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는 이렇게 발치에 죽어있는 시체 하나로… 마침내 행복해진 걸까?
– <본문 30회차 P39>
목차
1. 추리소설의 『시리즈화』에 대한 단상…….
2. 낭만선생 시리즈? 『후속작으로 보여주는 변주에 대해….』
3.『연이』 인물 분석
4.『호야』 결말 분석
- 추리소설의 『시리즈화』에 대한 단상…….
느닷없는 서두입니다만, ‘추리소설’은 ‘장편 시리즈’로 변주하기 좋은 장르라는 것이 자명합니다. 그것은 ‘탐정’이라는 캐릭터의 속성에서 기인합니다. 대부분의 탐정 캐릭터가 역동적이라는 오해가 있지만, 사실 무척 정적인 삶을 보여주는 그들입니다. 그들이 사건을 찾아 움직이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본인의 거처를 두고 사건을 기다리는 인상에 가깝습니다. 지금도 많은 추리소설의 팬들은 어두운 사정을 곱씹으며 베이커가 221번지로 찾아오는 여느 의뢰인들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하나의 ‘사건’을 소설의 ‘소재’로 가정할 때, 탐정은 온갖 소재들을 끌어 모으고 헤쳐 놓을 수 있는 힘을 근반으로 움직인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그야말로 소재가 끊이지 않는 샘물입니다.
즉, 추리소설은 후속 이야기에 대한 염려가 적은 편입니다. 그들의 환경이 크게 변하는 경우가 드물고, 캐릭터가 역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새로운 의뢰인을 등장시키고 그들로부터 사건을 수주 받는다는 무척 편리한 전개로 시발점을 끊을 수 있기 때문이죠. 세월에 따라 추리소설의 양상이 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체적으로 이 탐정과 사건의 관계라는 테두리는 유지되는 편입니다.
서두가 길고 지루했습니다. 이처럼 추리소설이 후속작을 만드는 방식을 장황하게 덧붙인 것은, 이번에 읽은 작품이 이런 후속의 틀에서 조금 결이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Piggy’ 작가님의 <낭만 선생 시리즈>는 외모가 기이한 마법사회의 천재교수 ‘낭만 선생’이라는 인물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은 추리소설 시리즈입니다. 현재 브릿G에는 세 편의 작품이 등록되어 있고, 이번에 읽은 <낭만 선생이 말하길,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은 첫 번째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후속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간 서순에 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낭만 선생이 말하길, 그녀가 잃은 것>의 시퀄로 간주하는 것에 이견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번 글에서는 작품에 대한 기술적인 비판은 넘겨둘 생각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번 작품이 후속을 표방한 만큼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새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에서 보이는 장단점들은 전작과 대동소이하기 때문이죠. 오히려 전작에서 보완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던 부분이 거의 무시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즉, 제가 전작에서 감평으로 냈던 의견들이, 작품 구성에서 드러난 실수가 아니라 작가 본인이 의도했던 컨셉이라는 뜻이겠죠. 그것을 옳다 아니다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작가가 그것을 답이라고 내놓은 이상, 저는 그것을 답이라 간주하고 평가할 뿐입니다. 기껏해야 호불호가 갈렸다는 막연한 답으로 얼버무리는 것이 고작이네요.
그러니까 이번 글에서는 추리소설의 후속으로서 작가가 내놓은 변주의 방향을 살펴보고, 작중에 전면으로 내세워진 ‘연이’와 ‘호야’의 인물상에 대한 분석. 마지막으로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는 결말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으로 글을 채워볼까 합니다.
