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17화-죽을 자에게 이름은 필요 없다. (3)까지 읽고 쓴 리뷰이며, 지극히 주관적으로 쓰여졌고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프롤로그는 긴장감이 넘칩니다. 늑대의 입장에서 바라본 인간은, 원숭이를 닮은 흉측하고 잔혹한 괴물일 뿐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1화에서 등장합니다. 6명의 부하를 이끄는 카시우스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늑대족들이 점령한 성을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행군 중이었는데, 우연히 숲에서 늑대족들과 조우하고는 기행을 펼치며 위기를 모면하려 합니다.
실존했던 인물의 전략과 전술을 판타지 세계관에 대입시킨 것이 이 작품의 포인트입니다. 머릿수로 밀어붙이거나, 마법사들의 서클 수를 가지고 숫자싸움을 하거나, 용을 비롯한 결전병기를 끌고 나오는, 너무 많이 접해 진부해진 판타지 세계 전쟁 묘사에서 벗어났다는 점은 분명 신선했다고 생각합니다. 전투의 흐름이 매 화마다 바뀌면서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잘 끌고 간 부분도 좋았습니다. 캐릭터들도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매력적입니다. 처음에는 이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탓에 누가 누군지 햇갈리긴 했지만 읽다 보면 구분이 됩니다.
다만, 작품에 나오는 전술들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 작품이 판타지는 것을 고려해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이 전술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1. 늑대족은 신중한가, 용감한가?
흉노족 대군 앞에서 일부러 여유를 부리던 이광의 전략이 주효했던 것은, 여유를 부린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본대가 있을 것처럼, 스스로가 유인책인 것처럼 공성계를 썼고 흉노족이 그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사실 해당 전투에서는 처음부터 흉노가 먼저 겁에 질려 이광과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반면 작품 초반부에 나오는 카시우스의 부대는 고작 일곱명입니다 (나머지 493명은 어디로 갔는지 언급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정찰대 정도로 보이는 병력이지 유인책으로는 보기 어려운 수입니다. 게다가 작품에 나오는 늑대족에 대한 묘사를 보면, 수 킬로미터 밖의 적도 찾아낼 수 있는 감각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광과 싸운 흉노족들과는 다르게) 근처에 매복 중인 대군이 없다는 것은 간파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카시우스가 본대에 지원을 요청해도 지원군이 오기 전에 전멸할 것처럼 묘사되었으니, 본대는 적어도 수 킬로미터 내에는 없었을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적인 지휘관이라면 소수인 상대를 어떻게든 깨뜨리려 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어떤 정보를 전달 중인 것인지, 목적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니까요. 게다가 병력 상 우위에 있어 각개격파를 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냥 보내준다니, 늑대족은 지휘관 너프가 심한 느낌입니다. 이 늑대는 나중에 자기 대장에게 “인간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어서 피했다”고 보고하는데, 이는 지금까지 구축된 늑대족들에 대한 이미지와도 맞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카시우스는 늑대족들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늑대족은 긍지와 명예를 소중히 아는 종족이다. 지금 우리가 낄낄거리며 웃는 것을 늑대족도 봤을 터. 준비해라. 이제 곧 자존심이 상한 늑대 몇이 달려들 거다.”
그 밖에도 ‘늑대족은 항복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등의 표현이 나옵니다. 그 결과, 작품 내 묘사들을 통해 독자는 ‘늑대족은 신중하다’는 이미지를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먼저 공격하는 종족은 신중한 종족이 아닙니다. 그리고 카시우스는 상대가 그런 호전적인 종족임을 알면서도 공성계를 사용한 어리석은 지휘관이 됩니다.
거기에 더해, 이광의 경우에는 이미 그 지역의 태수로서 흉노와 여러 차례 싸우면서 명성을 올려왔기에 그를 상대하는 흉노족들은 심리적인 압박을 느꼈을 반면, 카시우스의 경우 늑대족 입장에선 첫 조우였기에 함정일 거라고 오판할 여지가 적습니다.
2. 성내에 진입한 보병들은 왜 방어벽 앞에서 쓰러졌나
거북이처럼 팔랑크스를 짜고 움직이던 로티스의 부대가 이동식 방어벽에서 쏜 화살에 전멸하는 묘사가 나오는데, 이해가 어렵습니다. 방패로 화살을 막아내는 묘사는 내성에 돌입할 때 이미 나왔었는데요. 방패가 화기에 뚫린 건가요?
