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정제되는 한 걸음을 기대하며 <모기사냥(살인자와 형사의 이야기)> 공모(감상)

대상작품: 모기 사냥(살인자와 형사의 이야기) (작가: 오만년묵은청개굴, 작품정보)
리뷰어: 하얀소나기, 5시간전, 조회 3

 

‘이 모기가 어쩌면 범인의 피도 빨아먹었을 가능성이 있다.’

– (15-29P)

 

 

 

현대 사회에는 다양한 매체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영상, 그림, 글, 심지어 수화와 같은 복잡한 손짓마저 그 형태에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매체의 표면적인 생김새는 다를지라도, 그들이 갖고 있는 목적성은 분명합니다.

 

바로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있죠.

 

정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질감이 다소 건조한 감이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정보’를 담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다음과 같은 매체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소설’이라는 매체에 담기는 ‘정보’는 어떻게 정의될까요? 아주 쉬운 답입니다. 소설책에 담기는 정보란 ‘이야기’라는 말로 정의되겠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가공된 인물들과 가공된 사건들에 담겨 ‘이야기’라는 형태로 구체화됩니다. 이 ‘이야기’를 타인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전하는 것이, 바로 ‘소설’이라는 매체의 역할이죠.

 

서두가 지루했습니다. 이런 매체와 정보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이번에 읽은 <모기사냥(살인자와 형사의 이야기)> – 이하 <모기사냥> – 이 이런 소설적 정보에 어색한 모습이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단순히 어색하다는 말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구조적 문제로 직결될지도 모르겠죠. 보통 제가 작성하는 감평문에는 작품을 세부적으로 나누며 분석하는 것을 즐겼습니다만, 이번 감평에서는 이 소설적으로 가공되지 않은 ‘정보’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하나만을 살펴볼까 합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문해력이 부족한 독자의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하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1. 가공되지 않고 선별되지 않은 정보

 

흔히 작품을 쓰기 위해 조사를 감수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을 거치곤 합니다. 관련 소재를 다룬 논문이나 영상을 찾아보거나, 관련 인물들을 찾아가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있겠죠. 참고로 저는 소설을 쓰기 위해 아동학대에 관한 사례를 수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런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은 작품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단순히 상상과 추측으로 구현할 수 없는 영역을 전문적인 조사를 통해 보충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만약 논문을 쓰겠다면, 이런 정보들을 주석에 담아 문자 그대로 싣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 혹은 영화처럼 ‘이야기’를 바탕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는, 날 것의 정보를 문자 그대로 담을 수 없습니다. 그 매체 맞게 가공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이 <모기사냥>에는 많은 정보들이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님이 눈으로 보고 들었을 법한 자세한 전문지식들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죠. 문제점은 이 많은 정보들이 ‘소설’로서 가공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생물, 장소, 사회 전반에 대한 많은 지식들을 소개하지만 오로지 소개에 그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특히 ‘모기’와 관련된 교수의 강의는 대화문에 담겨 그 틀은 잡고 있지만, 내용만 떼어놓고 보면 위키에서 글을 옮겨왔다고 느낄 정도로 건조하게 느껴졌습니다. 만일 이 글이 논문이었다면 정보전달이라는 목적 하나만큼은 그 역할을 다했겠으나, 소설의 이야기로서 보자면 그 방식이 무척 우직한 셈입니다.

 

사실 이것을 제외하더라도, 작중에 쉴 틈 없이 나오는 정보들이 작중의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불임센터의 치료방법이나, 세무서의 인상 등 사실상 소설 전반에 큰 영향이 없는 정보들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인물과 사건에 집중해야하는 독자들과 조금씩 거리를 두는 듯한 인상마저 들었습니다.

 

정보는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의도와 가깝게 붙어 있습니다. 무엇을 보여줄지, 왜 보여줄지,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하는 것은 물론, 이것이 인물이 얽히는 이야기라는 데에 집중하자면 더 좋은 방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2. 작품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

 

사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굉장히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곧 소설적 인칭의 문제에 다다릅니다. 작품의 화자 ‘나(me)’로 지칭하는 것을 1인칭이라고 부른다면, 이 <모기사냥>은 명확히 화자를 두지 않는 ‘3인칭 시점’을 채용하고 있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서술자의 목소리가 강한 편입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3인칭 화자를 둔 채 더 먼 곳에서 작품 전반을 관찰하는 또 다른 인물을 제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인물이 느끼는 감정과,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 더 나아가 그 인물이 도착하는 장소와 다루는 사물 등 각종 정보까지 설명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자면, 이 작품은 드라마의 ‘나래이션’ 같은 인물을 화자로 채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작품 바깥에서 목소리를 들려주며, 상황과 정보를 전달하는 인물이 있다는 뜻이죠. 문제는 그 나래이션격 인물이 ‘작가 본인’과 지나치게 밀접해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니, 작가 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즉. 이 작품은 소설로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가 내용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에 가깝죠. 때문에 모든 정보들이 지나치게 설명적이며, 감정은 지나치게 사변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독자들이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 셈입니다.

