도 지문인식 도어락이 설치되지 않아 비밀번호 여섯 자리를 누르고 들어간 집 안에서는 음악이 작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익숙한 멜로디를 듣자, 한파에 얼어붙은 몸 위로 샤워기의 따뜻한 물이 덮칠 때처럼 녹진해졌다. 그럼에도 채민이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지도 못하고 화장실의 문을 닫고도 조심스레 세면대 수도꼭지를 잡아 올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해바라기 아파트 601동 1304호에 살고 있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클래식도 아니고, 가요도 아닌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채령은 이런 노래를 ‘동요’ 혹은 ‘자장가’라고 불렀으나 채민은 여전히 그 둘의 차이점을 알 수 없었다. 1분 40초 남짓한 요즘 노래들과 다르게 무려 평균 3분에서 길면 5분이나 반복되는 가사와 멜로디에 채민은 쉽게 지루함을 느꼈다. 겉옷을 옷걸이에 걸고 잠옷으로 갈아입자, 그제야 침대 위에서 코를 골골대는 작은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송하준.
3년 전, 채령이 그 누구도 모르게 입양한 양자이자, 현재 투병 중인 채령 대신 채민의 집에서 임시 보호 중인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 그리고, 옆집 남자가 채민을 스토킹하게 만든 원흉. 따지고 보면 하준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이 세상에서 하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여섯 살 난 아이라는 것이다.
여섯 살이면 어린 나이다. 하준에게 유일한 잘못이 있다면 바로 어리다는 것이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동물원에서 탈출한 사자를 보듯 어린아이를 봤다. 길거리에서 아이가 보이면 당연하다는 듯 휴대전화를 들어 촬영했고, 정의감이 넘치는 누군가는 경찰에게 신고했다. 아이 자체에 주목한다면 흔치 않은 광경이었으나, 만약 아이를 마주치게 된다면 누구나 할 법한 행동들이다. 변명이나 해석의 여지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채령이 살고 있는 서울엔 12세 미만 아동들이 모두 ‘바이오 베드’라 불리는 인큐베이터에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누워있었으니까.
* * *
채령은 출생 후속 관리본부의 수석 생명 관리사다. 직급은 수석 생명 관리사이나, 대외적으로는 양육자로 불린다.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출생 후속 관리본부는 이름 그대로 태아의 출생 이후의 일을 관리하는 국가기관이다. 출생률이 마이너스 5퍼센트로 치달으면서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이 하나둘씩 문을 닫아갈 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이 기관은 정부가 수백조 원의 예산을 들여 실시한 ‘유년 냉동 프로젝트’ 사업이 진행되는 곳으로서, 이제는 사라진 여러 기관과 부서들을 대체하는 ‘가성비 좋은’ 기관이다.
본격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미래의 모습엔 어린아이가 낄 틈이 없었다.
놀라운 결과는 아니다.
출생률이 마이너스 1.7퍼센트를 돌파했을 때, Mendelian R&DA에서 소도시의 청소년 보호자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58퍼센트가 읍, 리, 동, 면 단위의 마을 지자체에서 공동 학습을 선택, 25퍼센트가 홈스쿨링, 나머지 10퍼센트가 방문교사를 고용, 7퍼센트는 학습 거부에 해당했다. 당시는 이미 교복을 입고 중, 고등학교를 입학하는 문화가 종식된 지 오래라 주거 지역에서 상호 작용하는 또래보다는 온라인 친구의 수가 더 많고 그로 인해 10대와 20대의 은둔형 외톨이 혹은 캥거루족의 수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였다.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추가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 적령기로 일컬어지는 만 31세에서 45세 국민의 28퍼센트만이 ‘법적 혼인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43퍼센트는 ‘사실혼 관계 유지’를, 18퍼센트가 ‘결혼 거부’를 완강히 외치는 결거세대였으며, 나머지 11퍼센트는 타의적 독신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앞서 실시한 설문조사와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시행됐던 설문조사들에는 ‘노키즈존 국영화에 찬성하십니까?’라는 공통 문항이 하나 있었다. 그 결과 설문조사에 응했던 이들의 81퍼센트가 ‘그렇다’, 13퍼센트가 ‘잘 모르겠다’, 6퍼센트가 ‘반대한다’라고 답했다. 이는 당시 노키즈존의 출입 금지 평균연령 만 11세에 해당하는 어린이가 아닌 청소년 보호자와 결혼 적령기 청년 등을 바탕으로 설문을 시행한 것을 고려하면 가히 기만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자기밖에 모르는 세대’의 출현, 아니. ‘자기밖에 모르는 시대’의 시작이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시간만 흘려보냈다. 힘들게 낳은 아이에게 집착하여 괴물이 되어버리는 부모와 낙태 시기를 놓쳐 낳긴 낳았으나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 우울증에 걸린 부모에 정신과는 황금기를 맞이했고, 소아과는 점차 줄어들더니 이내 사라졌다. 복지사 출신의 개발자가 세운 신생 기업에서 보급용 가정 로봇 돌보미 1.0을 파격적으로 출시하면서 노후를 자식에게 기대는 것도 이젠 다 옛말이었다. 아이를 낳기만 하면 귀빈 취급을 해주던 시절도 있었으나, 그때는 아이를 비싼 광물처럼 생각했기에 그랬던 것이고. 낳는 것보다 낳지 않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우는 어린아이에게 사탕 하나 쥐여주기도 아깝다는 빈약한 시대 정신이 만연했다. 요식업계뿐만 아니라 문화산업, 건축업 등에도 아동 혐오가 번져 출생률을 높여도 아동이 유년기를 제대로 보낼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결국 노키즈존 국영화와 관련된 법안이 통과된 해를 기점으로 출생률은 수직으로 하락했다. 그렇게 출생률 마이너스 5퍼센트를 앞두고 있던 한국 사회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는 사건이 생긴다.
일명 ‘소연이 사건’.
냉동 수면을 연구해 오던 김오연 박사가 자택 출산 후 딸을 자신이 발명한 바이오 프로징 베드에 넣고 링거를 통해 유기물질을 주입해 6년간 키운 것을 관찰 형식의 논문으로 발표해 학계에 불을 질렀다. 누군가는 그녀가 육아가 아닌 사육을 한 것이라며 손가락질했고, 또 누군가는 인큐베이터와 다를 것이 없다며 김 박사의 발명품인 바이오 프로징 베드를 옹호했다. 당시는 대부분의 소아과와 산부인과가 문을 닫고 여성의학과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통일시켜 새로 개원하는 때였기에 인큐베이터라는 개념을 모르는 이들이 많아 온라인상에서의 여론은 김박사를 비난하는 물길이 더 거셌다. 그런 여론을 한 번에 뒤집어엎어 버린 것은 김박사의 참회도, 그녀의 연구를 뒤바꿀 또 다른 혁신도 아닌 정부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유년 냉동프로젝트다.
정부는 김오연 박사를 고용하여 유년기를 얼려버리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