게다가 지휘관인 로티스가 방어벽 앞에서 입만 벙끗거리고 있는 걸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부대에 정지명령이라도 내려야지요. 인간들의 군대는 명령체계도 없는 오합지졸인가요? 물론 뒤에서 오는 부대가 말을 안듣고 계속 밀어댈 수도 있겠지만, 지휘관이라면 시도는 해야지요.
이에 더해서, 중간에 테사나르가 원앙진을 이루지 못한 부대를 학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들이 대체 왜 장창병이 방패부대와 떨어져 있는 진법을 구사한 건지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처럼 방패 사이사이로 장창을 들고 있었다면 (작품 내에 나타난 원앙진과도 비슷합니다) 테나사르가 도약하는 순간 창의 숲에 찔려 벌집이 되었을 텐데요. 늑대족의 신체능력을 알고 있었다면 더더욱 진형을 조말하게 짰어야 했는데, 방패병들과 장창병들을 떼어놓는 전법같지도 않은 전법을 구사한 점은 의아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 측의 전술이 너무 너프되어 있습니다. 공을 세우는 데 눈이 멀어 무작정 돌진하는 모습도 잦은 내전을 겪었다는 숙련된 군인답지 않습니다.
3. 뭔가 보여주려고는 하는데 어쩐지 아쉬운 묘사들
노포의 시위가 보름달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시위가 당겨진 모습이 보름달에 비유된다는 것이 잘 상상이 안 됩니다. 보통은 뾰족한 삼각형을 이루지 않나요?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율과 희열이 온몸에 넘쳐났다.
이런 표현은 묘사라고 하기엔 부족합니다. ‘온몸에 넘쳐났다’는 표현으로 묘사의 탈을 씌우긴 했으나, 결국 ‘우에나스는 전율과 희열을 느꼈다.’는 문장을 살짝 비틀었을 뿐입니다. 전율과 희열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전율과 희열을 표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말이 쉽지 어려운 일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제 묘사를 보면 한심한 수준이니까요…) 전지적 시점이라면 ‘우에나스는 척수 위를 내달리는 짜릿한 자극을 느꼈다.’ 정도면 될 것이고, 관찰자 시점으로 쓰려면 ‘우에나스는 자꾸 웃음이 나오는지 입을 한껏 당기고 연신 씰룩거렸다.’ 정도까진 쓸 수 있겠네요. 전율과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는지 주변 사람들을 잘 관찰해 보시면 표현을 풍부하게 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4. 중2병에 걸린 듯한 지휘관들
성동격서의 의미가 뭔지, 그리고 카시우스의 전략이 무엇인지 바하스는 어림짐작만 하고 돌아갑니다. 그러면서 콘티타라는 장수가 어리둥절하는 모습을 놀리는 듯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요. 군 최고지휘관들의 의사소통이라는 게 이정도 수준이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조금의 오해도 없도록, 게다가 손발을 잘 맞춰야 하는 양동작전이라면 더더욱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를 논의해 둬야 합니다. 일개 분대에서도 명령 전달을 명백하게 하기 위해 복명복창을 하는데, 이 지휘관들의 소통은 엉망입니다.
거기에 더해 카시우스가 시위만 하라고 했던 바하스의 군대는 소란을 위해 시위하는 수준이 아니라, 후퇴하는 병사들을 베면서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습니다. 무능력의 극치입니다. 바하스는 대체 뭘 이해하고 돌아간 거죠? 그러면서 카시우스가 뭘 하고 있는건지 몰라 조급해하는데, 하위부대가 어떤 전술을 사용할 것인지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아놓고 책상을 내려치는 모습은 무능한 지휘관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5. 카시우스는 어떻게 성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나?
카시우스의 의도는 처음부터 성동서북+격남이었습니다. 동쪽과 서쪽을 본대가 두들기고 북쪽에 소수 정예를 침투시킨 후, 남쪽 문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테사나르가 성문을 열고 유인책을 쓸 것을 몰랐다면 이 전략이 성립할지 의문입니다. 작전 회의를 하는 초반 대화를 보면, 애초에 공성전으로는 승산이 없는 것처럼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동문이 스스로 열리지 않았다면, 인간의 군대는 절대 성 안으로 진입할 수 없었을 겁니다.
