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네 손을 놓을 수가 없었어. 의뢰(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환태 (작가: 번연, 작품정보)
리뷰어: Ello, 17년 8월, 조회 60

1.

분량이 길다고 폰보단 컴퓨터를 추천해주셨지만, 폰으로 읽으면서도 아주 길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원래 재미있는 글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어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치지 않죠. 계속 읽고 싶고, 생각납니다. 스크롤이 내려가는 것이 아깝지만 뒷 내용이 궁금해서 또 스크롤을 빨리 내리게 되는 아이러니함 속에 있는거죠. 맛있는 건 아껴먹고 싶지만 또 빨리 먹고 싶어 군침이 되는 것처럼요.

이런 동양풍 판타지 완전 취향입니다. 이 글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도 읽고 싶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봤습니다. 레몬 과자 맛이 나는 작품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아니면 체리 샴푸 맛이 난다거나. (당신, 뭔가 흥얼거리고 있지는 않나요?)

그런 글입니다. 조각 조각 나지요. 사랑이 조각 조각 나고, 사지가 조각 조각나고. 지나친 아름다움에 어디까지 조각 날 수 있는지 함께 봐주어야 하는 글입니다.

 

2.

지나친 아름다움이 독이 된 그녀의 성년 이전 이름은 蕙(혜), 성년 이후의 이름은 淑瀞(숙정)입니다. 풀이름 혜를 쓰는 그녀와 더불어 혀뿌리가 없어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의 동생의 이름은 言(언), 말씀 언 자를 씁니다. 천룡의 자식이지만 불구로 태어나 부모님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동생에게 말씀 언자를 붙인 이런 모순이라니. 멀리 떨어져서 보니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니 비극이네요.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알 것 같지만 정작 그런 이름을 가진 언을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이런 상징성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알고 보면 재미있고, 모르고 봐도 크게 상관은 없는 그런 상징성을 보물 찾기 하듯이 숨겨놓았으니 제가 찾은 두어가지만 더 내놓겠습니다.

‘오방색에 관해 모르실 것 같지 않은데, 분명 아실 것 같은데.’ 하면서 봤던 부분은 아직 방위에 따른 색상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으로 살짝 눈가림을 해놓았습니다. 남방신 축융은 청룡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본래 방위에 따른 색은 남방은 주작이며, 적색이죠.

그래서 아직 방위색이 정해지지 않은 시기일 뿐인가, 혹시 그게 아니라면 혜의 아비인 축융은 왜 청룡인가?

이 부분에 의문을 품고 본다면 한결 더 긴장 된 분위기 속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324문단(이렇게 보니 정말 많은 분량이네요.)에 나오는 희광이도 찾아 냈습니다. 그 날, 희광이가 상천에서 하사 받은 검을 휘둘렀거든요! 분위기와 상황을 보고 짐작할 수 있는 독자들도 많겠지만 구체적으로 희광이는

저도 이런 별칭이 있었다는 것만 살짝 훑고 지나간지라 기억을 더듬어 보고, 검색을 통해 확신을 얻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한 본래 이름을 썼다면 작품 속의 분위기가 현실적으로 가라앉을 수도 있었는데 이런 별칭을 통해서 현실과는 계속 동떨어지게 만들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3.

혜의 이야기를 계속 해보겠습니다.

혜는 부모에게 받는 것이라고는 비참한 아름다움 뿐이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그것 이외에도 받은 것은 있습니다. 아무래도 남방신의 딸인 만큼 영격이 높습니다. 게다가 용은 도검불가침, 만독불침이라 바위에 갈아도 바위가 갈리고, 쇠로 헤집어도 금세 아물고 맙니다. 도검불가침을 반복적으로 강조를 해서 <환태>라는 제목에도 의아함을 가지게 합니다. 바위도 쇠도 죽이거나 상처낼 수 없는 그녀는 어떤 형태로 환태를 한다는 걸까요. 글쎄요, 그런 그녀라도 그녀보다 영력이 높은 이가 목을 물어 뜯는다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죽고 다시 살아나는 걸까요? 그런 설정이라 하더라도 감히 남방신의 딸을  죽일 수 있는 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 여기서는 문제가 되지만요.

반대로 그녀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쉽습니다. 말했다시피 그녀의 영격은 높으니까요. 다른 용을 죽이고 그 용의 사지를 먹는다면 그 용의 모습으로 환태도 가능합니다. 이 방법을 깨달은 그녀가 환희에 몸을 떨지만 과연 그녀가 해낼 수 있을까요. 동족을 먹거나 같은 피를 품으면 하늘의 금기를 어기게 되어서 천룡이 되지 못합니다.

