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장이 맞는 작가를 발견하는 건 신나는 일입니다. 작가는 라디오 DJ고, 독자는 청취자입니다. ‘내가 아는 거 신박하게 잘 말아준다’는 게 얼마나 귀한 거냐구요. 듣는 입장에서는 선곡이 자기 취향이기를 바라지만, 세상이 넓어서인지 어떻게 취향이 맞아떨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과외활동>을 읽게 된 건 이시우 작가님의 글과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맞아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도시적인 글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대도시 배경의 리바이어던을 그린 것이던, 소도시를 고즈넉하게 그런 것이던 말입니다. 이시우 작가님은 <장르의 장르>라는 책에서 ‘어반 판타지(Urban Fantasy)’를 소개할 정도로 (당시 필명이었던 ‘왼손’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도시 배경의 소설’에 조예가 있으신 분이고, 저 또한 그런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작품, <과외활동>은 어반 ‘판타지’는 아닙니다. 딱히 환상적인 요소가 등장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주인공 이영과 김세연이 모두 고등학생들인지라, 소설 전반에 영 어덜트적인 면이 있습니다. 도시 배경의 영 어덜트 활극이라는 점에서 제 작품을 퇴고하는 데 참고하고 싶었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주인공 이영은 등굣길 쓰레기장에서 김세연이라는 학생을 마주칩니다. 그것도 쓰레기장엔 같은 학교 학우의 시체를 두고요. ‘네가 죽였니?’ ‘아니.’ 등의 살벌하게 웃긴 대화를 나누고는, 둘은 쿨하게 헤어집니다. 그러나 전교에 ‘이영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버리고 맙니다. 범죄자로 몰리기 싫었던 이영이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여기에 알고보니 유명한 해커였던 김세연이 가세하면서 일대 스릴러가 펼쳐집니다. <과외활동>은 이영과 김세연이라는 두 학생이 사람 죽이는 ‘동호회’와 그 배후인 ‘선생’을 쫓는 이야기입니다.
상투적인 표현입니다만, <과외활동>은 책에서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재밌습니다. 주목할만한 관전 포인트는 캐릭터들이 만화적으로 타이트하게 잘 짜여졌다는 것입니다.
주인공 이영은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막무가내에 단순무식한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1인칭으로 쫓아가는 이영의 속내는 굉장히 복잡합니다. 화재에 부모님을 잃고, 살인 ‘동호회’라는 엄청난 사건에 말려듭니다. 유일한 조력자인 해커 ‘김세연’은 상황을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구요. 답답하게 뭔가를 쫓아가기 바쁜 상황에서도 주체적으로 상황을 풀어나가려 노력하는 캐릭터입니다. 응원 안 할 수가 없는 타입의 정석적인 캐릭터라고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체인소 맨>의 덴지가 생각났지만, 덴지와도 또 결이 다른 캐릭터입니다.
김세연은 조력자 해커 캐릭터입니다. 여타 영 어덜트나 라이트노벨의 히로인이 그러하듯, 꽤나 신비하게 잘 짜여졌습니다. 전교 1등에, 해커, 거기다가 독특하게 새침스러운 말투. 옛날 라노베의 정석적인 천재 츤데레 캐릭터를 한국적인 여고생으로 로컬라이징 해놓은 기분입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해커 캐릭터라는 점에서 <산나비>의 금마리, 톡 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미얄의 추천>의 미얄도 생각나네요. 그러나 두 캐릭터와 상당히 결이 다른 캐릭터입니다.
‘빌런’을 담당해주는 ‘동호회’ 사람들도 매력적인 인간 쓰레기들입니다. 이영이나 김세연이 생생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데 비해 해상도가 떨어진다는 아쉬움은 없지 않습니다. 감안할 만한 것이, <과외활동>은 이영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이고, 이영은 이들의 이름도 제대로 알기 힘든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동호회’ 사람들은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습니다. ‘영 어덜트’의 주인공은 10대 중후반의 아이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의 악당은 누구일까요. 일진? 불량배? 아뇨. ‘썩어 빠진’ 어른들입니다. 사회에 쩔어버린, 어딘가 체념한 채 자신의 한계에 낙담하고 악행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이요.
그런 ‘동호회’의 지도자인 ‘선생’ 또한 꽤 의미심장합니다. <블루 아카이브>라는 모바일 게임이 있습니다. 거기서 플레이어 캐릭터가 ‘선생’입니다. (물론 <블루 아카이브> 쪽이 훨씬 나중의 게임이긴 합니다.) 여기서 ‘선생’은 게임의 각종 여고생 캐릭터들을 바른 길로 지도한다는 의미입니다만, <과외활동>의 ‘선생’은 그의 안티테제처럼 느껴집니다. 덜 커버린 어른들에게 잘못된 길을 알려주는 ‘선생’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은 꽤나 추상적이고 악마적인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구체적인 것을 대표하거나 현실에 존재하는 캐릭터라기 보다는, 의미의 구현화 같은 느낌이랄까요.
<과외활동>은 이런 ‘선생’에 맞서는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쉽게 순순히 교육당하지 말라는 말처럼 학생들에게 해줘야 할 말이 있을까요.
캐릭터 조형이 굉장히 잘 된 덕분에, 작품은 어떻게 보면 평이한 탐정 스릴러 플롯임에도 도화선에 불을 붙인 듯 달려나갑니다. 탐정 팀이 주인공을 쫓고, 점점 사건의 은폐된 실마리가 풀려나가면서 진상이 밝혀집니다. 탐정은 어떤 ‘선’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선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요.
주인공 이영도 가만히 앉아 있으려 드는 캐릭터가 아니거니와, 이영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이 쉴 틈 없이 진행되는 덕에 작품은 굉장히 난폭하게 전개됩니다. 예, 스릴러는 그 맛에 읽는 거지요. 그 점에서 스릴러의 기본을 충실히 갖추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주인공들이 ‘쥬브나일(Juvnile)’한 덕에, 캐릭터가 성장하는 걸 보는 맛이 있습니다. 그 점에서 어휘 선택도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욕설이 꺼리낌 그대로 나오는데, 뭇 독자들에게는 그런 비속어가 비위 상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꽤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애들이란 말 안 듣는 법이고, 말 안 들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작품의 해킹 묘사 또한 만능이면서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시우 작가님의 본업이 AI 회사의 프로그래머라고 들었습니다. 그 덕인지 ‘해킹’을 설명하는데 사용되는 어휘가 남다릅니다. <와치 독>이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도시의 온갖 기물들을 자유자재로 해킹하는 게임입니다만, 그런 게임에서는 해킹이 ‘만능 마법’으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규칙’이 느껴지지 않는달까요. 그러나 <과외활동>에서 김세연이 선보이는 해킹은 엄연한 ‘규칙’이 존재합니다. 이 ‘규칙’에 대한 서술만 잘 해도, 독자는 매력을 느낍니다. 이영이, 이영을 따라가는 독자들이 알아듣든 그러지 못하든이요.
<과외활동> 자체가 영 어덜트를 표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한국에는 라이트노벨 레이블이 이제 존재하지 않는 바, 라이트노벨도 아니구요. 그러나 <과외활동>은 재미있는 영 어덜트, 혹은 라이트노벨이었습니다. 자라나는 학생들은 이런 거 읽고 자라야 하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