작중에 설명되지 않는 논평은 전작인 <낭만 선생이 말하길, 그녀가 잃은 것>의 리뷰에 담아놨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전편 리뷰 –
범인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낭만 선생이 말하길, 그녀가 잃은 것>
https://britg.kr/novel-review/210055/
2. 낭만선생 시리즈? 『후속작으로 보여주는 변주에 대해….』
개인적으로 이번에 읽은 <낭만 선생이 말하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굉장히 매력적인 후속작으로 평가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쉬운 후속작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결의 변화를 넘어, 구조적인 변화를 과감하게 꾀했기 때문이죠. 그 변화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2-1. 탐정 역할의 축소
앞서 ‘추리소설’이 후속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탐정이 새로운 의뢰인을 만나고 사건을 받는 과정으로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사건,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며, 작가가 준비한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낭만 선생’과 ‘설화’와 같은 탐정 역할의 인물들의 소개는 과감히 생략하며, 대신 누군가를 살해하며 여운에 잠겨 있는 범인의 상황을 제시하며 긴장감 있고 속도감 있는 도입부를 제시하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었습니다. 1인칭으로 진행되는 범인의 시점은, 이 작품이 무게를 싣고 있는 부분이 어딘가를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눈 여겨 본 것은 이 ‘탐정’ 역할의 축소가 무척 의도적이라는 것에 있었습니다. 전작에서 해결사 역할을 맡았던 ‘낭만 선생’은 자리를 비웠다는 편리한 설정으로 극중에서 퇴장시켰으며, 전작에서 조수 및 제자에 가깝던 ‘설화’가 사건현장을 발견하며 의견을 제시하는 시작을 보여줬습니다.
낯선 전개는 아닙니다. 당장 제가 사랑해마지 않는 ‘셜록홈즈 시리즈’에서도 사이드에 머무르던 존 왓슨이 <은퇴한 물감 제조업자>를 비롯한 에피소드에서 직접 현장을 탐사하는 역할을 맡는 전개를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사건>과 같은 에피소드는 아예 왓슨이 현장에 남겨진 흔적을 따라가며 홈즈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즉, 추리소설에서 ‘사이드’ 역할에 놓인 캐릭터는 단순히 조수가 아닌, 또 다른 해결과정을 위한 탐정 역할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설화’를 왓슨에 대칭할 수 있는 사이드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녀의 역할은 말 그대로 ‘눈’에 가깝습니다. 범죄현장과 시체를 보고 정황을 짜맞추는 솜씨는 추리소설의 그것과 닮아 있으나, 그녀가 어디까지나 ‘제자’에 가깝다는 걸 의식하는 탓인지 모든 것은 표면적인 정황과 판단에 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범인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시체를 버릴 수 없다’는 판단을 제시하며 ‘범인이 투명인간이라는 뜻인가?’라는 기이한 의문에 도달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는 것도, 바로 이 ‘설화’라는 인물의 추리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그것이 일리가 있는 판단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중을 돌아보면 이 과정이 ‘설화’라는 인물에 의해 한 번 복잡한 매듭이 묶어졌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설화’ 그 자체도 비중이 큰 편은 아닙니다. 작중에서 비중은 사건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제3자에 가깝습니다. 해당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인물과는 스쳐가는 관계에 가까우며, 그녀가 어떤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사건을 좌지우지 하지 않습니다. 작중에서 ‘탐정’ 역할을 배제하고, 용의자 일행의 사정에 주목하고자하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은 결국 이 ‘탐정’ 역할의 배제에 대한 의도를 보여주면서, 보란 듯이 등장해주는 ‘낭만 선생’의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설화가 추리로 만든 매듭을 간단하게 풀어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 추리 과정은, 전작에서 보여줬던 ‘고정된 관념’에서 오는 오해를 기반으로 하며, 이 작품 시리즈가 갖고 있는 색채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작품의 주인공이라는 그녀가 범인에게 위기의식을 주게 되는 도구 역할로 퇴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설화와 학생들에게 접점을 만들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멀찍이서 관전하는 것에서 보이는 것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 작품이 후속을 표방하는 만큼, 설화에 대한 인물탐구가 더 깊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탐정의 비중이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도 사건을 해결하는 너무 거대한 임무를 맡겨놨고, 더 나아가 그 탐정 역할의 인물들은 전작을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보도 부족합니다. 설화와 낭만의 존재가 이 소설에서 모난 돌부리에 가깝게 느껴지는 감각은, 이 애매한 위치에서 비롯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2-2. 범인의 사정에 집중하는 구성
