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선, 그 궁극의 목적은 과연 뭐였을까 감상

대상작품: 자애의 빛 (작가: 이건해, 작품정보)
리뷰어: 하예일, 13시간전, 조회 1

이야기는 평범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현대 의학으론 고칠 수 없는 병에 대해 치료법이나 약물이 개발되길 염원하며 누나를 10여 년간 냉동 수면 시킨 동생들. 시간이 흘러 수술을 받고 누나는 무사히 깨어나 새 삶을 얻었다.

달라진 건 동생들이 누나보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 그리고 누나의 성격.

 

이쯤에서 전에 보았던 드라마가 불현듯 떠올랐다.

여자 주인공이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났는데 시간이 강산이 변할 정도로 흘렀다더라. 좌충우돌하던 주인공은 그래도 변한 환경에 적응하며 나름 행복을 찾았다더라는 식의 블라블라블라.

여기서 이 단편은 방향을 조금 달리한다.

아니, 시작부터 결이 달랐나.

누나는 냉동 수면으로 당시 그 나이 그대로고 주변만 달라졌으니.

 

어쨌든 10여 년의 공백을 채울만한 확실한 경력도 백도 없던 누나는 봉사활동에 전념하며 나름의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데. 동생 중 하나인 나는 이런 상황을 미심쩍어한다. 원래 그렇지 않던 누나가 착해져도 너무 착해졌다는 것. 사람이 죽을 뻔하면 성격이 확 변한다는데 그런 건가 싶기도 하지만 누나를 둘러싼, 심지어 형까지도 누나가 퍼뜨리는 선의에 물들어 전과 다른 행동과 생각을 한다.

나는 누나의 정체를 의심하며 유전자 분석을 맡기게 되고, 거기서 뜻밖의 결과가 나오면서 이야기는 경악할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루에도 몇 건씩 흉흉한 뉴스가 흘러넘치는 요즘. 작은 선의를 보인 이들의 훈훈한 소식을 간간이 듣게 되면 돌처럼 굳어가던 맘이 봄볕을 쐰 눈처럼 사르르 녹아버린다.

이런 선함이 어떻게 두려움을 넘어 공포가 될 수 있을까.

 

사실 글은 결말에 이를 때까지 밝음과 선의가 끊임없이 퍼지고 있고, 그 중심에 누나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행간에 흘러넘치는 찝찝함과 거기서 느껴지는 두려움이란! 마치 스멀스멀 엄습해 오는 흐릿한 그림자 같아 마음이 오그라든다. 어둠이 아니라 빛이라 주장하는 미지의 위험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고 붙들린 채 알면서도 맞닥뜨려야만 하는 기분이다.

어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고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선이라 부르는 것들은 진짜 선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릴 적엔 단순했기에 상대적으로 분명했던 가치 판단이 어른이 될수록 모호해져 가는 듯하다.

‘나’의 선택은 과연 최선이었을까. 결말을 읽은 지금도 궁금해진다.

누나의 선은 널리 널리 퍼져 ‘나’를 끝까지 기다리게 될까. 누나의 선, 그 궁극의 목적은 과연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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