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인가 먹지 않을 것인가 감상

대상작품: 고구마 그라탕 (작가: 일월명, 작품정보)
리뷰어: JIMOO, 11월 11일, 조회 33

독자들은 고구마보다 사이다를 더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고구마의 답답한 빌드업 없이 사이다만 있는 이야기처럼 재미없는 이야기도 없다. 고구마는 보는 사람을 괴롭게 만들지만 이야기에서 빠지면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그런 것처럼 인생에는 고구마를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있다. 먹는 사람도 괴롭지만 먹히는 고구마 심정은 어떨까?

여기, 비유가 아니라 진짜 고구마를 반드시 먹어야만 하는 사람과 일생일대의 위기를 어떻게든 모면해 보려 하는 고구마의 이야기가 있다. 본격 고구마 시점이라 그런지 더 몰입되고 오싹하게 다가왔다.

글을 읽으면 항상 하게 되는 것이 나라면 어땠을까의 생각이다. 고구마를 먹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 이입이 되었다. 나였다면 고구마가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일단 고구마를 접시에 옮기고 큰 그릇으로 잘 덮어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포위를 해야겠다. 혹시 모른다. 말도 하는데 기어서 바닥을 돌아다닐지.

그다음은 냉장고에 넣고 바깥으로 튄다. 말하는 미친 고구마라도 쿨다운을 시키면 괜찮아질지 모른다. 놀란 속을 좀 진정시키고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서 확인해 볼 것 같다. 내가 미쳤나. 고구마가 미쳤나. 그런데 다시 열어봤는데도 여전히 말한다면 지인을 불러서 처리를 의논하지 않았을까?

“고구마가 말을 해!!”

“바쁜데 아침부터 장난 전화하지 마!!”

거절 당한다면 112나 119에 울면서 신고할 것이다.

“저 안 미쳤거든요?! 고구마가 말을 해요!! 살려주세요!!”

“누구를 살려? 고구마에게 CPR을 해달라고? 이런 미친 놈을 봤나.”

“아니요. 무서우니까 저 좀 살려주시라고요.”

대충 이런 헤프닝이 벌어졌겠다. 나의 모자란 말주변을 듣고 출동을 해줄지 모르겠으나, 고구마는 똑똑한 녀석이니 말 못하는 고구마인 척을 해서 내가 정신 병원에 끌려가거나 허위 신고로 경찰서에 잡혀가고 고구마는 살아남는 대환장의 엔딩이 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쫄보인 나와는 아주 다른 <고구마 그라탕>의 주인공은 용감하게도 고구마를 젓가락으로 찔러본다. 고구마도 많이 아팠겠지만 보는 내가 더 아팠다. 나는 인간인데 어째서 고구마의 아픔에 몸서리를 치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말이 통하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에 우리의 먹거리인 동물, 채소, 과일 등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으며 먹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소설이 가진 매력인 것 같다. 내가 아닌 타인의 시점에서, 사람이 아닌 존재의 입장이 되어서 상황을 뒤집어 보게 된다.

주인공은 배가 많이 고프고, 안 먹으면 배가 고파서 먹을 수밖에 없다. 고구마는 살고 싶고, 살려면 자신을 먹으려는 사람을 대화로 설득해야만 한다. 굳이 먹느니 다른 걸 먹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장 고구마 말고는 먹을 게 없어서 굶어야 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신서로 작가님의 <피어클리벤의 금화>의 첫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너를 먹겠다고 선언한 드래곤과 한 끼 식사가 될 자신을 살리기 위해 대화로 지혜롭게 설득하는 소녀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판타지 소설이었다.

일월명 작가님의 <고구마 그라탕>은 기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위트있는 호러를 짧은 단편 안에서 잘 전달해 주고 있다. 웃긴데 무섭고, 무서운데 웃기다. 웃어서 절박한 고구마에게 미안한 심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읽고 있는 독자의 관점이었고,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과 고구마는 무척 진지하다.

고구마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직접 확인하시길 추천한다. 참고로 보면서 3번 정도 육성으로 비명을 질렀다. 당신이 고구마를 먹으려던 순간, 고구마가 나를 먹지 말라고 말을 걸어온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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