이 작품의 대부분은 ‘연이’를 화자로 한 시점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연이는 한창 때의 고등학생이고, 그녀의 시선에 늘 밟히는 것은 ‘호야’라는 동급생의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작중에서 중심사건으로 다뤄지는 ‘투명인간의 토막살인 사건’과 언뜻 연관성이 적어보입니다. 하지만 소설이 진행될수록 연이와 호야라는 두 여학생이 이 사건에 무척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걸 넘어, 이 사건의 범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며 작은 충격을 선사합니다. 즉, 이 작품은 ‘탐정’의 추리가 아닌 ‘범인’의 사정을 관찰하는 이야기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범인의 사정을 조명하는 과정은 익히 추리소설에서 등장한 방식입니다. 당장 셜록홈즈의 첫 장편 ‘주홍색 연구’부터 작품의 절반가량을 할애하여 한 남자가 범죄를 저지르게 된 배경을 독백체로 담아놓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같은 작품에서는 오히려 범인의 시점과 사정에 더 집중하며 반전을 연출하는 구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 범인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는 여학생의 시점을 제시하면서도, 그 멀고 가까움이 무척 안정적으로 연출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쩌면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 과정을 흘러가는 이야기 혹은 소문과 같은 방식으로 얼버무리는가하면, 직접적인 육안으로 드러날 수 있는 장면들을 과감하게 가려가며 의혹을 부풀리는 데에 탁월한 솜씨를 보입니다.
이런 구성은 독자에게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가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연이’라는 인물의 시점에서 비롯됩니다. 연이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목소리를 품고 있는 아이로 묘사되죠. 그 많은 목소리들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호야’에게 향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 목소리는 가끔은 감정적이고, 가끔은 동정적으로 변하며, 때로는 이기적으로 변합니다. 좋은 말로 하면 작가가 인물을 구성하는 깊이가 뛰어나다는 것이며, 나쁜 말로 하면 너무 많은 것들을 인물 하나에 의해 관찰하고 움직이려고 한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이런 시도는 추리소설보다는 성장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 때문일까요? 개인적으로 그 사정으로 엿보이는 색채가 지나치게 울적하여, 그 감성을 버티기 힘들다고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작가 본인도 그런 감성을 강조하려는 듯, 인물의 반응을 과장되게 묘사하는 것이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앞서 말했던 ‘호불호가 갈리겠다’는 편리한 말을 이럴 때에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3.『연이』 인물 분석
작중에서 ‘나’라며 1인칭을 사용하는 인물을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에서 ‘연이’야말로 주인공에 걸맞은 역할을 맡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작중에서 등장하는 연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사춘기 여고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다소 위태하고 냉소적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학교라는 사회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친구들의 시선에 민감하며,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상황을 회피하는 어른스러운(?) 면모도 엿보입니다. 조금 예민한 것을 제외하면, 다소 무난한 여고생 상입니다.
하지만 이 연이라는 인물의 시선에 ‘호야’라는 인물이 담기는 것으로 감정이 복잡하게 흔들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야’는 같은 학급의 동급생입니다.
(P11). 세상은 토막 살인이니 어쩌니 흉흉하고 소란스러운 모양이었지만…(중간생략)…나는 호야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지 못 한 지도 벌써 일주일째다.
초반 2회차에서 드러내는 이 서술은, 연이가 직접적으로 호야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매일 함께 얼굴이 부딪히는 동급생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자주 나누지 못 할 정도로 관계가 미묘하다는 것도 알 수 있죠. 언뜻 보면, 연이가 호야를 무척 좋아한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의외로 소설은 이 가설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입니다. 오히려 작가는 연이를 호야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미묘한 거리감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P10). 눈매가 날카로워서인지 조금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표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편이라 크게 두드러지는 건 아니었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그냥 평범하게 예쁘장한 편…(이하생략)
연이의 시선에 담긴 호야의 묘사는 다소 건조한 편입니다. ‘예쁘다’고 단정하기는 했지만, 어딘지 표면적인 미모가 봐줄 만 하다는 어투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관계를 의식하고 있는 동급생 친구에 대한 묘사가 아니었다면, 흔히 길거리에 마주칠 법한 여느 여고생에 갖다 붙일 묘사라도 그렇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단순히 동성으로서 성적호감이 배제된 묘사가 아니라, 표면적으로 호야는 누구에게도 호감을 줄 수 없다는 반증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P5) … 호야는 아저씨들한테 몸이나 팔고 다니는 문란한 년이니까 친구인 우리들이 나서서 정신교육을 시켜줘야 한다는 명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호야가 자기 지갑에서 돈을 훔치려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옆 반의 아무개한테서 들었던 것 같다는 이유가 한동안 유효했던 시기도…(이하생략)
그녀가 관찰하는 호야의 학급생활도 어둡고 축축한 편입니다. 그녀는 여러 소문으로 왕따를 당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연이가 호야를 감싸거나 다가가는 묘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관자나 다름없을 정도로 사정을 꿰고 있죠.
