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가 섞여있는 느낌이다.
기본은 SF적인 좀비 아포칼립스 같다. 좀비의 역사라든가, 연구기관같은 게 나와서 대응한다든가 실험도 하고 하는 것이 다분히 그런 느낌이다. 제목도 그렇고. 그래서 갑자기 뱀파이어가 나오는 것이 좀 어색하기도 한데, 뱀파이어는 태생이 태생인지라 SF적으로 재해석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SF와는 잘 안붙고, 그렇게 하는 것도 낯설다는 얘기다.
반대로 그렇기에 조금 신선한 면도 있었다. 좀비와 뱀파이어는 서로 비슷한 속성이 있어서 동시에는 잘 등장시키지 않는데, 그걸 다시 규정하고 인간과의 관계를 설정한 것이 나쁘지 않았다. 이건 뱀파이어가 나왔을 때 ‘혹시 이런 거 아냐?’싶어 할만한, 쉽게 상상하고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만한 설정이기도 했다.
대신 SF라는 속성은 거의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모든 이야기의 근간이 된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단지 잘 모르는, 전부터 있던 것으로만 얘기할 뿐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은, 몇몇 SF적인 요소가 있긴 하나, 전체적으로는 판타지 그 중에서도 요괴 판타지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게 봐야 무리없이 계속 읽을 수 있다.
*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있으니 주의 바란다.
그냥 판타지가 아니라 요괴 판타지라고 굳이 집어서 얘기한 것은, 이 소설이 꽤 많은 부분을 요괴의 혼혈, 그러니까 반요를 다루는 이야기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혜성’부터가 전형적인 반요다. 단순히 섞였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소위 순수혈통보다 우월한 면을 보인다든가, 양쪽 사이를 다시 생각케 하는 등 중요한 문제의 답을 이끌어내게하는 존재라는 인물상까지 그렇다. 애매한 존재라 양쪽 모두에서 좀 뜨는 존재라든가, 원래 속했던 곳에서는 배척을 받는데 오히려 등한시했던 새로운 곳에서는 받아들여진다는 것도 흔한 클리셰다.
다른 설정, 심지어 앞서 좀 신선한 면이 있다고 했던 좀비와 뱀파이어의 관계 같은 것도 익숙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뱀파이어를 갖고 장난치다가 재앙적인 신종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만화 ‘피안도’를, 약점인 햇빛을 피하기 위한 특수한 제품을 사용한다거나 그에 면역인 돌연변이가 나타난다는 것은 만화 ‘블레이드’나 ‘뱀파이어 십자계’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기존의 설정/클리셰를 가져온 것 같아서 계속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 그게 소설에의 몰입을 깨고 종종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든다는 점, 딱히 새로운 것은 없어 보인다는 점은 좀 아쉬울 만하다.
그래도 그것들을 잘 비벼내긴 했다. 뱀파이어라는 주요 소재에 맞춰 적절하게 변형했고 SF 요소와 판타지 요소가 서로 안붙지도 않아서 전체적으로 잘 조합한 것 같다.
이야기는 무난한 액션 판타지 같다. 물론 배경 설정 등을 보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교육과 훈련 부분은 다소 지루하고, 혜성의 행동이나 감정과 생각의 변화가 좀 단적이며, 특공대에서의 모습은 제아무리 신입 이슈나 기대주라 그런거라해도 입때 잘 운영되어온 상명하복 조직에서의 것이라기엔 과하고, 빌런과의 싸움이 좀 싱겁게 끝나버리며, 거의 모든 사건 후의 뒷처리가 너무 편의적으로 해소된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볼만하다. 특히 이 소설이 어리고 미숙한 청소년이 실수도 해 가면서 성장하는 말 그대로 성인이 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SF 좀비 아포칼립스물일줄 알았지만 의외로 뱀파이어 판타지물이었고, 결론적으로는 뜻밖의 청소년 소설이었던 셈이다. 그게 어디는 SF, 어디는 판타지, 어디는 액션, 마무리는 청소년 이런 식으로 딱 구획지어 나뉘어있는 게 아니라 한 이야기에서 각각이 조금씩 느껴지게 섞어냈기에 나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