금기가 두 가지 밖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많은 것이 확립되지 않은 이런 단순한 사회에서는 금기가 아주 강하게 작용을 합니다. 하지만 용의 사회에서는 이 금기도 크게 소용은 없는 듯합니다. 여의주가 4개 정도 되거나, 하늘에 줄을 댈 수 있는 권력있는 이에게 어여쁜 딸을 시집보내는 등의 아부를 하면 하늘의 문을 강제로 잡아 찢거나, 권력의 힘으로 다시 천룡이 될 수 있는 모양입니다. 마치 인간세상의 정치를 보는 듯 합니다. 술수와 속임수가 난무하고, 권력으로 좌지우지되고 말이죠.

여자는 시집가면 그만이니 공부를 가르치지도 않고, 그저 예쁜 꽃 같이 가꾸기만 하는 설정에서도 현실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여주는 그렇게 멈춰있지 않았죠!

지킬 것이 있으니 강해 질 수 있다는 말이 딱 어울리게도 혜는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유일한 혈육인 언을 위해 매 고비마다 수를 내고 용기를 냅니다. 아비를 닮았지만 아비의 완결함은 닮지 못해 어미를 잡아먹은 자식이 된 언을 처음에는 예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밉고, 증오했다면 모를까요.

그렇지만 어미가 가고 세상에 유일하게 손을 맞잡을 수 있는 혈육이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으니 미워 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었겠죠. 혜는 언을 “마냥 사랑 할 수도 마냥 증오 할 수도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저는 작품에서 건너 뛴 혜와 언의 시간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마냥 사랑할 수도 마냥 증오 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증오의 마음이 안쓰러움으로 변하고 사랑이 커지는 그들의 시간을 엿보지 못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갑작스럽게 덩치만 커진 동생을 위해 두렵고 싫은 아비를 만나러 갈 때에는 이미 증오는 다 사라졌을 거라 추측합니다. 증오가 있었다면 동생이 두 번째 여의주를 내밀었을 때 동생을 버리고 달아날 수 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견디기 어려웠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미를 죽음으로 내몰고, 먼저 성체가 되버린 동생은 자신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아니까요. 혜도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가 아니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서툴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데 아마도 동생이 성체가 된 순간에 사랑이냐, 증오냐를 결정해야 했을거예요.

결국 사랑을 택한거겠죠. 팔려가는 창기의 심정으로 수정궁에 다시 들어간 걸 보면.

 

4.

색에 대한 묘사와 감정에 대한 묘사가 다채로워서 사실 3에 언급한 ‘뛰어넘은 부분’을 더 보태면 이야기의 부피가 더 커질 것 같긴 합니다. 납득 할 수 있는 부분인데 행복하지 않은 남매가 안타까워서 그들이 둘이서 행복했을 수 도 있었던 어린 시절에 대해 궁금해 하다가 억지를 부려봤습니다.

그보다는 다른 의문점이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받았습니다.

라고 작가님의 긴 답변 중에 추려봤습니다. 혹시 저처럼 궁금해하던 독자가 있었다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 외에 투박한 얼굴의 사내를 만나는 첫부분이 일독 할 때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할까란 생각을 했습니다만 두 번 째 읽을 때 이해했습니다. 아, 물고기 잡는구나 하고요.

그렇게 각오하고 덤비는구나 라는 생각을 왜 처음엔 못했을까요. 아마 그동안 보여준 혜의 태도에서 미모를 이용해 누군가를 홀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얼굴을 갈아버리려고 했던 아름다움에 영민함과 담대함이 모두 감춰져 버렸던 여주였으니까요.

 

5.

 

혜는 축복받지 못하고 태어나 사랑보다는 저주를 쑥덕이는 어린 시절을 보냈죠. 어미가 죽는 모습을 봐야했고, 그런 어미를 죽음으로 내몬 동생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인하게, 전보다 훨씬 아름답게 ‘성장’ 해준 혜와 그런 누나가 세상의 전부인 언에게 이제는 꽃길만 있었으면 합니다.

여성 캐릭터가 자리를 잡고 한 단계 한 단계 올라서는 모습을, 결국 자신의 힘으로 원하던 바 대로 동생의 입을 틔워주고 결국 모두에게 얼굴이 아닌 머리로 인정받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강하고 자립적인 녹옥 공주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는 작가님의 다른 작품인

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고 합니다. 이것도 말로는 다하지 못할만큼 울컥하게 만드는 잔잔하게 끓는 절절함이 있으니 꼭 함께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아,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외전으로 남매의 입 트이고 생활 트인(?) 모습도 그려주셨으면 어떨까 하는 소박한 바람(과연)을 남기며 리뷰를 마칩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