(P21). 희서가 호야를 괴롭히는 데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하생략)
(P22). 나는 저번 주에 희서와 노래방에도 갔었고…(중간생략)…학기 초부터 줄곧 어울려 다녔던 사이니까 본래부터 심성이 착한 애가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P23). 희서는 조금만 수틀리면 적당히 눈에 띄는 한 명을 골라서 트집을 잡아 몰아세우다가 일방적으로 따돌리곤 했다.
연이는 호야를 괴롭히는 주동자 ‘희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인품이며 생활패턴까지 두루두루 꿰고 있는 것을 보면, 연이야말로 그녀와 함께 호야를 왕따 시키는 주동자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죠. 하지만 희서의 시선에서 벗어난 연이는, 호야에게 다가갈 때만큼은 무척 조심스러워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다정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P32). 딱히 할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다가 굳이 대답을 하자면 널 괴롭히는 애들이 좀 싫어져서…(이하생략)
(P41). 호야가 슬쩍 내밀어 보인 손수건을 확인해보니 닦아낸 면적만큼 거뭇거뭇하게 변색돼 있었다. 멍하게 있다가 손수건을 건네줬던 건 순전히 내 책임이었고, 그렇게 비싼 적도 아니었지만, 솔직히 조금 아까웠다.
물론 목소리로 표현되는 대사는 아니지만, 속으로 삼키고 있는 대사만으로도 호야에게 베푸는 친절이 다소 어긋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에 대한 호감을 표현할 때는 그 태도가 무척 누그러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연이는 아닙니다. 호야에게 친절을 베푸는 모든 순간에는 자기 자신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호야에 대한 동정이나 호감이 아닌 희서와 그 친구들에 대한 반감이며, 기껏 내밀어준 손수건에 남긴 상대의 흔적에 대해 ‘아깝다’는 평가를 내리기까지 합니다. 누군가 나의 소유물을 침범했다는 흔적에 대해 보이는 반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설의 평가 기준은 이 ‘연이’가 ‘호야’에게 다가가는 행동에 대한 해석에 좌지우지됩니다. 그녀의 태도는 무척 조심스럽고, 또 감정적이며, 좁고 일방적인 경향도 보입니다. 하지만 그 방향이 무척 명확합니다. 이것은 누군가에 대한 ‘사랑’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 대한 ‘동정’으로 해석될 소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정’의 영역은 연이 본인의 일방적인 감정으로 다소 오염되어 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실제로도 연이는 호야에게 주었던 자신의 호의에 대해 반성하는 듯한 진술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P5). 호야는 가끔 그랬다. 내가 부끄러워하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할 때가 있었다. 일부러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하기도…(중간생략)… 호야가 나를 대할 때만큼은 평범한 여자애처럼 보이는 게 싫지 않았다. 내가 이 애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렜다.
이 반성 어린 서술에서도, 어디까지나 그 중심에는 연이 본인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소에 울적하게 젖어 있던 호야가 자신에게 웃어주는 것에 호감을 느낀 것이 아닌, 호야가 자신에게밖에 웃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두고 만족감을 느끼는 것에 가깝게 읽히기도 합니다.