 

저렴하게 비유를 하자면……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집에서 쉬고 있던 친구 아빠가 자기 소장품들을 꺼내오면서 자랑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작품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나쁜 소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목소리가 지나치게 큰 편입니다. 작품 전반에는 작가 본인의 냉소적이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깔려 있고, 그 목소리가 모든 서술을 통제합니다. 때문에 작중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목소리가 거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 서술을 제외하더라도,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말투가 서술과 거의 흡사하다보니, 마치 작중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가 들려주는 시선이 너무 주관적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모든 사건과 행동에 작가 주관의 해석을 곁들이다보니, ‘불임센터에 모여 있는 여자들의 표정이 웹툰 진격의 거인처럼 비장해보였다’ 또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듯이 활활 타올랐다’ 같은 상황에 맞지 않은 묘사와 불쑥불쑥 맞닥뜨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게 약간 아저씨들 후까시(?) 잡는다고 표현하는 그런 묘사인데, 의외로 감각적이고 인상적인 묘사가 많았던 터라 이런 부분이 특히 아쉽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작품을 끌어가는 서술이 작가 주관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앞서 말한 ‘소설적으로 가공되지 않은 정보’와 그 결을 같이 합니다. 분명 이 작품은 작가님의 커다란 노력이 담겨 있고, 경험으로 습득할 수밖에 없는 지식들이 담겨 있습니다. 다만 그것들이 작가님 개인의 목소리에 담겨서 나온다면,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 칭하기에는 다소 거리를 두게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3. ‘모기’라는 소재의 개연성

 

이건 개인적인 감상에 불과하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일단 이 소설의 주요소재는 ‘모기’입니다. 작중에서도 교수의 입을 빌려 모기의 생태에 관해 긴 설명을 곁들일 정도로(사실 그 강의내용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소재를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다만 그 ‘모기’ 자체가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된다고 보자니, 모기 자체가 소설적 소재로서 역할을 하는 느낌을 아니었습니다. 결국 형사들이 모기를 잡는 이유도,

 

범인이 너무 똑똑하다. 단서가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여름이라서 모기는 더럽게 많네.

그럼 모기가 범인을 물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모기들을 모조리 잡아서 범인의 DNA를 뽑아보자!

 

뭐, 얼추 말은 되는 거 같은데……. 이게 언뜻 봐도 생산성이 부족해 보이는 논리라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도 작중에서 모기를 조사하는 방식은 ‘어디 땅이라도 파면 뼛조각이라도 나오지 않겠어?’라는 식에 가까워서 긴장감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형사들이 모기를 잡으러 다니는 장면은 블랙코미디 같은 쓴웃음을 유발하는 재미는 있었지만, 그 방식에 대한 현실적인 개연성 문제를 생각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없을 법한 일은 아니니까.’ 그런 전제를 달더라도 ‘반드시 벌어져야만 하는’ 소설적 사건의 기본 요건에는 어딘지 삐걱거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만약 ‘모기’와 범인의 살인방식(피를 뽑아간다거나)에서 어떤 연관성을 둘 수 있다면 소재 자체가 힘을 받을 수 있겠으나, 이 작품은 모기가 하나의 ‘도구’로 등장할 뿐이어서 큰 인상을 주지 못 합니다. 물리적으로 언급은 많이 되는 만큼 ‘모기’라는 소재가 느닷없지는 않으나, 소설의 서사를 끌어나갈 중심소재로 역할하기에는 그 힘이 부족한 편입니다.

 

 


 

 

이런저런 단점들을 짚었지만, 사실 이 <모기사냥>은 장점이 많은 작품입니다. 문체가 깔끔하여 가독성이 높고, 일부 대사는 대본에 가까울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간혹 감각적인 묘사로 방점을 찍는 구간까지 더하면, 소설로서는 그 정도가 아쉽지만 ‘글’ 자체로서는 그 매력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작품을 읽으면서 ‘혹시 작가님이 시를 쓰던 분이 아닐까?’라는 추측도 해봤습니다. 기본적으로 시는 서사를 담지 않습니다. 오로지 장면 하나와 순간적인 감정을 담는 것으로 의도를 표현하죠. 이 작품이 제법 인상적인 문장력과, 서사는 엉성해도 감각적인 장면들을 보여준다는 걸 생각하면 꽤나 그럴듯한 추측이라고 여겼습니다.

 

아님 말고.

 

요즘 날이 따뜻해지는 게 무서울 때가 있었어요. 날이 풀리면 찾아오는 세 가지 역병이 있거든요.

 

중국 발 미세먼지

모기

공원에서 포교하는 여호와의 증인

 

난 이 중에서 포교하는 아저씨들이 가장 무서워요.

 

저번에도 그랬어요. 야식 먹고 돌아오는데 윤석열이랑 똑같이 생긴 아저씨가 대뜸 팔을 붙잡더니

 

“학생! 우리 뭔가 인연이 느껴지는데 잠깐 얘기 좀 해볼까?” 그러더라고요 ㄷㄷ

 

아무리 봐도 인연이 있는 얼굴은 아니라서 그런 생각을 했죠

 

“차라리 모기가 낮네. 모기는 때려잡아도 감옥에 안 가잖아.”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집필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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