게다가 카시우스의 부대는 중장기병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중장기병은 움직임이 느리고 장거리 무기 사용이 쉽지 않아 공성전에 취약한 편입니다. 공성무기가 다 박살이 난 상황에서, 500기의 중장기병으로 성문을 뚫는다? 안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럼 카시우스는 어떻게 남문을 깨고 성 안에 들어갈 생각이었을까요? 서문은 중장보병으로도 깨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남문은 남풍이 불어 (사실 북에서 남으로 부는 바람은 북풍입니다) 적이 화공을 펼치기 쉽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동과 서와 북을 시끄럽게 만들어 화공을 펼칠 군사가 없었다고 해도, 공성무기도 없는 중무장 기병대로 어떻게 남문을 깰 수 있을까요. 침투한 지기아가 열어주나요? 하지만 요정족 출신은 극히 일부라고 한 걸 보면 카시우스도 잠입으로 효과를 거두긴 어렵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사실 500명 전원이 중무장 기병대인 구성은, 로망이 넘치긴 하지만 현실적이진 않았습니다. 보병대와 경기병의 지원 없이 중장기병만 돌진할 경우 포위당해 전멸하기 딱 좋기 때문에 (탱크나 항공모함이 보병이나 구축함들의 호위를 받는것과 비슷합니다) 전술 측면에서도 활용 문제가 있을 뿐더러, 중무장의 유지 관리를 위해 따라다니는 보병들과 수레들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테사나르가 장계취계를 구사한 것은 최악의 수였습니다. 공성무기도 없는 적이 보급 문제로 성급하게 공격해 오는 와중에 제발로 성문을 열었다? 게다가 감각이 그렇게 뛰어나다는 늑대족들이 카시우스 중기병대의 존재를 몰랐다니요. 척후대가 엑스세크의 지휘관들과 조우까지 한 마당에요.
내성의 방어가 튼튼해서 동문을 열어줘도 방어가 가능했다면, 엑스세크가 동문을 넘어 몰려올 때 왜 병력을 수습해 내성으로 퇴각하지 않았나요? 목표인 적장은 이미 잡았는데요. 퇴각해서 다시 이동식 방어벽을 사용했다면 될 일 아니었나요.
6. 수없이 등장하는 스피드웨건
대화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과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인물의 대화는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작품 전반적으로 인위적인 설명의 느낌을 받았는데, 특히 아래 대사가 그랬습니다.
“…보통 달이 뜨면, 늑대족의 오감은 평소의 20% 이하로 떨어집니다. 신화에서는 늑대족이 달의 여신에게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만……. 보름달에서 나오는 특수한 파장이 늑대족 고유의 파장과 겹쳐, 그들의 오감을 방해한다는 이론이 보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애초에 판타지 장르의 경우 독자가 각 설정에 대해 일일이 물고 늘어지지 않고, 저런 식의 설명까지는 불필요합니다. 사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이성적인 사고방식이 자리를 잡은 근대 이후가 아니고서야, 파장이 언급되는 쪽이 더 설득력 있다는 대사는 나올 수 없습니다.
7. 지나치게 가벼운(?) 돌루스
우에나스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돌루스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
“제 공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돌루스는 약간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암! 잊을 리가 있나! (중략) 반드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우에나스는 호탕하게 웃어 제쳤다. 돌루스의 얼굴에도 다시 득의와 만족의 웃음이 번졌다.
돌루스는 라이벌과의 알력다툼에서 승리하고 있는 캐릭터로, 작중 평판에 의하면 여우같은 처세술을 가진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런 사람이 상관 앞에서 이렇게 표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의아합니다. 게다가 공로를 인정해준다는 말에 바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을 정도로 속이 뻔히 보이니, 귀족들 간의 암투에서 권력을 노리는 사람 치고는 너무 가벼운 느낌입니다. 물론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옛날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악역을 희화화하는 쪽일 수도 있겠지만… 그걸 의도하신 건지는 모르겠네요.
8. 결론
흥미로운 전투 전개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지휘관들의 너프가 심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카시우스는 중장기병으로 성문을 뚫는다는 되지도 않을 전략을 세우고, 테사나르는 가만히 수성만 하면 이길 것을 성문을 열어서 패배를 자초하고, 로티스는 팔랑크스 진형을 짜놓고도 방어벽에 막혀 어버버거리고, 바하스는 부하와 손발을 맞추지도 못합니다. 이들 중 누가 패배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제 솔직한 감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리뷰는 진지병에 걸린 일개 독자의 의견일 뿐이니 너무 큰 의미를 두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판타지를 즐기는 많은 독자들께는 이상하기는커녕 여타 작품들에 비해 훨씬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선택한 방향에 응원을 보내며, 건필을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