(P21). 내가 호야를 전적으로 믿었다면, 나는 호야가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을 때, 어쩌면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해봤어야 옳다. 나는 호야를 믿었던 것이 아니라, 호야를 신뢰하는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 있던 것이다. …(중간생략)… 나는 악의적인 소문으로 호야를 깎아내리고 스스로 우월함을 확인하려는 족속들과는 다르다고 여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소 감정적이며 설명적인 서술이지만, 오히려 작가가 설정한 ‘연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준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연이가 호야에게 접근하게 된 이유를, 호야를 해하는 이들에 대한 반감(이 글에서는 ‘희서’라고 가정하고 있습니다.)이 오히려 동정심을 채우며 만족을 채워주는 달콤한 술처럼 작용하게 된 셈입니다. 즉, 연이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호야를 ‘도구로 이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이 흐름은 마치 전작에서 등장한 ‘재서’를 떠올리게 합니다. 작중의 재서는 피해자였던 ‘혜명’에게 자신이 바라는 이상을 뒤집어씌우며 만족을 느꼈던 인물로 등장합니다. 막상 그 이상이 벗겨졌을 때, 혜명을 본모습으로 바라보기를 거부하며 고약한 망상에 빠져버리는 것으로 상황을 회피하기까지 하죠.
하지만 이번 작품의 ‘연이’는 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바라던 호야가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에, 오히려 눈을 부릅뜨며 그녀를 바라보기에 이릅니다.
(P48). “나는 너를 사랑해. 호야 너를 사랑해. 이런 건 끝까지 말하지 않고 속으로만 삭혀두는 게 서로를 위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아, 아는데…(이하생략)”
마지막 순간에 연이는 ‘사랑한다’는 고백을 건네며,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호야의 손을 붙잡습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던 편견과 어긋난 동정을 갖다버린 채, 본인의 진심에 솔직해졌다는, 잘 만든 성장일기 같은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저는 이 고백의 중심에 다시 ‘연이’라는 인물을 끼워 넣는 것으로 또 다른 해석을 붙여봅니다. 앞서 연이는 호야를 호감보다는 호의로 대하며, 자신의 이상을 채워가는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그것이 연이 본인을 ‘희서’와 같은 무리와 구별시키는 가장 커다란 힘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 호야는 떠납니다. 만일 호야가 곁에서 사라진다면, 연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녀는 작은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호야가 있기에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이상과 뒤로한 채, 다시 희서와 같은 무리와 어울리고 다니던 그 시절의 여고생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죠.
연이가 두려워했던 것은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이었을까요? 아니면 본인이 바랐던 이상적인 제 자신과의 이별이었을까요? 만일 후자였다면, 마지막 ‘사랑한다’는 고백 또한 호야를 붙잡기 위한 가장 처절한 거짓말로 비춰질지도 모릅니다. ‘호야를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말조차 자기 자신에 대한 최면 혹은 세뇌로 해석될 가능성도 있겠죠. 만일 작가님 개인의 해석이 있으시면, 이 해석에 대해 작은 코멘트라도 부탁드립니다.
4.『호야』 결말 분석
앞선 이야기에서 ‘연이’를 ‘호야’라는 친구를 빌려 이상적인 제 모습을 만들어가는 인물로 해석했습니다. 다만 ‘호야’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은 작품에 막바지에 다다라서 나오는 사정에 기반 합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연이의 시선에서 왜곡 혹은 오염된 호야를 받아들이게 되고, 독자 입장에서는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를 판단할 여지가 적은 편입니다.
사실 이 연이의 시선으로 왜곡되는 과정은, 무척 의도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포인트이기도 했죠. 결말에 이르러서, 작가는 연이의 시선으로 가려놓았던 ‘호야’라는 인물은 전면적으로 드러냅니다. 그것은 마치 작은 폭발과도 같습니다.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숨겨두었던 인물 하나의 민낯을 댐을 무너뜨리듯 보여주는 셈이죠.
(P8). “…… 애초에 나한테 섹스 좀 하면서 빚도 갚고 용돈도 벌면 서로서로 좋지 않겠냐는 걸 내가 싫다고 했으면 5년 전에 이미 간이고 쓸개고 죄다 뜯겨나갔을 거 아니야. 그런 주제에 일자리 구할 생각은 못 하고 맨날 술이나 퍼마시면서 엄마에게 패악이나 부리는 병신이었으니까, 이 새끼는 이렇게 뒤지는 편이 나한테 도움이 되겠구나…(이하생략)”
호야가 본격적으로 자신이 작중에서 화제가 되는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밝히며 시작되는 고백은 다소 충격적이고 지저분하며, 지금까지 연이의 시점에 갇혀 있던 ‘인형’ 같은 호야의 모습을 철저히 깨부수는 데에 집중합니다.
작중에서 토막살인 사건의 유기범을 쫓으며, 한 집안의 여고생이 성매매를 강요받고 살인까지 저질렀을 거라는 끔찍한 추측에 다다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범인의 사정을, 지금까지 연이의 시점에서 지켜봤던 ‘호야’에게 겹치는 과정은 독자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단순히 두 인물의 사정에 접점을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그간 덮여 있던 호야의 신비로운, 혹은 상처 입은 동물을 돌봐주는 감각의 애처로운 이미지를 냉소적으로 깨부수는 데에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의도는 연이의 대사 한 줄로 명확해집니다.
(P40). 내게는 욕하고 화내면서 정신없이 울분을 토하던 호야가 처음으로 예쁘장한 조형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 구절은 아주 중요한 지점을 되짚어줍니다. 단순히 호야의 표면적인 외모가 동성에게조차 ‘예쁘다’라고 느낄 정도로 뛰어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표면적인 외모에 대한 평가조차 연이 본인의 시선에 오염되었지만, 비로소 그 시선을 벗어나 호야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민낯을 확인하는 순간은, 그녀가 가장 감정적으로 격해졌던 마지막 순간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게 본모습으로 돌아온 호야는 또 다른 살인으로 제 이야기의 결말을 맺습니다. 그 마지막 희생자는 자신을 괴롭히던 주동자 ‘희서’였죠.
(P32). 나를 사랑한다면서 울던 애한테 또 보자면서 거짓말까지 했다. 아마도 이제 두 번 다시 연이와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오로지 이 순간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의 불행을 제거하기 위해서 하나의 행복을 포기해버렸다.
희서를 죽인 뒤, 호야가 곱씹는 것이 연이에 대한 미련이라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었습니다. 그간 연이가 베풀었던 호의에 호야 또한 감회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면서도, 혹여 호야 본인조차 연이라는 동급생을 표면적인 모습과 목소리로 받아들였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죠.
하지만 그녀에게 연이라는 인물이 크게 자리 잡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의 계기는 사소하다고 느낄 정도로 멀어진 참입니다. 호야는 마지막 고백 상대로 연이를 선택했고, 그녀라면 자신의 가장 인간적인 민낯을 받아들여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연이가 호야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떠나서, 적어도 호야는 연이를 그런 인물로 믿었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연이를 끝내 떠나보내고, 작중에서 본인의 또 다른 고통이었던 희서를 제거하는 것으로 후회를 다십니다. 그녀의 마지막 목표가 ‘희서’였다는 것도 많은 추측을 떠올리게 합니다. 왜 하필 희서였을까요? 표면적으로는 그간 호야를 괴롭혔던 주동자에 대한 복수라고 여길 수 있지만, 희서라는 인물의 위치를 생각하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연이는 희서와 가깝게 지냈던 동급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녀는 희서와 가까이 있기에 반동으로 호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연이가 희서와 어울리는 장면은 참새가 까치 사이서 어울리는 위태함이 가득합니다. 성에 안 맞는 남자들과 어울려야하고, 소란을 견뎌야하며, 어쩌면 본인이 좋아하는 호야에게 다가가지 못 하는 감시의 눈과 같은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희서의 존재가 없었다면 연이와 호야는 더 가까워졌을까 하는 물음에 선뜻 ‘그렇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작중에서는 그녀의 존재가 두 사람 사이의 커다란 암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고 해석됩니다.
말 그대로, 호야는 희서를 제 인생에서 도려내고 물음을 던집니다. 안타깝게도 이 질문의 답은 그녀 스스로가 알고 있다는 것이 자명합니다.
(P39). 그럼 나는 이렇게 발치에 죽어있는 시체 하나로, 마침내 행복해진 걸까?
개인적으로는 소설을 쓰며 오랫동안 본받고 싶은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낭만 선생의 이야기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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